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단식’ 바라보는 민주당의 불안한 시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8 14: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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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명분’에 당 지지율·대중 호응도·언론 주목도 모두 ‘빨간불’ 
대여 투쟁 강화로 결속 노리지만 ‘방탄 프레임’ 못 벗어나

단식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그 자체가 대국민 메시지다. 성공하면 정국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그래서 지도자의 단식에는 ‘민심이 바라는 대의명분’이 꼭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언론이 주목하고, 지지자들이 모이고, 국민 여론까지 호응해, 결국 판이 뒤집히려면 대의명분이 핵심 동력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이 확실하면, 단식의 타이밍(시점)과 장소 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역사가 증명한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시절 ‘성공적인 단식’을 벌인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전 신민당 총재였던 YS는 1983년 군정 종식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여 야권이 뭉치는 전기를 마련했다. DJ는 1990년 평민당 총재로서 13일간 목숨을 건 단식으로 지방자치제 도입을 이끌어냈다. 두 야당 지도자의 단식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에는 YS와 DJ가 각각 ‘군정 종식’과 ‘지방자치’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역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이 대표는 취임 1주년을 맞이한 8월31일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를 막겠다”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 삶이 이렇게 무너진 데는 제 책임이 가장 크다. 그 책임을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 파괴와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죄,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대한 반대 천명과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단식투쟁을 시작한 이 대표의 메시지도 연일 강경해지는 모습이다. 9월6일에는 “링 위에 오른 선수들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끌어내려야 한다”는 발언을 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까지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은 서둘러 “내각 총사퇴를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파장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과연 이 대표의 단식은 어떤 종착점으로 향하게 될까. 현재까지는 아직 기대했던 정치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당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것은 물론 대중적 호응과 결집도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주목도도 당의 애초 기대만큼 높지 않고, 보도 방향도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당 내부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 대표의 단식을 두고 “갑작스럽다” “느닷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물론 검찰 수사와 체포동의안 논란, 그리고 사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을 둔 것이라는 분석도 많이 제기된다. “퇴로가 마땅치 않은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이 대표의 단식을 바라보는 민주당 내의 불안한 시선과 그 이유를 살펴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1일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1일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당 내부에서도 “왜 지금 갑자기 단식?” 갸우뚱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에는 이 대표의 단식이 ①명분 ②효과 ③퇴로라는 3박자가 모두 약해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가장 큰 회의론은 ‘방탄 프레임’에서 나왔다. 이 대표는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의혹’ 사건으로 검찰 출석 일정을 조율하던 중에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앞서 검찰이 제시한 두 날짜(8월30일, 9월4일)에 출석하지 않았다. 

9월9일 수원지방검찰청에 출석할 예정인 이 대표는 “제가 단식을 한다고 해도 검찰 수사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무기한 단식이 이어지면 검찰도 계속 이 대표를 소환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단식 중인 당대표를 향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해야 할 수도 있는 민주당 의원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지금 국민의힘이 “사법 회피·내분 차단·당권 사수용 ‘방탄 단식’”이라고 공세를 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민주당 내에서는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단식투쟁을 분리해야 단식의 명분을 지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가 이미 약속한 것처럼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선제적으로 요청하면 당이 방탄 프레임과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계파색이 옅은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가 먼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요청해야 당도 살고, 이 대표도 산다”면서 “순수성을 의심받으면 단식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엔 이 대표가 제시한 단식의 명분이 과연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상당하다. 당장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전면에 내걸고 단식을 하기에는 실효성도 충분치 않고 시점도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있다. 이 대표가 제시한 내각 총사퇴 같은 개각 요구 또한 국민에게는 절박하지 않은 이슈라는 평가도 있다. 오히려 당내엔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에 대한 특검 요구를 단식의 명분으로 내걸었다면 파급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해병대 전우회 등 보수의 핵심 지지층에서도 이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 부정적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방탄 단식’ 논란에 시점과 장소 두고도 ‘시끌’

