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빚투 유발하는 ‘밈주식’ 신드롬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2 16:05
  • 호수 17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차전지에서 초전도체, 그리고 맥신까지…밈주식은 개미들의 20조원대 빚투가 만들어낸 신기루인가

올여름, 초전도체가 뜨거운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사실 과학적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전도체 관련 주식이 폭등하면서 또 하나의 재산 증식 수단으로 해당 기술이 대중에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로 대표되는 이차전지 열풍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맥신(MXene)에 대해서는 첨단기술 발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떤 주식이 폭등할지에 투자자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에코프로는 최근 이차전지 바람을 타고 주가가 급등하면서 개미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스크린 ⓒ연합뉴스

기대감에 의존한 주가 폭등

회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열심히 장사해(영업) 수익을 창출하거나 주주에게 자금을 투자받는 방법. 영업을 열심히 해서 수익을 창출한 기업이라면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에 나타나는 실적 자체가 좋다 보니 투자자 그리고 기업 입장에선 크게 우려할 부분이 없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 수익을 내는 방식은 모두에게 명확히 보이다 보니 주가 폭등 이벤트가 없는 한계(?)가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기대감에 의존한다. 회사 역시 장밋빛 전망을 선사한 후 주주들에게 돈을 타내는 방법이 손쉽다. 2008년 A기업은 100억원대 손실로 자본잠식 위기에 빠지자 인수합병, 유명 연예인과의 초대형 계약, 연예인의 유상증자 참여 등의 이슈를 토대로 주가를 급등시켰다. 그 이듬해 해당 기업은 모 연예인의 경영 참여 발표로 시가총액이 폭등하는 대박까지 만들었다. 근거가 없는 ‘밈주식’의 탄생이었다.

이차전지 기업 에코프로는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몇 년 전, 에코프로가 지방대에서 채용설명회를 진행했을 때만 해도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에코프로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이차전지가 바람을 타기 시작하자 에코프로 주가는 공중이 아닌 우주까지 치솟을 정도로 폭등했다. 증권사에서 에코프로의 과열을 우려하며 매도 리포트를 냈음에도 대중은 매수에 열중했다. 초전도체도 마찬가지다. 국내 연구진이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인터넷에 논문을 공개한 시점은 7월22일. 한 달 사이에 유튜브와 주식방에는 초전도체 관련 기업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해당 기업의 주가는 최소 20%에서 최대 220% 상승을 기록했다. 학술지 ‘네이처’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초전도체 LK-99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후 주가는 급락, 초전도체 테마주는 천당과 지옥의 사이클을 만들었다.

밈(meme)이란 인터넷이나 SNS에서 퍼져 나간 문화의 유행과 파생 등 급속도로 확산되는 문화 요소를 의미한다. 주식시장에도 오래전부터 ‘묻지마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밈주식이 존재했다. 2000년대 초 닷컴 열풍으로 인터넷 기업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2008~10년에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상장과 함께 연예인 이름을 차용하면서 대중의 폭발적 관심을 유발해 주가 급등으로 밈주식을 만들었다.

닷컴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이어진 밈주식 신드롬이 오늘날 기술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8월17일 맥신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자 유튜브와 주식방에서는 또다시 맥신 관련 테마주가 오르내렸다. 초전도체와 달리 맥신은 반도체와 센서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는 인류의 진짜 신소재라고 외친 가짜 유튜버들이 줄곧 개미투자자들을 현혹했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기업들이 장사해 돈 벌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줄곧 긴축 모드에 들어간 상황이고 중국은 부동산 위기로 인해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증시의 하락세를 유발했다. 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중국이 불황을 걱정하는 사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불황은 늘 테마주를 소환했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대중은 탈출구를 원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믿고 보는 국가대표 기업들의 주가가 부진하자 대중은 기대감을 부르짖는 테마주에 열광했다. 에코프로를 제외하더라도 다수의 이름 없는 기업이 올해 초전도체, 맥신 관련주로 하루아침에 주가가 20~50% 오르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수익과 실적보다 기대와 가치를 강조한 밈주식들은 유튜버와 주식방의 환호 속에 개미투자자를 끌어들였다.

‘꿈의 물질’로 불리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한국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둘러싸고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반성해야 할 증권사, 경계해야 할 리딩방

주요 증권사들은 밈주식에 빠진 개인투자자들을 질타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증권사는 이미 불신의 대상일 뿐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대립각을 세울수록 투자자와 누리꾼에게 호평을 받는 이른바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의 사례는 개미투자자 및 대중이 얼마나 증권사의 보고서에 불신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주식 정보 채팅방인 리딩방에서는 늘 증권사와 반대로 가라고 주장한다.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 마라》의 저자로 유명한 사경인 회계사는 국내 증권사들이 매도 리포트를 거의 내놓지 않는 점을 불신의 이유로 꼽았다. 증권사가 특정 기업을 매도하라고 하면 해당 기업과 등을 질 수밖에 없는 일. 증권사에 기업은 고객이다. 애널리스트가 기업 분석을 잘하려면 기업과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그렇다 보니 증권사의 분석 리포트는 늘 투자자의 입장과 동떨어져 있다.

참고로, 올해 나온 증권사 리포트 중 매도 의견은 0.04%에 불과하다. 주가 하락은 늘 개미투자자들이 주식을 매수하는데 기관투자가들이 동일 주식을 매도하는 순간에 벌어진다. 자신들은 매도하면서 개미투자자에겐 매수만을 강요하니 개미투자자들이 증권사를 불신의 대상으로 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증권사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며 환상으로 빚투(빚내서 투자)를 유발하는 리딩방 역시 경계해야 한다.

주식 유튜브와 ‘리딩방’이라 불리는 주식 정보 채팅방에선 늘 정교한 전망, 분석보다 테마주 선정과 해당 주식의 기대감을 쏟아낸다. 2023년 현재, 국내 개미투자자는 전체 투자자의 73%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의 빚투 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섰다. 지금의 밈주식 열풍은 전체 73%의 개미투자자가 20조원의 빚투로 만들어낸 신기루다. 신기루는 급속도로 사라질 뿐, 그사이 웃음 짓는 건 주식 유튜버와 리딩방 운영자뿐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