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신촌 6평 원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40만원”
  • 정윤경 인턴기자 (yunkyeong000@daum.net)
  • 승인 2023.10.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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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인근 평균 월세, 전년 동기 대비 50.16% 상승
월세 100만원 이하는 ‘하늘의 별 따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은 기본이에요. 그 이하 방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시면 돼요”(공인중개사 운영 10년 차 A씨)

대학가 월세가 급등하고 있다. 이마저도 방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대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자취방을 구하는 대학생들의 주거난의 심각한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신촌 일대를 돌아봤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은 기본”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이 몰려있는 신촌 일대.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를 찾아가 “보증금 1000만 원으로 월세를 구하고 있다”고 문의했다.

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는 “방이 귀해서 잘 없는데 월세를 얼마 정도 생각하고 왔냐”고 물었다. 기자가 “70만원 정도”라고 했더니 “70만~90만원짜리 방은 거의 없다. 100만원대 방도 서너 개 밖에 안 남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41만원짜리 오피스텔을 보여줬다. 13층짜리 건물에 층마다 12개 호실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6평 남짓한 원룸에 주방, 욕실이 딸려있는 구조였다. 침대 등 별다른 가구가 들어있지 않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층고도 높지 않았다. 신장이 163cm인 기자가 손을 위로 쭉 뻗었을 때 그보다 조금 넘게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보증금 1000만원에 141만원짜리 원룸.ⓒ시사저널 정윤경
보증금 1000만원에 141만원짜리 원룸 ⓒ시사저널 정윤경

A씨는 “사무실 용으로 설계돼서 그렇다”면서 “전입신고도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보증금을 높이고 월세를 낮출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그건 안 된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A씨가 월세 9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보여줬다. 여기에 관리비 약 15만원을 더하면 사실상 한 달에 100만원을 넘기는 건 똑같았다.

월세를 줄이니 당연히 평수도 줄었다. 4평 남짓한 공간에 방, 욕실, 주방이 있었다. 해가 들지 않는 것도 단점이었다. 오후 1시쯤 이곳을 찾았지만, 북동향에다가 사방이 건물로 막혀있어 불을 켜지 않으면 햇빛이 들지 않았다. 층수를 옮기려면 “5만원을 추가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들도 A씨처럼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은 기본”이라고 입을 모았다.

A씨가 운영하는 곳에서 10여 분 떨어진 공인중개업소를 찾았다. 이곳 대표 B씨는 “70만원짜리 원룸은 다 나갔다”면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5, 관리비 10만원 정도 하는 곳이 최저가”라고 말했다.

최근 월세가 급격히 오르다 보니 비교적 저렴한 곳에 방을 얻은 학생들이 월세를 인상하더라도 계약 연장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B씨는 “70만원짜리 원룸에 사는 학생들이 월세 5%를 더 올리더라도 그 집에 살려고 한다”면서 “5%면 2~3만원인데, 나오면 50만원씩 더 줘야 하니까 그렇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대학가에서 멀리 떨어진 공인중개업소를 찾았다. 연세대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서 보증금 1000만원으로 70만원짜리 원룸을 겨우 구했다.

이곳 대표 C씨는 “방이 이거 하나 남았는데 연식이 좀 오래됐다”면서 “20년 넘은 건물이라 조금 열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싼 월세에 대학가에서 쫓겨나 ‘그룹홈’ 살기도

신촌 일대는 서울 시내에서 1년 새 가장 월세 상승폭이 컸던 곳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운영하는 ‘스테이션3’에 따르면, 지난해 8월 56만2000원이었던 평균 월세는 1년 만에 79만원으로 50.1% 올랐다. 서울 평균 월세 상승폭(23.2%)의 두 배가 넘는 셈이다.

이화여대 앞 공인중개업소.ⓒ시사저널 정윤경
이화여대 앞 공인중개업소.ⓒ시사저널 정윤경

하지만 실제로 매물을 구하러 다녀보니 평균보다 훨씬 웃도는 가격에 원룸이 거래되고 있었다. 평균가인 79만원대 방은 매물이 없을뿐더러 이미 계약이 성사된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은 월세를 분담하기 위해 3~4명씩 ‘그룹홈’에 살기도 했다.

이화여대 정문에서 만난 곽아무개(21)씨는 “이번에 기숙사에 떨어져서 ‘코리빙하우스(가구가 배치된 주택에 입주자가 개인방을 가지면서 공용 공간을 공유하는 주거방식)’에서 살게 됐다”며 “한 명당 월세 69만원을 내고 관리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80만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곽씨는 “이화여대 앞은 월세가 너무 올라 부담스러워 신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구했다”면서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시지 않으면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깡통전세, 전세사기 등의 여파로 월세 수요가 올랐다고 분석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빌라나 오피스텔 등에서 최근 전세사기가 발생해 소액 전세보다는 보증부 월세로 수요가 몰리다 보니까 가격도 급등했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아파트는 전세금을 안 돌려줘도 경매에 넘기면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데 원룸이나 빌라는 제값을 못 받는다”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전세를 들어가기보다는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월세를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원룸 전세가 안전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확인하기 전까지는 한동안 월세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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