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도, 지자체도 ‘의대 광풍’…의료계는 ‘부글부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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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대학, 신설 및 인력 확충에 총력전…사교육계도 반색
의협, ‘낙수효과’ 비관적 전망 내며 ‘쏠림 가속화’ 경고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9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9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에 '의대 광풍'이 불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추진하면서 교육계와 지자체가 모두 구체적인 확대폭을 예의주시하며 들썩이는 모양새다. 지자체와 대학은 확정안 발표 때까지 20년 만에 움직이게 될 의대 정원 '숫자'를 끌어오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바늘 구멍'으로 통했던 의대 입학 통로가 넓어진다는 기대감에 사교육계와 학생, 학부모도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와 반대로 의료계는 연일 '전면전 불사' 메시지를 내며 강경 태세다. 

 

삭발, 읍소 총동원한 지자체와 대학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과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야당 의원들의 삭발식이 나란히 진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원이 의원(전남 목포)과 소병철 의원(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은 전남 지역 의대 신설을 요구하며 각각 대통령실과 국회 앞에서 삭발을 단행했다.

이들은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광역시도에서 유일하게 전남만 의대가 없는 점을 지적하며 국립대인 목포대와 순천대에 의대 신설을 강력 촉구했다. 

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정훈 의원을 비롯한 전남 지역 의원들은 "필수의료 인력 확충과 지역에 절대 부족한 의사를 늘리기 위한 정책 목표를 실현하려면 전남권 의대 신설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현재 의대 정원은 전국 40개교에 3058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8개교·825명으로 전체 학교 수의 20%, 정원의 27%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 의대는 총 13개교, 정원 1035명으로 수도권에 학교와 학생이 편중돼 있다. 

지방에서는 수도권에 편중된 의대 정원 구조를 감안할 때 이번 증원 논의를 통해 지역 의대 신설과 기존 의대 증원 확충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8년 제주대를 끝으로 30년 가까이 의대 신설이 없었던만큼 정부가 대규모 증원에 힘을 싣는 현 시점을 '골든타임'으로 보는 것이다.

작년 한 해에만 병원을 찾아 수도권으로 상경해 치료 받은 '의료 난민'이 70만 명에 달하고, 지난 5년 간 암환자 103만여 명이 원정 치료를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붕괴된 지역 의료 체계 정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목소리가 분출하는 상황이다. 

10월1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전라남도 의과대학 신설 촉구대회에서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삭발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1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전라남도 의과대학 신설 촉구대회에서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삭발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영석 충북대병원장은 18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과대학 정원이 늘지 않고서는 의사 수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졸업 후 10년간 지역 의료기관의 필수분야에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에 대해 "위헌요소가 없다면 시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차정인 부산대 총장은 국감에서 "부산대 의대의 경우 정원의 80%를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해 지역 의사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필수 의료나 공공·지역의료로 모집 단위를 만들어 선발해 일종의 의무 복무 형태로 일하게 하면 해당 인원만큼을 필수 의료나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지역 의사로 근무하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준비해 온 포항공대(POSTECH)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긴급회의를 여는 등 지자체의 지원 속 총력 태세에 돌입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0월17일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0월17일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의사 준비할까' 사교육계 요동…의협은 '격앙'

교육계도 2025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이 대폭 확대될 것이란 전망에 요동치고 있다. 특히 사교육 시장은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에 이어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굳혀지면서 의대 입학을 노린 특별반 편성 등을 더욱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킬러문항이 줄고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만큼 다시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려는 학생들이 속출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과도한 사교육 시장을 겨냥해 꺼냈던 킬러문항 배제가 보건복지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과 맞물리면서 윤석열 정부 내 부처 간 정책이 충돌, 혼선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도 사교육 시장이 다시 출렁이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정부 정책과 맞물려 움직일 경우 이를 통제할 방안은 없다는 입장이다. 

'전면전'을 선포했던 의료계는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 발표를 일단 연기한 것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원점 재검토를 압박하며 투쟁 불사 태세를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의사 수를 늘리면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 근무 의사가 늘어날 것이란 '낙수효과'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내놓으며 피부과 등 일부 분야로의 '쏠림'만 더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의료계가 격앙된 상태라며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하지 않고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의사협회가 14차례에 걸쳐 협의체를 통해 만났지만, 단 한번도 의대 증원과 관련한 구체적 규모나 의미 있는 논의를 하지 못했다는 게 의협 주장이다. 

우 연구원장은 국가마다 의료 제도와 공급구조, 인구구성, 의료이용문화가 다른데 정부가 'OECD 평균'을 기준으로 한국 의사 수가 적다는 점을 단편적으로 부각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의료 수가 인상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 등에 대한 조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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