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용·정의선·방시혁 웃고 김범수·김택진 울었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5 07:3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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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500대 기업 오너 일가 1614명 주식 가치 전수조사 결과
엔데믹에 웃는 회장님들…유통·게임·바이오는 여전히 울상

통화·재정 긴축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경제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경제에도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 한파’가 몰아쳤다. 자연스레 국내 주식시장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계속된 폭락장에 개미투자자는 물론 재벌들도 크게 휘청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정부가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면서 주식시장도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왼쪽부터)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왼쪽부터) ⓒ연합뉴스

삼성家 주식 가치, 전체의 절반 이상

이런 변화는 시사저널과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년 진행하는 500대 기업 오너 일가 1614명 주식 가치 전수조사 결과에도 나타난다. 국내 주식 부호 상위 50인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올해 1월10일 종가 기준 65조5612억원에서 11월10일 66조3037억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주식 부호 상위 50인의 지분 가치가 27조원 이상 증발한 지난해 조사 결과와는 대조적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주식 부호 상위 10위권 내에서는 일부 순위 변동이 있었지만 인물은 바뀌지 않았다. 올해 주식 부호 최상위권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독식했다. 이들의 보유 주식 가치는 33조6903억원으로 올해 초(30조6887억원) 대비 약 3조원이나 상승했다. 삼성가(家) 일원 4명의 보유 주식 가치가 주식 부호 상위 50인 전체의 절반 이상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1위는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그의 보유 주식 가치는 13조243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초(12조3256억원) 대비 7.44% 상승한 규모다. 국내에서 10조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인물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 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8조3959억원)과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6조3864억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5조6650억원)이 나란히 2·3·4위에 올랐다.

삼성가 일원의 주식 가치는 모두 연초에 비해 상승했다. 반도체 시장 불황에도 삼성전자 주가가 강세를 보인 영향으로 분석된다. 1월10일 종가 기준 6만400원이던 삼성전자 주식은 최근 7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이 올해 극심한 업황 불황으로 3분기까지 12조6900만원의 적자를 냈지만, 모바일 부문이 호실적을 내면서 주가 부양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주가가 향후에도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 업황이 2024년부터 개선될 기미를 보이면서 실적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올해 대비 369.3% 증가한 33조9000억원으로 예상된다. 2025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49조3700억원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왼쪽부터) ⓒ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왼쪽부터) ⓒLG제공·연합뉴스·뉴시스

5위와 6위는 현대차그룹 정몽구·정의선 부자(父子)가 차지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4조398억원)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3조1967억원)의 보유 주식 가치는 총 7조2366억원이었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주식 가치도 연초에 비해 각각 4.72%와 8.91% 상승했다. 그 결과 정 회장의 주식 부호 순위는 지난해 조사(7위)보다 한 단계 상승했다.

이들 부자의 주식 가치가 상승한 건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현대차(167조3987억원)와 기아(75조4802억원)는 올 3분기까지 196조5113억원의 합산 매출을 올렸다. 이 기간의 합산 영업이익도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이 2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전동화 전환 등 완성차 업계의 격변 속에 신속하게 미래 모빌리티 로드맵을 제시하며 대응한 성과로 풀이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맨 앞)은 재벌 2세 중 유일하게 10위권에 포함됐다. ⓒ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맨 앞)은 재벌 2세 중 유일하게 10위권에 포함됐다. ⓒ연합뉴스

해외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도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 1월부터 10월까지 영국에서 차량 17만3428대를 판매하며 점유율을 10.8%까지 끌어올렸다. 현대차와 기아는 또 올 3분기까지 미국에서 125만482대의 신차를 판매해 역대 최다 판매 기록 경신을 목전에 두고 있다. 향후 주가 전망도 밝다. 2024년 전기차 전용 모델 추가 출시와 북미 전기차 공장의 완공 등 주가 상승을 이끌 모멘텀이 풍부하다는 진단이다.

BTS를 탄생시킨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올해 조사에서 7위에 올랐다. 2021년 하이브의 상장으로 지난해 조사에서 처음으로 주식 부호 순위(10위)에 진입한 방 의장은 보유 지분 가치가 연초 대비 24.34% 오른 2조7880억원을 기록하면서 순위가 3단계 상승했다. 하이브가 올해 창사 이래 최고의 3분기 실적을 달성하는 등 호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브 역시 장밋빛 미래가 예상된다. 증권가는 군 입대로 인한 BTS 공백에도 하이브의 주가는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해외시장 진출은 하이브의 성장을 가속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하이브는 2021년 미국 기획사 이타카홀딩스와 지난해 애틀랜타 기반 음반사인 QC에 이어 최근 라틴 레이블인 엑자일콘텐츠의 음악 부문을 인수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상위 10위권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주식 가치 역시 상승했다. 구 회장의 주식 가치는 올 초 1조9776억원에서 11월 2조554억원으로 3.93% 오르면서 ‘주식자산 2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범위를 상위 50위권으로 넓혀보면, 김호연 빙그레 회장(38.61%)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34.68%), 김남호 DB그룹 회장(29.05%),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28.95%), 김준기 DB그룹 창업자(28.91%),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23.12%),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22.42%),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17.38%), 정몽진 KCC 회장(11.36%) 등의 주식 가치가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왼쪽 사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주가 낙폭 1위

반면 8위에 랭크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10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2조527억원)은 보유 주식 가치가 하락했다. 특히 김 창업자는 주식 부호 상위 50인 중 보유 주식 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 3조5854억원이던 그의 주식 가치는 11월10일 2조7053억원으로 24.55% 줄었다. 8801억원이 증발한 셈이다.

