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자충수 되는 윤 대통령의 ‘이념전쟁’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8 16: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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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층 분열 초래하고 중도층 등 돌리게 하는 필패 전략
실용주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던 국민의힘, 혼미 속에 빠져

“느닷없이 나온 홍범도 등의 흉상 이전에 어리둥절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는 게 불필요한 분란을 막는 길이다”(조선일보 사설), “하지만 ‘1+1을 100이라고 하는 이런 세력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식의 거친 발언은 비단 민주당뿐만 아니라 그저 일상과 건강을 걱정하는 보통 사람들까지 등 돌리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중앙일보 ‘안혜리의 시선’), “무엇보다 정무 기능, 법무 기능이 마비된 가운데 대통령 앞에서 ‘그건 아닙니다’ 말 못 하는 대통령실 정황이 더해간다는 게 겁나고 두렵다”(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늘상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앞세우는 진보 성향 언론들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다.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이라는 얘기를 듣던 보수 성향 언론들에서 최근 나온 우려의 쓴소리들이다. 원래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던 사람이 하는 비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하지만 자신과 가까웠다고 믿었던 사람이 하는 비판은 아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다지 아파하지 않는 것 같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23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를 방문해 ‘23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습상황을 점검하며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말들, 민심과 충돌하는 상황 잦아

언론이 ‘이념전쟁’이라고 이름 붙인 윤 대통령의 발언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시작해 여당 국회의원들이나 국무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함께 나설 것을 독려한다. 윤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다.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세력과 그와 함께하는 세력을 가리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있다면 당연히 법에 따라 엄단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민생 문제가 산적한 이 시기에 그 문제가 국정에서 그렇게까지 우선되어야 할 사안인가. 적지 않은 국민은 그런 의문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당이 그동안 극단주의 노선에 갇혀 팬덤과 함께 일각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정치를 해왔다면 그것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혹여 민주당 세력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 된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말들이 민심과 충돌하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그러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력들 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오염수 방류 이후 IAEA, 일본의 도쿄전력과 수산청, 우리 정부가 실시한 해수 조사 결과가 모두 일관되게 정상치를 나타내는데도 “우물에 독극물을 퍼넣었다”는 식으로 나오는 야당의 주장은 과도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챙겨야 할 것은 국민의 여전한 불안감이다. 9월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로 우리나라의 해양과 수산물이 오염될까 걱정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5%가 ‘걱정된다’고 밝혔다. ‘걱정되지 않는다’는 22%의 응답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싸우겠다는 말을 하기 이전에 국민을 더 설득하고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순서다. 그것이 소통하는 국정 운영이다.

국방부가 ‘공산주의 경력’을 이유로 육사 안에 있던 김좌진·이범석·이회영·지청천·홍범도 등 5인의 흉상을 철거하려던 방침도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미디어토마토’가 8월28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홍범도 장군 등 ‘독립 영웅’들의 흉상 철거 추진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65.9%가 반대하고, 22.1%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상 여론조사들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만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선에서 절충적인 결론을 내렸다. 홍범도의 소련공산당 입당 전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역사적 논쟁 사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지금 이 시기에 그의 흉상을 이전하는 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국민 여론의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는 따른다.

 

이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는 국민의 삶

그러다 보니 ‘평지풍파’를 낳아 소모적인 논란을 불러오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시국에 윤 대통령이 왜 갑자기 이념전쟁을 선도하는 것인지는 사실 정치적 미스터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8월29일 국무회의 비공개 자리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정무적으로 내일모레가 선거고 시기적으로 역사 논쟁으로 가는 게 맞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차라리 얘기 안 꺼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한다. 정무적 판단으로는 (얘기 안 꺼내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가만히 놔두는 것이 옳으냐.” 정치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역사와 이념에 관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가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윤 대통령의 생각이 ‘민생과 삶’의 문제가 국정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국민 다수의 생각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용산발 이념전쟁이 계속 이어질 경우 곤혹스러운 것은 당장 내년 4월에 총선을 치러야 할 국민의힘이다. 총선 정국에서 벌어지는 이념전쟁은 여당으로서는 대형 악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선거의 승부를 좌우할 중도층과 부동층은 이념을 앞세운 정치를 낡은 것으로 여기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념전쟁은 이념적 보수의 정체성을 가진 층의 환호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합리적인 보수층의 분열을 초래하고 중도층의 등을 돌리게 만드는 필패의 전략이다. 21대 총선에서 참패를 겪은 후 그것을 깨닫고 실용주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던 보수정당의 길이, 대통령의 말로 인해 혼미 속에 빠진 모습이다.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13일 새시대준비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물론 이념적인 지향은 중요하다”면서도 “저는 지나치게 이념에 집착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자칫 이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인 국민의 삶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새 시대의 정치는 실사구시·실용주의 정치”라며 “국민의힘도 실사구시·실용주의 정당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는 주문까지 했다. 지금 다시 봐도 토씨 하나 바꿀 필요 없는 합리적인 말이었다.

그로부터 1년9개월이 지난 지금,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모인 연찬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다”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 무엇이 윤 대통령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든 것인지 궁금하다. 야당의 ‘엉터리 사기 이념’이 윤 대통령을 각성시킨 것일까. 분명한 것은 ‘엉터리 사기 이념’뿐 아니라 모든 이념전쟁은 ‘철 지난’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미 윤 대통령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칫 이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인 국민의 삶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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