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공백’ 장기화는 국민 기본권 침해다 [쓴소리 곧은 소리]
  •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공법학회 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4 17: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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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들도 사법 공백에 분노하거나 자괴감 빠져…우리 편 뽑는다는 생각은 안 돼
대통령은 품격과 자질 갖춘 후보 빨리 지명하고 국회는 정략 떠나 인준 진행을

대법원장 임명에 대한 국회의 동의안이 부결되어 사법권 침해라거나 사법부 공백이 문제가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여소야대가 원인이라는 등 여야의 정치적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기 싸움이라고 치부하는 것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분석과 개선 방안 논의를 차분히 해야 할 때다. 최고법인 헌법이 짜놓은 3권분립이나, 사법권 독립의 원천적 의미부터 성찰하는 침착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 그래야 현재의 사법 공백이란 불미스러운 일을 앞으로 되풀이하지 않는 현명함을 가지게 된다.

첫째는 근본적으로는 왜 3권분립, 사법권 독립이 필요한지, 왜 국회 인사청문과 동의를 거쳐 대법원장, 대법관을 뽑게 하는 것인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사법부에 3권의 하나인 재판권이란 권력을 주고 법원이 재판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게 해야 공정한 재판이 되어 국민의 기본권이 보호되고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정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사법권의 분립과 독립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 같아도 자꾸 이를 먼저 상기하지 않고 사법권 침해나 사법권 독립을 외친다. 3권분립도 국가권력들이 균형 있게 서로 제어하도록 해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정치가 불의로 개입하는 재판권 남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장 공석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가 9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대법원장 권한, 지위나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아

둘째, 대법원장의 권한은 대법원장이라는 지위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장 개인의 인물됨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대법원, 법원들의 권한을 대표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을 하라고 부여된 권한이다. 이처럼 근원적 정당성 차원에서 볼 때 대법원장 자체보다 대법원, 법원 자체의 권한이 독립적인 재판을 할 수 있게 충분히 확보되게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이 강력한 권한이라 야당도 그 임명권 행사에 기를 쓰고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압박감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권한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근원적 정당성을 되새겨보면 그런 정략적 생각은 접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대법원장의 권한이 강한 만큼 적절히 행사되게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헌법하에서 대법원장의 법관인사권, 법원행정권은 전국의 법관 수, 법원 수를 보면 큰 권한임을 알 수 있다. 법관 인사는 헌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소신 있는 판결들을 내릴 수 있는 법관들로 법원을 채우도록 하고 있다. 진정 법원을 독립되게 해서 공정한 재판을 내리게 하도록 검증이 좀 더 충실하게 이루어지는 위원회에서 낸 의견을 대법원장이 따르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대법원장의 인사 권한은 확인적인 것일 뿐이고 적절하게 제어될 수 있다. 대법원이 주도하는 사법행정에 대해서도 각급별로 별도로 수행되게 하자는 제안들이 나오곤 했다. 야당도 그 제어 방안 법제를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도리일 것이다. 더구나 현재 야당은 여당보다 의석수가 많은 거대 정당이기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셋째, 대법원장 권한의 정당성 근원이 사법권 독립을 확보하게 해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는 데 있다면 정말 객관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우수한 자질과 인품을 갖추면서 전문성도 탁월하다고 인정되는 후보가 지명되어야 한다. 이는 지명 대상자에 오른 사람들이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법조활동을 했고 그 내력을 들여다보고, 법조계의 신망을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장의 역할도 대법원, 사법부를 대표하는 것 말고도 대법원 자체의 권한이 합의제적으로 행사된다는 점을 고려해 다른 대법관들과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발상이 요청된다. 그래야 ‘우리 편’ 사람으로 뽑자는 생각보다 품격을 갖춘 사람을 뽑자는 생각이 확산될 수 있다. 대법원장의 역할이 위와 같은 정도로 정리되면 대법원장 임명을 둘러싼 정략적 공방이 명분부터 사그라들 것이다. 여야 합의가 도출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우수성을 가리기 위해 독립된 인사검증위원회, 추천위원회 같은 기관의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0월6일 국회 본관 로텐더홀 계단에서 열린 ‘이균용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관련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대법원장 후보자 추천·검증위 등 필요

위원회는 가능한 한 고도의 독립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헌법기관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대법관, 법관에 대한 임명제청을 하는 최고기관을 헌법에 두는 프랑스의 예가 참고가 될 것이다. 이는 장차 헌법 개정 시 논의할 사항인데 우선은 그런 검증을 최대한 잘할 수 있는 기관과 절차를 법률로라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의 동의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므로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위 인사추천위원회 같은 위원회의 정밀 검증을 거쳐 추천하게 한다면 여야 모두 추천된 사람을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여야 간 협치를 도모하는 길이기도 하다.

독립성은 또한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법관들 중 전문성이 뛰어난 인사가 대법원장,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최고법원에서의 재판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강화되고 독립성이 더욱 확보될 것이다.

이번 대법원장 국회인준 부결 사태로 법관들도 사법 공백에 분노하고 사법부의 대표를 맞이하지 못한 판사들의 자괴감이 무척 크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한 사법부라서 자신들의 대표자가 없는가 하는 자괴감보다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보루로서 사법부의 공백이라는 관점에 서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판사들, 법조인들의 사기를 떨어트리지 말아야 한다.

대법원장에 관한 헌법 개정도 논의되고 있지만 일단 현행 헌법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음 후보자는 대통령이 철저한 인사검증을 거쳐 제대로 된 품격과 자질을 갖춘 사람을 지명하고, 국회는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정당한 인사청문을 거쳐 인준 표결을 해야 한다. 거대 야당이 협력해야 한다. 이것이 협치하는 정치의 길이다. 진정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거국일치적으로 임명되기를 바란다. 이런 절차와 시간이 기본권 보호의 공백 기간이 줄어들 수 있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공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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