2021년 16만7000원까지 급등했던 카카오 주가는 이후 거듭된 하락세를 겪어왔다. 특히 10월23일 김 창업자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낙폭이 커졌다. 그 결과 10월27일 카카오 주가는 장중 3만7300원까지 떨어지며 2020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은 최근 김 창업자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곧바로 경기 성남시에 있는 카카오 판교아지트 소재 카카오그룹 일부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금감원이 김 창업자를 검찰에 송치한 지 일주일 만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카카오는 현재 정부의 전방위 조사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카카오와 관련해 다수의 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구로택시’ 이중 수수료 문제로 대구시가 제소한 카카오모빌리티의 부당 가맹계약 혐의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쟁사 가맹기사 ‘콜 차단’ 혐의와 관련한 제재에도 착수한 상태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도 복수의 카카오 계열사에서 제기된 중소기업 기술 탈취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11위에는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랭크됐다. 그의 지분 가치는 1조2234억원에서 1조3618억원으로 11.31% 상승했다. 장 의장은 게임업계 주식 부호 중 보유 주식 가치가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실제 방준혁 넷마블 의장(13위)의 주식 가치는 1조1193억원에서 9597억원으로 14.26%,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17위)는 1조1931억원에서 6832억원으로 42.73%나 하락했다. 장 의장의 보유 지분 가치 상승 역시 착시 효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초(3조2814억원)와 비교하면 2조원 가까운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주가 부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정책 장기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게임주는 통상 성장주로 금리 인상 시 미래가치에 대한 할인율이 높아져 주가가 약세를 보인다. 국내 게임시장의 상황도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는 평가다. 국내 게임시장은 모바일 위주여서 성장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해 과금하는 수익모델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감이 누적돼온 상태다.

엔데믹이 악재로 작용한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판매로 팬데믹 특수를 누렸던 에스디바이오센서 조영식 회장이 대표적이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급기야 올해 3분기에는 44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조 회장의 보유 주식 가치는 9874억원에서 3685억원으로 62.67% 떨어졌다. 주식 부호 상위 50인 중 가장 높은 하락률이다. 이 때문에 조 회장의 순위도 지난해 15위에서 29위까지 14계단 내려앉았다.

엔데믹 특수 누린 유통가, 올해 불황 전환

PCR 분자진단 토털솔루션 기업 씨젠의 천종윤 대표(42위)도 같은 경우다. 씨젠은 엔데믹의 영향으로 올해 3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이 때문에 천 대표의 주식 가치도 2662억원에서 2058억원으로 22.68% 감소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와 씨젠은 현재 위기 극복을 위해 비(非)코로나 제품 강화와 해외 진출에 주력하는 등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나선 상태다.

유통업계 주식 부호들도 주가 급락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보복소비 등으로 호황을 누린 유통업계가 올해 불황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비용 상승 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의 결과로 분석된다. 이로 인해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업계 빅3의 주가는 계속 약세를 보였다.

그 결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25위)의 지분 가치는 5198억원에서 4040억원으로 22.28% 하락했다. 그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26위·3983억원)과 모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28위·3852억원)의 지분 가치도 각각 29.71%와 24.53% 떨어졌다. 하락한 신세계 오너 일가 3인의 주식 가치 총액은 4095억원이었다.

이들 외에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16위·6956억원)의 주식 가치는 34.38%, 이재현 CJ그룹 회장(35위·3312억원)의 주식 가치는 25.50%,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39위·2630억원)의 주식 가치는 16.24%,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41위·2496억원)의 주식 가치는 34.38%,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2위·2335억원)의 주식 가치는 24.38%,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45위·2018억원)의 주식 가치는 15.17% 각각 하락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45위에 올랐던 홍석조 BGF그룹 회장은 아예 5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BGF그룹의 주력 사업인 편의점 부문(CU)이 부진을 겪으면서 주가가 하락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전성호 솔루엠 대표(46위·2006억원)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47위·1991억원), 김주원 DB그룹 부회장(49위·1884억원) 등은 이번 조사에서 주식 부호 50인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 홍석조 회장과 OCI가(家)의 이화영 유니드 회장, 이복영 SCG그룹 회장, 영풍가(家)의 최장규 영풍정밀 회장, 최정운 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부회장, 이충곤 전 SL그룹 회장의 차남인 이승훈 전 에스엘미러텍 사장 등은 올해 명단에서 제외됐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IT 플랫폼과 바이오, 게임 등 신흥 기업 창업자들이 주식 부호 순위에서 대거 상위권을 차지한 반면, 전통 대기업 오너는 상당수가 순위에서 크게 밀려났다”면서 “상속형 재벌이 줄고, 창업형 부자가 늘어난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이 판도가 다시 뒤집혔다. 그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주요 기업 오너들의 주식 가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졌지만, 신흥 기업 오너들의 자산 가치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면서 “기존 재벌들이 재계 순위에서 다시 상위권에 등극한 게 올해 조사의 특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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