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의 문제, 멈춰 서서 같이 생각해볼 때”
  • 오종탁 기자·정윤성 인턴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8 12: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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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헤더윅 서울 전시 흥행 이끈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가 9월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 마련된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장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가 9월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 마련된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장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헤더윅 스튜디오 서울 전시인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전(이하 《헤더윅전》)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를 9월5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폐막을 하루 앞두고 한숨을 돌릴 만도 한데, 이 대표는 여전히 전시장 상황과 관람객 반응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겼다. 마침 이날은 올해 국내 미술계 최대 행사인 국제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서울 2023》 참석차 방한한 아트 컬렉터와 예술가가 대거 《헤더윅전》을 찾았다. 이 대표는 이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자신의 직책을 밝히고 전시에 관한 얘기를 함께 나눴다. 문득 그는 “내일 전시를 마무리해야 하는 게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활동해온 베테랑 큐레이터에게도 이번 전시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비주류로 취급되는 건축 전시가 이토록 큰 인기를 끈 것이 이 대표 개인은 물론 국내 전시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흥행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주제, 적절한 장소 선정, 공들인 기획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는 “이 시대가 건축에 주목할 때 전시를 진행하게 된 것이 일차적인 요인이다. 옛 서울역사라는 장소도 잘 정했다고 본다”며 “한 땀 한 땀 공들여 전시를 준비한 것까지 관람객들이 알아봐줘 기획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기획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도 ‘더 잘할걸’ 하는 미련이 남는다”면서도 “《헤더윅전》이 한국이 건축의 진정한 역할에 눈뜨기 시작하는 기점이 된 것 같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술이나 건축의 기능은 우리를 잠시 멈춰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며 “《헤더윅전》을 통해 ‘하던 일을 멈추고 한국 건축의 문제점을 놓고 같이 생각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헤더윅전》이 건축 전시로서는 이례적인 흥행몰이를 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선 이 시대가 건축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을 때 전시를 진행하게 된 것이 주효했다. 옛 서울역사에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문화역서울284는 《헤더윅전》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담기에 꼭 맞는 장소였다. 한국 관람객들만을 위해 관련 자료를 모조리 번역해 아카이브화하고 대형 사진과 스크린 등 전시 보조 자료에 과감히 투자하는 등 ‘조각품 빚듯’ 전시를 공들여 준비한 것도 관람객들 마음을 움직인 요인이라 생각한다.” 

예술 전시임에도 현실적이고 선명한 문제의식을 제기한 점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예술 하면 다 ‘예쁜 것’만 생각한다. 그런데 예술의 핵심은 시대를 반영하는 생각과 삶의 모습을 어떻게 잘 표현하느냐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돈을 더 써서 감성 있는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비용과 시간, 규제 등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며 나아가는 ‘선택과 집중’에 능하다.” 

9월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구글 신사옥 ‘베이뷰’(헤더윅 스튜디오가 덴마크 건축회사 BIG와 공동 설계) 건축모형 앞에서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9월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구글 신사옥 ‘베이뷰’(헤더윅 스튜디오가 덴마크 건축회사 BIG와 공동 설계) 건축모형 앞에서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건축가들이 제대로 일할 토양 만들어져야” 

《헤더윅전》을 기획하고 치러낸 큐레이터로서 한국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해외에 있다가 한국에 올 때마다 도시의 특색을 나타내줄 건물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당장 코앞에 닥친 부실시공 문제, 건설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문제 등에 있어서도 속수무책이다. 건축가들이 제대로 된 건축 도면을 만들어 제값을 받는 기본 구조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전시가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나. 

“《헤더윅전》을 기획한 건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건축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에 관해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생각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예술이나 건축의 기능은 우리를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층의 반응이 특히 뜨거웠다. 전체 관람객의 80% 이상이 20~30대였다는데. 

“(초대권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다들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해 줄을 서서 입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건축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가 전시의 흥행을 이끌었다. 개인적으론 ‘아직 어리고 돈이 없더라도 밥값, 커피값 조금 아끼면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다’고 보는데, 청년 관람객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청년 관람객들의 관심과 열기에 호응해 취한 조치가 있었나. 

“수요일~금요일 야간개장 때 무료 피아노·바이올린 공연을 열었다. 김지애 피아니스트와 기획한 이 공연은 젊은 데이트족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젊은 음악가들에게 연주 기회를 제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헤더윅전》이 마무리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미 오늘(9월5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에서 《럭스: 시적 해상도》란 제목의 현대미술 전시를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등 지금 이 시대의 미디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주요 현대미술 작가들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전시다. 역시 ‘예술은 동시대를 관통해야 한다’는 대명제와 맞닿아 있다.”  

 

■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는 

이지윤 대표는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92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골드스미스대에서 서양미술사 석사 학위를, 런던시티대에서 미술관·박물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로서 한국과 유럽의 현대미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2014~1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런던 대영박물관 내 한국관, 2005년 덴마크 왕립미술관 샬롯텐버그 《서울언틸나우》, 2010년 런던 사치 갤러리 《판타스틱 오디너리》, 2012년 런던 올림픽 IOC 커미션 《블루크리스털 볼》, 2014년 DDP 개관 《자하 하디드 360도》, 2021년 예술의전당 《불가리 컬러》, 2021년 런던 180스튜디오 《럭스: 새로운 현대미술의 물결》 등이 그가 기획한 대표적인 전시들이다. 현재 이끌고 있는 현대미술 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는 2003년 설립했다. 작품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큐레이터의 직업적 소명이 녹아든 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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