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이냐 친미냐, 둘로 갈라진 대만…미·중 대리전으로 번지는 총통 선거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3 08: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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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 ‘친미’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를 맹추격

내년 1월13일은 향후 대만의 운명을 결정짓는 제16대 총통·부총통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11월24일은 이를 위한 후보 등록 마감날이었다. 이날까지 대만의 두 야당인 국민당과 민중당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지 못했다.

친미 성향인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 ⓒAP 연합
친중 성향인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 ⓒAP 연합

라이칭더 하락세, 허우유이 상승세 주목

이로써 여당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를 시작으로 두 유력 야당 후보인 국민당의 허우유이, 민중당의 커원저 등 3파전이 확정됐다. 정치적 성향을 보면 현재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집권여당의 라이칭더는 반중(反中)인 반면,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는 친중(親中), 민중당의 커원저는 중립적이다. 대만 대선에서 유력 후보의 3파전은 2000년에도 벌어졌다. 당시 여당인 국민당 후보로 롄잔이 선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롄잔은 당정 요직을 두로 거친 엘리트였으나 대중적인 인기가 낮았다. 이에 반해 국민당 내에는 젊었을 때부터 국민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거물 정치인 쑹추위가 있었다.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쑹추위는 당시 총통이었던 같은 당 리덩후이의 견제를 줄곧 받았고, 이로 인해 국민당은 쑹추위가 아닌 롄잔을 총통 후보로 선출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쑹추위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섰다. 야당이었던 민진당은 천수이볜을 총통 후보로 내세웠다. 비록 단기필마로 나섰지만, 쑹추위는 대중적인 인기를 앞세워 치고 나갔다. 거대 여당 후보인 롄잔을 제치고 천수이볜과 양강 구도를 만든 것이다.

국민당은 광범위한 당 기반을 바탕으로 역전을 노렸지만, 당시 대만 사회에는 정권교체 열망이 만연했다. 국민당이 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에 정착한 이래 강력한 리더십을 앞세워 경제를 성장시킨 공은 누구나 인정했다. 그러나 1947년 2·28사건을 일으켜 수만 명의 대만인을 학살했고, 수십 년 동안 계엄령을 내려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했다. 이렇듯 오랜 기간 국민당이 자행했던 과(過)를 대만인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 따라서 롄잔은 막강한 조직과 풍부한 자금을 앞세웠는데도, 천수이볜과 쑹추위에 뒤처지며 꼴찌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2000년 3월18일에 벌어진 결과는 대만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였다. 천수이볜이 39.3%를 득표해 총통에 당선되었고, 쑹추위는 36.8%, 롄잔은 23.1%로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지역별 득표 결과였다. 수도권인 타이베이시와 타이베이현에서는 쑹추위가 각각 39.7%와 40.2%를 얻어 1위였다. 뿐만 아니라 북서부에서도 쑹추위가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가오슝, 타이난 등 동남부에서는 천수이볜이 몰표를 얻었다. 게다가 수도권과 타이중에서 쑹추위와의 격차를 4% 이내로 줄여 천수이볜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러한 지역적 투표 성향은 그 후 대만의 각종 선거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라이칭더는 강력한 지지 기반인 가오슝과 타이난을 중심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선두를 지켜왔다. 후보 등록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라이칭더는 많게는 36.8%, 적게는 28.3%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지켰다. 문제는 그 추세가 여름에 피크를 찍은 후 조금씩 하락 중이라는 점이다. 그에 반해 허우유이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같은 친중(親中) 성향인 궈타이밍이 사퇴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실제로 후보 등록 이후 허우유이는 많게는 30.9%, 적게는 26.6%를 얻어 2위를 지켰다. 무엇보다 추이가 좋다. 11월 중순부터 지지율이 치고 올라오면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라이칭더와의 차이를 1% 이내로 줄였다.

그렇다고 야당 성향의 표심이 허우유이에게 완전히 쏠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커원저는 소수 야당 후보라는 약점에도 많게는 26.8%, 적게는 18.1%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유지된 지지율에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3파전 양상에서 왜 라이칭더는 치고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허우유이에게 추격을 허용했을까?

커원저 민중당 후보 ⓒEPA 연합

허우유이 “與에 투표하면 청년들 전쟁터로 나갈 수도”

첫째, 민진당 8년 집권에 대한 대만인들의 피로감이 상당히 크다.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한 이래 대만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압력을 극복하고 많은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2020년에는 글로벌 팬데믹의 위기 상황에서 3.1%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고 방역에도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1인당 GDP에서 18년 만에 한국을 추월했다. 하지만 중국과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전쟁 위기를 몰고 와 대만인들을 불안하게 했다. 또한 2030세대의 고질적인 저임금 문제를 전혀 개선하지 못했다. 대만인의 초봉은 한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둘째, 최근 대만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지난 10월 대만 경제부가 발표한 ‘현재 경제정세 개황’을 보면, 올해 경제성장률을 1.6%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5월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치다. 얼핏 보면 한국의 전망치인 1.3%보다 양호하다. 그러나 그 속내를 뜯어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대만의 수출 증감률은 -13.8%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11.5%보다 커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과 대만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나라다. 특히 대만은 IT의 산업 집중도가 절대적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대만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것은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IT 제품의 특수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IT 제품의 판매율은 급락했고, 대만이 절대 강자인 시스템반도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의 위상은 향후에도 변함이 없다. 문제는 그 밖에 글로벌 지배력을 가진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대만 경제의 믿는 구석은 중국이다. 대만은 중국이 필요한 중간재를 팔아 수익을 얻는 산업구조다. 그렇기에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가 40%대에 달한다.

이런 대만의 약점을 이용해 중국은 때로는 채찍을 휘두르고, 때로는 당근을 주고 있다. 대만해협에 군용기와 군함을 계속 보내 군사적으로 압박하는데, 민진당과 미국에 대한 견제가 목적이다. 따라서 허우유이는 이 점을 적극 파고들고 있다. 11월26일 허우유이는 “민진당에 투표하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평화가 없다”며 “모든 청년이 전쟁터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만인들이 우려하는 중국과의 전쟁 위험을 부각해 반(反)민진당 표심에 호소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투자한 대만 기업에는 여러 가지 혜택을 안겨주고 있다.

이에 맞서 라이칭더는 전쟁 위기설을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면서 친미(親美)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부통령 후보로 샤오메이친 주미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를 지명했다. 또한 미국과의 협력을 계속 강조해 왔다. 물론 미국은 외견상 대만 내정과 거리를 두어왔다. 하지만 내심은 친중 성향인 허우유이보다 라이칭더를 선호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다수 외신도 “대만 총통 선거가 미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려는 라이칭더, 중국과의 관계를 적극 개선하려는 허우유이가 치르는 미·중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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