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 72%…중동 정세 불안에 韓에너지 안보 흔들?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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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입 물량 중 사우디 등 중동 3개국 비중 50% 넘어
러-우 전쟁 여파로 중동산 도입 늘어…지난해 67.4% 기록
과도한 의존도에 우려 증가…배후 의심 이란 “관여 안했다”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인 팔레스타인 내 가자지구 건물 ⓒEPA=연합뉴스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인 팔레스타인 내 가자지구 건물 ⓒEPA=연합뉴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 비중은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칫 ‘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국내 원유 수입에 상당한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체 수입 물량 줄었지만 중동산은 오히려 3.5% 증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원유 수급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 상당수 물량이 중동산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한국석유공사의 원유수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 1월부터 8월까지 중동 지역에서 수입한 원유의 물량은 4억7920만 배럴이었다. 전체 수입 물량(6억6143만 배럴)의 72.4%에 달하는 비중이다. 이 기간 전체 수입 물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 감소했지만 중동산 원유의 수입은 3.5% 증가했다. 이에 중동산 원유의 비중은 지난해 같은 기간(66%)에 비해 6.4% 늘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산유국 3개국의 의존도가 특히 높았다. 올 1~8월까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수입한 원유는 2억1632만 배럴로 전체 수입 물량의 32%에 달했다. 이어 아랍에미리트(UAE·6596만 배럴), 쿠웨이트(6560만 배럴) 등이 각각 약 10%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3개국의 수입 물량이 전체 물량의 절반을 넘는 상황이다.

2016년 85.9%에 달했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2021년 59.8%를 기록하는 등 5년 새 26%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증가세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지난해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67.4%를 기록했다. 올 들어 이 비중은 70%를 넘어서는 등 중동 원유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동산 원유 수입이 늘어난 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이 크다. 지난 6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펴낸 ‘러-우 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러-우 전쟁 발발 이후 2021년 기준 전체 원유 수입의 5.6%를 차지했던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대체 수입처로 중동을 선택했다.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프리카중동팀 전문연구원은 “지리적 근접성으로 운송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물량확보가 가능한 중동으로부터의 원유 도입 선호 기조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중동 국가의 원유 수입 큰 손이었던 중국이 값싼 러시아 원유로 선회하면서 중동산 원유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이스라엘 여성이 7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은 남부 도시 아슈켈론에서 아이를 안고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 여성이 7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은 남부 도시 아슈켈론에서 아이를 안고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해관계 다른 산유국…일단 발 빼는 이란

문제는 수입 의존도가 70%가 넘는 상황에서 향후 중동 정세에 따라 수급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직 교전상황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국한돼 있는 터라 이들 핵심 산유국들의 영향은 없다.

하지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9일(현지 시각)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의 통화에서 “사우디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지킬 것이며, 팔레스타인 영토의 평온과 안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통화내용에서 이번 무력충돌을 일으킨 하마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미국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또 다른 핵심 산유국인 쿠웨이트에선 하마스의 공격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다만 UAE의 경우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들은 UAE의 반응은 주변 국가의 전쟁 개입을 막으려는 미국 주도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게시된 휘발유·경유 가격 ⓒ연합뉴스
지난 9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게시된 휘발유·경유 가격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최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 가능”

관건은 이란의 행보다. 이란은 주유엔 이란대표부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이번 대응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냈지만 이번 하마스 공격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이에 이스라엘을 지원하기로 한 미국이 자금 동결 등의 제재를 통해 이란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다니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국제유가는 이같은 우려에 반응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지난 9일 3.08% 상승한 88.5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배럴당 96.75달러로 연고점을 찍고 지난 6일 84.83달러까지 떨어졌던 가격이 다시 반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원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하마스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보도가 나오며 서방의 대(對)이란 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일 원유 생산량이 200만 배럴 감소한다면 원유 재고는 6000만 배럴 줄어들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유가는 최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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