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앞둔 잔나비, 레트로를 넘어 ‘무한 가능성’을 말하다
  • 강윤서 인턴기자 (codanys@naver.com)
  • 승인 2023.10.14 15: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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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보컬 최정훈 “완급 조절 비결? 그 방법을 모르는 데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기 의심’ 그 사이에서 탄생한다는 명곡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가사 중)

시 한 편을 읊은 듯 아름다운 노랫말은 가을과 어울린다.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특히 그렇다. 한국 주류 음악계에서 잘 접해 보지 못했던 ‘빈티지 감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들을수록 감성에 젖게 하는 이 곡은 2019년 제대로 된 프로모션도 없이 음악의 힘으로만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4년 데뷔 후 차곡차곡 쌓아올린 오랜 시간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룹사운드 잔나비가 내년에 활동 10주년을 맞이한다. 결코 쉽지 않은 가요계 밴드 10주년을 거머쥔 힘은 시적인 노랫말과 멜로디, 호소력 짙은 보컬의 조화에 있다. 모든 음악을 작사·작곡하는 보컬 최정훈은 모던 록, 록 오페라, 포크 등 매번 색다른 장르 전환을 선보여 왔다. 잔나비는 ‘축제 섭외 1순위’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의 공연 강자다. 콘서트를 다녀온 팬들은 엄청난 에너지와 숨은 명곡 릴레이에 다시금 ‘충성 서약’을 한다. 11월에는 영국 웸블리 공연을 통해 ‘해외 팬심’도 훔칠 계획이다.

10월8일 잔나비 두 멤버의 고향인 성남시 분당에서 열린 무료공연에는 1만여 명의 관중이 모였다. 10년의 여정에서 점점 더 사랑받고 있는 잔나비는 이번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시사저널에 그 비결을 전했다.

10월7일 분당에서 열린 ‘파크콘서트’가 끝나고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운데 잔나비 보컬 최정훈(오른쪽에서 세번째)과 기타 김도형(오른쪽에서 네번째)이 앉아 있다. © 잔나비 제공
10월7일 분당에서 열린 ‘파크콘서트’가 끝나고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운데 잔나비 보컬 최정훈(오른쪽에서 세번째)과 기타 김도형(오른쪽에서 네번째)이 앉아 있다. ⓒ잔나비 제공

잔나비 음악 정체성의 중심은 무엇인가.

“잔나비 정체성의 중심은 늘 ‘격동하는 음악’에 있다. 음악을 처음 접한 어린 시절, 우리가 느낀 음악 감성은 현재의 주류를 이루는 흥겨우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쿨(Cool)하고 칠(Chill)한 게 아니었다. 감동하고, 소스라치고, 격동하는 마음을 자아내는 것이 음악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때는 옛 음악의 작법과 형식만이 우리가 원하는 그 울림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 오로지 ‘옛날 음악’에만 꽂혀서 지낸 시절도 있었는데, 그때 빈티지 팝 앨범 《전설》을 만들었다.”

변화가 생겼나.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잔나비 음악에는 ‘레트로’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더 큰 힘이 잠재해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의 음악을 위해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채워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타 김도형과의 케미가 남달라 보인다. 작업 분위기는 어떤가.

“웃기게도 음악적인 갈등이나 고비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소한 의견 차이가 생겨도 항상 양보하고 서로의 의견을 따라줬다. 작업하다 보면 한쪽의 희생이 아닌 서로를 믿는 마음에서 우러난 ‘자기 의심’이 생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우리 둘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합쳐져 탄생한다. 따뜻하지만 치열한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다.”

평소 작사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큰 영감을 얻는다. 홀로 심취해 며칠 보내다 보면 소소한 일에서 몇 가지 상념들이 한 줄기 엮여 나온다. 그럴 때마다 쓱 적어서 모아두었다가 가사를 쓸 때 이리저리 끼워 맞춰본다. 평소 거의 동일한 주제에 대해 사색하다 보니, 어떻게 끼워 맞춰도 한 곡이 완성되는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

책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들었는데.

