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정치’,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인질로 삼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1 07:35
  • 호수 17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대를 ‘악’으로만 보는 정치…‘협치·통합’은 실종, ‘극단 정쟁’만 반복
거대 양당, ‘반사이익 정치’에만 몰두…벼랑 끝 국민 각자도생 내몰려

‘역주행 정치’에 대한민국이 인질로 붙잡혔다. 지금 거대 양당이 펼치고 있는 대결과 정쟁의 정치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극단이 지배하는 정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편이 하는 정치만 옳고, 상대가 하는 정치를 악으로 규정하면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의 공간은 지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에는 ‘국민’과 ‘통합’ 그리고 ‘상식’이 없다. 대신 ‘증오’와 ‘독선’ ‘독주’만 가득하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야당을 협상의 파트너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국가 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 등이라는 극언을 쏟아내고 있다. 단지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와 정책이 설 공간은 뒤로 미루고, 수사·처벌 위주의 검찰식 통치를 국정에 앞세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정은 검찰과 감사원 등이 이끄는 ‘검찰국가’와 ‘감찰국가’란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은 물론 국민을 향해서도 이념 전쟁을 선포하며 ‘자유 대 공산’이라는 구도를 거칠게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은 이념 전쟁, 제1야당 대표는 단식 투쟁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이런 공세를 집권 2년 차에 직접 주도하고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은 “우리는 앞으로 가려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는 건 안 된다. 이런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며 협치 불가를 못 박았다. 지난해 3월 당선 소감에서 국민 이익이 곧 국정 기준이라는 기준을 제시하며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간절한 호소”라며 자신의 당선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제1야당의 모습도 국민에게 실망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월31일부터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현 정부의 독주를 막겠다고 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사법 리스크’ 국면 전환용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체포동의안 처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 단식 투쟁으로 내분·악재를 덮으려 한다는 뒷말이 무성한 상황이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의 장이 되어야 할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를 ‘단식 정국’으로 끌고 갔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의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신뢰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실정에도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 취임 이후인 지난 1년간 민주당은 여전히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민생·대안·수권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고질적 병폐로 지적받는 ‘내로남불’과 ‘팬덤정치’에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보유 파문 등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 민주당이다. 사태를 수습하겠다며 띄웠던 혁신위는 오히려 혁신의 대상이 됐다. 이 대표를 향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민주당 내 원심력은 커지고 내분 양상은 심화된다.

정국의 중심을 잡아야 할 집권여당은 존재감이 흐릿하다. 경제와 민생의 최종 책임은 결국 여권에 있는데 집권 1년4개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여소야대 구조’와 ‘과거 정권’ 탓만 한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용산(대통령실)이 민생을 도외시한 채 이념 전쟁을 일삼는다면 여의도(국민의힘)가 건강한 견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수직적 당대 관계가 고착화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내 ‘총선 수도권 위기론’ 등의 문제 제기에 “배를 침몰시키려는 승객은 함께 승선하지 못한다”(이철규 사무총장) 등의 언급이 나오는 것도 당내 민주주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신호로 여겨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게 역주행 정치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질식시키고 있다. ‘누가 더 잘하나’의 플러스 경쟁이 아닌 ‘누가 더 못하나’의 마이너스 정치를 국민은 계속 보고 있다. 여야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을 치른 데 이어 총선을 앞두고도 서로 “윤석열 정부는 야당 복이 많다” “제1야당의 조커는 현 정부” 등의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거대 양당에 질린 유권자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당층 비율을 계속 올리면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만, 기득권 양당은 이를 무시하며 선거제 개편 등 민심의 요구도 외면하고 있다. 제3세력의 깃발을 올린 대안 정당들은 아직 국민에게 수권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면 국민은 전쟁 같은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생산·소비·투자가 동반 위축하며 국가 경제는 가라앉고 있고, 가계소득도 감소하고 있는 초유의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역주행 정치가 대한민국의 내일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붕괴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저출생 이슈는 물론 고령화와 지방 소멸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지만, 정치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기후위기와 같은 미래 의제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지금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했다. 국민이 매일매일 각자도생에 내몰리는 이유다. 

☞ ‘역주행 정치’ 특집 관련 기사
‘역주행 정치’,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인질로 삼다
“대통령이 이념을 그렇게 중시했었나” 우려 커지는 여권
총선 자충수 되는 윤 대통령의 ‘이념전쟁’ [유창선의 시시비비]
이재명 ‘단식’ 바라보는 민주당의 불안한 시선
정당 뉴스, 국민은 TV로 보는데 민주당원들은 유튜브로 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