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와 공공성 사이에서 헛바퀴 돌리는 대중교통 정책
  • 황건강 중앙SUNDAY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0 10: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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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 고차방정식 된 대중교통 요금 인상…독일의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 정책은 뭐가 다를까

대중교통 요금의 역진성(逆進性)이 다시 한번 화두가 됐다. 8월12일부로 인상된 버스요금 탓이다. 이번 버스요금 인상으로 서울시 간선·지선버스는 1200원에서 1500원(일반·카드요금 기준)으로 올랐다. 왕복 기준으로 하루 600원, 한 달이면 1만8000원가량 추가 부담이 생긴 셈이다. 교통비는 사회경제적 활동에 나서는 서민들이 매일 지불해야 하는 비용인 탓에 다른 비용보다 체감이 크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8월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대학생 한모씨(23)는 “매일 가장 먼저 지출하는 돈이 교통비라 물가 상승을 실감한다”며 “올리더라도 인상 폭을 조절했으면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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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0일 서울 시내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 기본요금을 300원 인상한다는 안내문을 시민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 번에 300원 오른 버스요금 인상 “부담”

버스요금 인상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더욱 부담이다. 노상에서 음식 장사를 한다는 자영업자 김모씨(62)는 최근 버스요금 인상에 대책이 없다고 전했다. 김씨는 “최근 식재료값 인상을 반영해 음식 가격을 한 차례 올렸다”며 “교통비 부담에 또 올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일부 지방 거주자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고양시와 성남시 등 일부 지역에선 이번 요금 인상으로 2300원이던 요금이 3000원으로 700원 인상됐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 마포구로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김지원씨(34)는 “똑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서울에 사는 동료들에 비해 교통비가 더 올랐다”며 하소연했다.

역진성 문제는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될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주제다. 2015년 버스요금 인상 직전에도 국토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 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 요금 부담이 더 크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교통 부문의 소득 역진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버스요금 인상을 앞두고도 일각에서 서민 부담을 지목하며 요금 인상 재고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이유는 비용이다.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서울 버스업계의 지난해 적자 폭만 658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교통이 가진 공공성을 감안하더라도 그대로 두기엔 벅찬 규모인 셈이다. 실제로 이번 요금 인상에도 서울 버스업체들의 운송 적자는 2025년까지 2481억원가량 줄어드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인상 이후에도 흑자 구조로 돌아서긴 어렵다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운송기관의 적자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반복 이용자를 위한 할인 혜택이라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예컨대 서울 지하철 정기권처럼 버스 정기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 지하철 정기권은 기본요금 44회분 요금으로 60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기권으로 할인을 제공하려면 어디선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 때문에 내년이 돼야 정기권 도입을 다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하철 요금이 오는 10월7일 150원 인상된 후 내년 하반기에 추가로 150원 인상된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지하철 요금 300원을 한 번에 인상하려 했으나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맞춰 인상 시기를 하반기로 미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서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방침이 흘러나오자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2021년 11월부터 연장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 조치 대신 대중교통 요금에 혜택을 주는 게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 인하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홍혜란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로 인한 혜택 규모는 9조원에 달한다”며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지만 상대적으로 휘발유·경유를 많이 소비하는 고소득층에 이득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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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시내버스에서 시민이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기권 등은 재원 마련이 가장 큰 과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중교통이 가진 공공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교통 혼잡이나 대기오염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지난해 6월부터 석 달간 독일 정부가 한시적으로 판매한 ‘9유로 티켓’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물가가 오르자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이 티켓을 판매했다. 이 티켓을 구입하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들어간 예산은 25억 유로(약 3조5500억원)에 달한다.

결과는 예상보다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독일운송회사협회와 독일연방통계청 등에 따르면 9유로 티켓을 도입한 후 독일의 물가상승률은 0.7%포인트 줄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탄소배출량은 180만 톤 감소하고, 23개 도시에서 교통 혼잡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을 넘어선 성과에 고무된 독일 정부에선 올해도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 정책을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 5월부터 3년간 49유로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을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15억 유로(약 2조1300억원)가량이다.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비용 지원 정책은 독일만의 사례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스페인은 지난해 9월부터 철도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룩셈부르크와 미국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등 일부 지역에선 2020년부터 대중교통 운임을 받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결과는 반반이다. 시민들의 자동차 이용이 많은 룩셈부르크에선 직접적인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캔자스시티는 대중교통 무료화 정책으로 이용자가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경 국회도서관 법률자료조사관은 “저소득층에게 대중교통 비용 최소화 정책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이 될 수 있다”며 “대중교통의 무료 정책은 재원 마련이 가장 우선적 과제”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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