3세들 길 터주려 ‘애물단지’ 한화저축은행 매각하나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2 07:3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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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개 대기업집단 8개 저축은행 중 유일하게 자본잠식 상태
한화그룹 측 “매각 검토한 것은 맞지만 실행은 아직”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인수합병(M&A)의 승부사’로 통한다. 공격적인 M&A를 통해 그룹의 고속성장을 견인해 왔기 때문이다. 공정위 기업집단포털에 따르면 올해 5월 발표 기준으로 한화그룹의 자산은 83조280억원(공정자산 기준)이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덩치가 9배나 커졌다. 같은 기간 재계 순위는 7위로 10계단이나 상승했다.

실제로 한화그룹 성장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M&A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 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 케미칼·첨단소재 부문)과 정아레저타운(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큐셀(현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 등을 인수했다. 이후 방산, 화학, 태양광, 금융, 유통, 레저, 선박, 위성통신 등 100여 곳의 계열사를 아우르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08년 한화그룹에 편입된 후 한 해도 자본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화저축은행의 매각설이 최근 나오면서 주목된다. 사진은 한화저축은행 부천 본점 ⓒ
2008년 한화그룹에 편입된 후 한 해도 자본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화저축은행의 매각설이 최근 나오면서 주목된다. 사진은 한화저축은행 부천 본점 ⓒ시사저널 임준선

김승연 회장의 ‘손톱 밑 가시’ 된 한화저축은행

이런 김승연 회장에게도 ‘손톱 밑 가시’가 있다. 한화저축은행이 그 주인공이다. 김 회장은 2008년 제일화재해상보험(현 한화손해보험)과 자회사인 새누리상호저축은행(현 한화저축은행)을 인수했다. 김 회장의 친누나인 김영혜씨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었다.

당시 두 회사는 적자 상태였다. 특히 한화저축은행의 경우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졌다. 한화 계열에 포함된 후 한화건설과 한화글로벌에셋,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테크엠 등이 한화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급한 불은 껐다. 한화저축은행은 2014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는데, 은행 업계 전반의 업황 회복 때문이었다고 한화저축은행 측은 설명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화저축은행의 자산은 1조5144억원을 기록했다. 전국 80여 개 저축은행 중 30위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경영 상황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한화저축은행의 영업수익(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00억원과 272억원을 기록했다. 덕분에 자본잠식률은 45.2%까지 완화됐지만, 다른 저축은행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상태로 평가된다.

실제로 시사저널은 공정위 지정 82개 대기업집단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들 그룹 중 저축은행을 보유한 곳은 한화그룹(한화저축은행)과 농협그룹(NH저축은행), DB그룹(DB저축은행), 태광그룹(고려·예가람저축은행), 다우키움그룹(키움·키움예스저축은행), 오케이금융그룹(오케이저축은행) 등 6곳이었다. 이들이 8개 저축은행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현재 자본잠식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한화저축은행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그룹이 최근 한화저축은행의 매각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화그룹은 현재 별도의 자문사 없이 직접 원매자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금융사와도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거래는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한화그룹 측은 매각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다”고 짧게 답했다. 한화저축은행 측도 “2008년 그룹에 계열편입된 후에 자본잠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안정적인 BIS 비율 관리를 통해 2014년 이후 흑자를 유지하는 등 경영에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연합뉴스

매각 성사 시 3세 승계구도 속도 날 전망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저축은행 매각을 3세 승계구도와 연결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과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를 각각 부회장과 전무로 승진시켰다. 올해 2월에는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후계구도의 밑그림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컨대 장남은 주력인 태양광과 방위산업을, 차남은 금융을, 삼남은 유통과 레저를 맡게 됐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주목되는 사실은 한화저축은행의 모호한 포지션이다. 손해보험과 증권, 자산운용 등 그룹의 주요 금융 계열사들은 현재 중간 지주회사 격인 한화생명 산하에 포진해 있다. 한화저축은행의 경우 합성수지를 제조하는 한화글로벌에셋의 100% 자회사다. 한화글로벌에셋은 한화솔루션 계열이다. 다른 금융 계열사와 달리 한화저축은행은 화학회사가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배경은 이렇다. 한화그룹은 과거 한화저축은행을 김 회장의 친누나로부터 인수하면서 한화손해보험도 같이 인수했다. 당시 두 회사는 한화생명과 한화건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첨단소재, 한화테크엠 등이 나눠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화생명은 2016년 한화건설과 한화첨단소재 등이 보유한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하지만 한화저축은행의 경우 2020년까지도 지분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한화그룹은 2020년 1월 한화케미칼과 한화큐셀엔드첨단소재가 합병(현 한화솔루션)하면서 한화글로벌에셋을 인적 분할했다. 이 회사가 한화건설과 한화첨단소재,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이 보유한 지분을 모두 인수하게 된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련의 조치가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매각을 진행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면서 “한화저축은행 매각에 성공하면 현재의 3세 후계구도 역시 좀 더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저축은행의 지분 이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금융 계열사와 결이 다르다 보니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다”면서 “한화저축은행 매각을 3세 승계와 연결 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내부적인 검토 차원에서 매각을 저울질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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