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참패 책임론 휩싸인 與, 이겨도 웃지 못하는 野
  • 박나영·이원석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3 14: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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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수도권 위기론 현실화…김기현 대표 체제 ‘위태’
민주, 이재명 체제 강화로 계파 갈등 계속 잠복…보선 승리가 '독'이 될 수도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7.15%포인트 차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에 압승하면서 이 같은 결과가 양당의 총선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린다. 강서구가 야당 텃밭이니만큼 민주당의 승리가 점쳐졌지만 예상보다 큰 격차로 승패가 갈리면서 국민의힘의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에서 선거 패배에 대한 김기현 지도부 책임론과 쇄신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분위기다. 

ⓒ뉴시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진교훈 신임 구청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9일 유세 중 함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

“완전한 패배”…與 지도부 교체론 재분출하나

민주당은 이번 선거 승리를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규정하고 국정 쇄신을 더 압박할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가 구속을 면하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총선 준비 과정에서 이 대표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승리에 도취해 자칫 쇄신의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있어 이번 승리가 오히려 총선을 앞둔 당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7.15%포인트 차 패배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은 국민의힘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내년 총선의 핵심 격전지인 수도권에서의 전망도 상당히 어두워진 셈이다. 김기현 대표는 선거 패배가 확실시된 10월11일 밤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강서구가 ‘어려운 험지’였다고 강조하며 오히려 “우리 당의 내년 총선 압승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지만, 당내에선 냉담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실 보좌진은 “구청장 선거를 당 지도부는 물론 당 중진들, 현역 의원들까지 총동원해 치렀는데 이 정도 차이가 나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완전한 패배”라면서 “험지였다고 합리화할 게 아니라 냉정하게 지금 국민의힘을 향한 민심을 받아들이고 당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일갈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참패의 후폭풍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의 향배다. 선거 전부터 여권 내에선 이번 선거 결과가 김기현 지도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즉 선거 패배의 책임을 김 대표가 지고 교체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주장들이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국민의힘이 김 대표의 얼굴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당초 김 대표가 선출된 올해 3월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주목도가 낮은 김 대표가 총선을 지휘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년 총선은 수도권이 전체 승패의 향방을 가를 최대 격전지인데, 당대표(울산)와 원내대표(대구) 등 지도부가 모두 영남에 머물러 있어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대표를 향한 그 회의론이 이번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재분출할 조짐이다. 

선거 전에 비윤(非윤석열)계 이준석 전 대표는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패배하게 되면 수도권에서 동요가 일 수 있기 때문에 지도부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친윤(親尹)계 당 관계자도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 당 내부에서 ‘김기현 지도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우 전 구청장을 강서구청장 후보로 낸 것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이번 선거는 김 전 구청장이 지난 5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와 관련해 유죄를 확정받고 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것인데, 당 지도부가 해당 선거에 귀책사유가 있는 인사를 후보로 내는 리스크를 감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실 보좌진은 “참패의 원인은 무엇보다 보궐선거의 원인이 된 전직 구청장을 다시 내보낸 것이라고 본다”며 “다른 후보를 냈다면 이 정도 격차가 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량급 인사들에 현역 의원까지 총동원해 선거의 주목도를 높인 것도 지도부의 전략적 실수였다는 지적도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보궐선거 참패 다음 날인 10월12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참패 직후 김행 사퇴…인사 대개편 신호탄?

선거 전부터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할 시 비대위 전환 요구가 나올 것이라면서 비대위원장을 맡을 인사들의 이름이 여권 내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전 지역균형발전위원장, 장제원 의원, 주호영 전 원내대표 등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이 나왔다.  

