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호소’ 돌려차기 피해자 앞에서 “검찰 탓” 헛웃음 지은 법원장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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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기록 열람’ 법원에 거부당해…개인정보 노출로 가해자 ‘보복 협박’
“위로 전해” “檢에 화살 향해야”…공감 없는 법원장 태도에 여야 질타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부산지법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부산지법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A씨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피해자에게 불리한 사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다만 국정감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을 관할한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이 피해자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않는 답변 자세를 보이며 질타의 대상이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대전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A씨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요청으로 국회에 나왔다. 다만 A씨는 현재 수감 중인 가해자로부터 보복 협박을 받고 있어 실명과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신원 보호 차원에서 가림막 뒤에 선 채로 증언했다.

A씨는 자신의 1심 재판 기록을 보기 위해 열람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거부해 별도로 민사 소송을 제기해 사건 관련 정보를 얻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돼 보복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피해자 공판 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점 ▲가해자의 반성문이 양형에 참작된 점 ▲가해자의 강간 혐의에 대해 방송 전까지 검토되지 않은 점에 대해 지적했다.

A씨는 “첫 공판에서 CCTV 사각지대 7분이 있다는 걸 듣고 성범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공판기록을 보려 했으나 재판부에서 수차례 거절했고, 법원에서는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다’면서 ‘(사건기록을 보려면) 민사소송을 걸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을 보여주지 않으니 공판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는데, 가해자가 이를 보고 증오심을 표출했다”며 “구치소에서 제 주소를 달달 외우면서 ‘다음번에 죽여버리겠다’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피해자에게 재판 기록을 공개하는 건 재판장의 재량이고, 민사소송을 하게되면 가해자에게 피해자 신원이 노출되는 것도 알면서 법원이 이를 권유해 피해자를 보복범죄에 노출되게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사법절차가 가해자의 권리는 보장하면서 피해자의 권리구제에 대해선 관심이 무딘 거 아니냐”고 김 법원장에게 반문했다.

이 과정에서 김 법원장은 피해자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참고인께 위로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정훈 의원은 “안타깝다니요? 남 일이에요?”라며 “피해자한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김 법원장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 의원은 “재판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아니냐. 피해자가 (성범죄 혐의 추가 관련) 7번 탄원서 내도 반영 안 하다가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이 나간 후에야 판사가 입장을 바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 법원장은 “공소사실이 변경되지 않았는데도 (성범죄) 가능성을 보고 받아주는 등 해당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며 “화살의 방향은 검찰을 향하셔야 한다. 법원이 기소되지 않은 공소사실을 두고 심리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 법원장이 헛웃음을 지어보이자 조 의원은 “지금 여기가 우스운가. 웃을 일인가”라며 “인간이라면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나서 “아까 검찰도 책임 있다고 하셨는데, 오후에 검찰 국정감사도 있으니 할 말 있으면 해 보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김 법원장은 “형사소송이라는 게 공소제기를 통해 재판부 심리 내용이 특정되기 때문에 그것을 넓히려면 검찰의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김 법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A씨는 “굉장히 마음 아픈 이야기”라며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니 저런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법부는 피해자를 ‘방해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재판기록 열람, 성범죄 추가조사만 해 줬어도 보복 협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저는 20년 뒤에 죽을 각오로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제 사건을 빌미로 힘 없는 국민들을 구제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고 11시7분쯤 국회를 떠났다.

한편, A씨는 지난해 5월 부산의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일면식 없는 남성으로부터 발차기로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은 뒤 CCTV가 없는 계단에서 발견됐다. 가해자는 처음에 살인미수 혐의로만 기소됐으나 항소심에서 강간 혐의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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