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전염병’ 막을 특단의 조치, 정치권이 서두를 때
  •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 상임이사·전 대통령 시민사회비서관 (isj2020@hanmail.net)
  • 승인 2023.10.20 10: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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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셀럽에 의해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자살 소식들의 폐해
“자살은 남아있는 유족들에게도 폭력”… 생명존중자살대책위 만들어야

‘예기치 않은, 폭력적인 죽음-.’ 자살을 설명하는 교과서의 한 표현이다.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지인의 자살을 경험한 분들은 이런 설명에 공감할 것이다. 그 사람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나 마음가짐 없이 듣게 되는 자살 소식은 충격적이고 폭력적이다. 자살은 돌연사, 살인과 함께 애도자가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죽음이다. 자살이 ‘폭력적’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척(Chuck)이라는 남편을 잃은 미국인 자살 유가족은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그날 아침 평범한 하루일 거라고 생각하며 일어났어요. 그러나 그날은 나와 내 아이들의 삶이 영원히 바뀌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집을 찾아온 경찰에게서 남편이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거실 바닥에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자살 유가족은 이런 충격과 혼란 속에서 전혀 다른 삶의 세계에 접어들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자살에 대해 새로운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늘 접하는 일상적인, 안타깝긴 하지만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죽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임블리나 표예림, 김용호 등 유명 유튜버들의 사례에서 보듯 자살을 예고하거나 심지어 생중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세지는 만큼 무뎌지고 익숙해진다. 이러다간 정말 교과서가 바뀌어야 할 판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별관 기자회견장에서 제5차 자살 예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별관 기자회견장에서 제5차 자살 예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언론중재위’ 등 신속히 가동해야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36명이 자살하고, 17년째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은 국격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20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24.1명으로 OECD 42개국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자살률이 낮은 남아프리카공화국 0.6명(2018년)의 40배, 페루 1.7명(2018년)의 14배에 달한다(OECD DATA, Suicide rates).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자살대책기본법을 만들고 대통령 직속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국회나 정부는 근본적인 변화에는 뒷전이다.

요즘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유명 유튜버들이나 청소년의 집단자살 소식을 포함한 ‘이전보다 더 강력한 자살 소식들’이다. 유튜브는 전통 미디어에 비해 팬덤으로 구성된 시청자층의 충성도가 높은 반면, 제도권 언론에 적용되는 법제도적 규제는 받지 않고 있어 폐해가 크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표현의 자유로 포장된 악플이나 가짜뉴스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엄청난 정신적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는 테러가 자행되고 방치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피해자들의 자살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개개인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가해행위, 더 나아가 폭력이 될 수 있다.

자살과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론은 ‘사회학습이론,이다. 그 핵심은 인간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어떤 주어진 상황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MZ세대의 행동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학습이론의 상당 부분에 공감할 것이다.

미국에서 실시한 미디어를 통한 자살 행동의 ‘모방’ 효과 분석에 따르면, 처음 3일 이내에 모방은 최고조에 달하고 약 2주 후에 감소한다. 광범위한 보도, 눈에 띄는 사항, 자살 방법의 명시적 설명, 자살에 대한 미화나 선정적 묘사 등은 특히 모방 행위가 뒤따를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연구 결과는 유튜브 셀럽의 자살이 ‘모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국내외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살 행동에 노출되면 청소년 자살 행동의 위험이 증가한다. 청소년 집단자살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이런 면에서 미디어는 물론이고 디지털 공간에서의 자살 행동은 적극적으로 규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죽임의 문화’에 정부·여야 함께 대처하길

사회학습이론에 의하면 ‘학습’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관찰자는 유명인의 지위나 명성 등으로 인해 모델을 존경할 수도 있고, 자신의 상황을 모델의 상황과 유사한 것으로 동일시할 수 있다. 특히 모델을 모방할지를 결정할 때 모델의 행동이 얼마나 미화되는지 평가한다. 명성에 부합하는 광범위한 보도를 미화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특정 모델의 행동이 광범위하게 다뤄지거나, 눈에 띄는 특이성으로 인해 더 많이 노출될수록 모방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이런 면에서 유튜브 셀럽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은 이런 동기화와 자살 행동의 확산에 부정적인 영향,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의 문화 형성을 위해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디지털 언론중재위원회나 여러 제도 개선들은 상황의 긴박성을 고려할 때 빠를수록 좋다. 디지털 환경은 급속히 변하는 데 비해 적정한 규제나 관리는 더딘 현실을 시급히 개선하자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코로나 후유증, 경기 침체, 정신질환자들로 인한 강력범죄 등으로 국민의 스트레스가 늘어났다며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가 대통령실에 ‘정신건강혁신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정신건강 혁신’에 반드시 자살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 대통령 직속 기구는 그 명칭을 ‘생명존중자살대책위원회’로 하길 바란다. 보다 본질적이고 상징적인 명칭을 쓰자는 것이다.

셀럽들을 포함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자살로 자신은 그 문제로부터 벗어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인 자살자 척(Chuck)의 아내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가 자살로 사망했을 때, 자살 피해자가 겪고 있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고통이 생존자, 즉 자살 유가족, 친구, 지역사회에 전가되는 것입니다. 자살로 인해 자살 유가족이나 친지들이 경험하는 고통은 강렬하고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생명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자살 확산과 죽임의 문화를 제어하는 데 우리 모두 지혜를 모으자. 특히 지금껏 이 문제를 방치해온 여야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상임이사·전 대통령 시민사회비서관
임삼진 생명존중시민회의상임이사·전 대통령 시민사회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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