이 대표 단식의 명분이 여러모로 비판받으면서 단식 장소와 시점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본청 앞 천막이라는 장소와 정기국회라는 시점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 대표의 단식투쟁이 성공할지는 여론의 공감 정도에 달려 있다. 제시한 요구도 모두 국민 여론이 반응해 줘야만 달성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단식의 장소가 동료 의원들이 있는 국회가 아니라 국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움과 문제의식이 내부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시점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시점에 단식을 시작했는데, 야당 입장에서 이번 정기국회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파헤치고 드러내 득점할 수 있는 국정감사 기간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해 ‘단식 정국’이 펼쳐짐에 따라 언론의 조명과 대중의 관심 모두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정기국회 때 168석이라고 하는 의석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다”며 “정기국회나 국정감사는 야당에 훨씬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판이다. 그런 데 집중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대중의 호응도와 언론의 주목도도 약하다. 이원욱 의원은 “매일 밤 국회에서 촛불집회를 하는데 참가하는 분들을 보면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동력이 상실되고 있다”면서 “지금 상태에서 단식을 계속 지속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고 꼬집었다. 언론은 이 대표의 단식보다는 최근 서이초 교사 사망으로 촉발되고 있는 교사들의 집회와 움직임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다. 이 대표도 참석했던 9월2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 주말 광화문 집회의 경우 당일 저녁 뉴스에 보도 자체가 안 되기도 했다. 오히려 언론은 이 대표의 단식을 국민의힘이 내건 프레임인 ‘출퇴근 단식’ ‘웰빙 단식’ 등을 엮어 보도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언론이 편향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상당수 언론이 지금 이 대표가 내건 단식의 이유와 그 대의명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비명(非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단식 중단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명분도 실리도 별로 없는 단식을 멈추어 달라”는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의 요구를 시작으로 “YS나 DJ는 단식할 때 보면 목적이 간명했는데 이번엔 두루뭉술한 게 사실”(조응천 의원), “자해적 투쟁수단”(이원욱 의원)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부의 평가도 박하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 대표의 단식을 한마디로 “자충수”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가 여론조사 수치만 보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의제를 강경하게 다루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갤럽 여론조사(8월29~31일)를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여론은 분명 부정적이다. ‘오염수 방류로 해양과 수산물이 오염될까 걱정된다’는 의견은 75%다. ‘방류로 인해 수산물 먹기가 꺼려진다’(60%)는 의견도 ‘꺼려지지 않는다’(37%)를 압도한다. ‘방류 위험성은 과장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절반이 넘는 54%로 ‘과장됐다’(35%)는 의견보다 훨씬 높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8월22일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방류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여론 오독하고 있다”

여론조사 수치만 보면,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 의제를 앞세워 대여 투쟁 수위를 높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효과는 크지 않다. 무엇보다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 같은 기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더불어민주당 27%였다.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5%포인트 하락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금 이 대표와 지도부가 민심을 일차원적으로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재선 의원은 “어떤 사안에 반대 여론이 높은 것과 그 의제를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면서 “지금 국민이 제일 바라는 의제의 우선순위는 경제와 일자리, 민생 등이다. 특히 민주당이 잡아야 할 중도·무당층과 서민들의 요구가 그렇다. 물론 오염수 방류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지만, 그런 민심의 표출을 민주당이 장외에 나가 투쟁하라는 신호로 해석하거나 제일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의제로 풀이하면 안 된다. 그건 민심을 오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연구원 부원장 출신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프라이밍 효과(Priming effect)’라는 정치학 개념을 사용해 이를 쉽게 풀이했다. 최 소장은 “국민에게 개헌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으면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정부가 해야 할 의제의 우선순위로 물으면 개헌은 늘 후순위에 자리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우선시하는 의제를 제1야당이 정말 열심히 추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금 주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식의 퇴로가 마땅치 않은 점도 민주당으로서는 난감한 대목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야당 지도자의 단식은 집안 식구보다 여당 그리고 대통령과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할 때 정치적인 의미 부여와 충돌 해소를 기대할 수 있는데 그간의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전향적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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