“3집 《환상의 나라》를 만들 때 특히 그랬다.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에 빠져 있었다. 《악의 꽃》(보들레르의 시집)을 읽을 때 상상했던 이미지를 음악에 녹여보고 싶었다. 그리고 번역체 특유의 느낌이 재미있어서 각 트랙 제목도 마치 해외 문학책의 번역된 제목처럼 하고 싶었다. 그런 발상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반 고흐의 이야기를 그린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추천한다. 음악 영화는 아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르를 관통해 느낄 수 있는 바가 많은 작품이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은 누구인가.

“어릴 적엔 산울림,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엘튼 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근에는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라이브 공연의 엄청난 폭발력과 완급 조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완급 조절의 비결은 완급 조절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데 있는 것 같다. 매번 무대에 오르기 전에 멤버들과 손잡고 교감의 시간을 가지며 이런저런 다짐과 작전을 세운다. 그때 항상 외치는 말이 있다. ‘흥분하지 말고 기승전결을 좀 갖춰보자!’ 그러나 과장 ‘1’도 없이 단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다.”

공연에서 선보일 곡을 선정하고 순서를 배치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공연의 주제나 그 당시 기분에 따라 하나 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정말 유명하지 않은 곡이 주된 자리에 들어갈 때도 있다. 물론 많은 분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가 뭔지도 잘 알기에 그 부분도 꼭 고려하는 편이다.”

연습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잔나비 공연은 쇼(Show)적인 면이 주가 되지만, 스포츠에서 볼 수 있는 정신력과 영혼도 내재돼 있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간혹 체육인의 태도를 보곤 한다. 제가 그렇게 유도하는 것도 있다. (연습 시간은) 모두가 즐거워한다는 가정하에 가장 오래, 가장 자주 한다. 교감해야 하는 일이기에 즐거움이 없다면 오래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최근 들어 많이 느낀다. 그래서 함께하는 연주자분들께 늘 감사할 따름이다.”

공연을 앞두고 목과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커피포트와 꿀, 요가매트를 챙긴다. 평소 요가를 아주 열심히 한다. 콘서트 당일에는 꼭 집에서 입던 잠옷 바람 그대로 나와서 리허설까지 마친다. 실컷 몸을 푼 다음에는 정신적인 부분을 가장 신경 쓴다. 절대 하지 않는 일은 야식 먹는 것. 그게 목에 최악이었다.”

팬덤이 두터운데 남다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콘서트장에 말 그대로 남녀노소 많은 분이 찾아주시는 걸 보고 기분이 정말 좋은 와중에도 스스로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되짚어본 비결 아닌 비결은, 우리는 단 한 번도 특정 세대를 겨냥한 음악 작업이나 활동, 마케팅을 펼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두루두루 사랑받는 이 영광도 꽤 있을 법한 일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을을 맞이해 신곡 작업 중이라고.

“《서른 즈음에》를 작사·작곡한 강승원 음악감독님이 만든 신곡에 가창자로만 참여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노래다. 처음에 감독님께서 ‘이 노래 네가 해볼래?’라고 하시며 통기타 한 대만 치면서 불러주신 날을 잊지 못한다. 아마 제가 감독님보다 못 불렀을 거다. 그래도 곡을 잘 해석해 보고자 노력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곧 활동 10주년이다. 소감 한마디 한다면.

“10년간 별의별 일이 있었다. 그 긴 과정 속에서 잔나비의 음악과 행보를 함께해준 팬분들께 감사하다. 팬분들 덕분에 10년간 밴드이자 인디뮤지션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는 일도 극복하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발걸음으로 꾸준히 나아간다면, 지금으로부터 또 다른 10년 후에는 크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잔나비만의 메시지를 완성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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