지도부 책임론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정식 지방선거나 총선도 아닌 구청장 보선에서 졌다고 지도부를 물러나게 하는 건 너무 과하고 전례가 없는 것”이라면서 “선거 패배에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는데 김 대표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건 과하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 책임을 김 대표에게 물으면 윤 대통령까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유죄 판결로 원래는 이번 선거에 출마 자격이 없던 김 전 구청장은 지난 8·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출마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김 전 구청장의 출마를 바랐기 때문에 부담을 안고도 유죄 확정 단 3개월 만에 사면해준 것이란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보선 참패로 이미 부담을 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프레임을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가져갔는데,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민심이 여기에 동의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 윤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치러져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만큼 이번 보선의 성적표에도 다른 누군가가 아닌 윤 대통령 이름이 쓰여 있다는 시각이다.

선거 패배 바로 다음 날 ‘주식 파킹’ 논란 등에 휩싸인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대통령실과 내각 등의 인사 대개편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하면서 당 중진, 지도부, 영남권 현역,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등을 향해 수도권 험지 차출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부산 해운대갑을 지역구로 둔 3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10월8일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 총선 승리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해 주목받았다. 하 의원의 선언으로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기득권 인사들에 대해 험지 차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비효과’가 되고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보선 참패의 충격요법으로 여당 내에선 하 의원 외에도 험지 출마 선언이 더 나오게 될 거란 전망도 새어 나온다. 실제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의 몇몇 의원도 수도권 험지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野, 이재명 색채 짙은 총선 기획단 발족할 듯 

민주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격차로 승리하자 놀라워하면서도 혹여 너무 들뜬 분위기가 될까 경계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A 의원은 “예상보다 결과가 잘 나와서 만족스럽긴 한데 선거 당일 축하하고 끝난 일이지, 지금 개별 의원들은 국감 준비로 정신이 없다. 과도하게 기뻐하고 안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특별히 잘해서 승리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사면해서 후보를 보낸 특이한 지역적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당내 분위기를 의식했음인지 이재명 대표 또한 선거 당일인 10월11일 밤 민주당 승리가 확실시되자 페이스북에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며 잔칫집 분위기를 경계하는 글을 적었다.

‘정권심판론’이 제대로 작동됐다고 보는 민주당은 향후 국정감사를 포함한 정기국회, 예산 정국에서까지 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전망이다.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검찰 비판,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를 재공천한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 논란 등으로 현 정부가 민심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이 대표 체제도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원내 사정을 잘 아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이 대표 체제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미 공고해졌다. 원내지도부 교체를 통해 이 대표의 그립이 상당히 강해졌다”고 말했다.

두 자릿수 격차로 이긴 민주당이 내년 총선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자칫 승리에 도취해 총선 전략을 안이하게 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민주당이 자화자찬에 빠져 내부 성찰과 혁신을 못 할 가능성이 높다. 두 자릿수 압승으로 정권 퇴진 투쟁 정당성이 확보됐으니 이대로만 가면 된다고 여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단식과 구속영장 기각, 추석 민심을 통해 이 대표가 기를 잔뜩 모은 상태다. 이 체제가 가속화되면서 ‘가결 5인방’에 대한 징계, 이 대표 색채가 강한 총선 기획단 발족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12월 정기국회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 숨어있는 민심이 드러날 텐데 총선 전망이 어두우면 이 대표가 일선에서 후퇴할지, 당을 지휘해 총선을 치를지 다시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총선 민심과는 무관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낮은 데다, 이번 선거 투표율 또한 높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당층이 공고해진 정치지형에는 변화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48.7%로 지난해 6·1 지방선거 당시 강서구 투표율(51.7%)보다 3.0%포인트 낮았다. 채진원 교수는 “국민의 투표 참여율이 높지 않다는 것은 정치 무관심층이 보기엔 다 형편없다는 의미다. 양당이 이번 선거에서 총력전을 벌이긴 했지만 지지층 결집이었을 뿐 정치 무관심층은 총선 전초전으로 해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히 크다는 걸 깨달아야지, ‘정권 퇴진으로 민심이 결집했다’ 등 선거 결과를 과대포장해 승리에 도취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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