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줄 알았던 온라인 젠더 갈등, 다시 불붙다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3 16: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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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커뮤니티 “넥슨 게임 캐릭터가 남혐 상징 ‘메갈리아 손가락’을” 
여초 커뮤니티·여성단체 “피해망상이자 마녀사냥” 반발

소위 ‘이대남’과 ‘이대녀’의 정치적 대결이 두드러졌던 지난해 제20대 대통령선거 이후에 젠더 갈등 이슈는 다소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대선이라는 정치적 투쟁 국면이 마무리되면서, 여당과 정부에서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추진한 급진적 공약을 폐기하거나 누그러뜨렸다. 한편으로는 갈등의 당사자들이 지난 수년 동안 사회를 달궈온 젠더 갈등에 피로감을 느낀 점도 컸다.

하지만 11월25일, 다시 한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논란이 발생했다. 넥슨의 온라인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의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들이 ‘남성혐오 상징’이라고 인식되는 ‘메갈리아 손가락’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넥슨과 주로 일해온 애니메이션 업체 ‘스튜디오 뿌리’라는 곳에서 제작한 것이었기에, 남초 커뮤니티의 게이머들은 스튜디오 뿌리가 제작한 게임 애니메이션들을 집단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같은 상징 제스처가 발견되면서 논란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대해 여성 이용층이 많은 X(트위터)나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초 커뮤니티의 전형적인 피해망상이자 안티페미니즘 마녀사냥이라면서 반발했고,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축이 되어 규탄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11월28일 경기도 성남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여성단체들이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 몰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제공

집단행동으로 상대 압박하는 캔슬문화

이 사건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전부터 발생해온 분쟁과 유사한 패턴들이 발견된다. 문제가 된 소위 ‘메갈리아 손가락’은 2021년에 온라인 젠더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러 번 논란을 제기했던 이슈다. 이 같은 논란의 기원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로 악명 높았던 ‘일간베스트 저장소’, 일베에서부터 발견된다. 당시 열성적인 일베 회원들은 일베를 상징하는 초성 ‘ㅇㅂ’과 특유의 손가락 제스처를 전혀 무관한 로고 이미지 등에 삽입했고, 그 이미지 자료들이 방송에 송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컨대 극단적 사상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층이 마치 게임이나 유희를 즐기듯 자신의 사상 표지를 드러내며 일탈하는 문화가 계속 확산된 것이다.

그다음으로 주목할 지점은 대중문화에 기초한 정체성 투쟁과 소비자층의 집단행동 문법이 완연히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게이머 및 게임 커뮤니티에는 2016년에 있었던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이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당시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에서 한 캐릭터 배역을 맡은 성우가 문제적 사이트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남성 게이머들이 비판을 가했고, 넥슨은 결국 문제의 성우를 교체했다. 이에 웹툰 작가를 비롯한 많은 문화산업 종사자가 넥슨을 비판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에서는 페미니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됐었다.

이 역시 온라인 집단행동을 통해 적극적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상대방을 압박하는 캔슬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이었다. 이 같은 캔슬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물론 여초 커뮤니티와 페미니스트 진영이 문제 삼은 대중문화 영역이었다. 2014년 《무한도전》 특정 에피소드에 대한 압박으로 MBC 제작진이 사과까지 한 사건은 중요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2019년 베스킨라빈스 광고가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이유로 비판이 가해져 방통위의 징계가 내려지고 광고가 ‘캔슬’되는 사건도 있었다.

따라서 이번 스튜디오 뿌리 및 넥슨을 둘러싼 논란 또한 대략 2010년부터 극단적으로 움직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출현을 기점으로 시작된 흐름의 일부인 셈이다. 그 극단화 경향에는 대중문화를 매개로 한 격렬한 정체성 갈등과 그 갈등의 방법론으로서 적극적 보이콧 운동인 ‘캔슬문화’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현재 스튜디오 뿌리를 둘러싼 갈등은 2016년 클로저스 사태로 대중문화의 젠더 갈등이 본격화되었을 때와 구도는 유사하지만 명백히 다른 점도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온라인 젠더 갈등의 격렬함이 이전보다 상당히 많이 꺾였다는 데 있다. 대략 2016년부터 2019년까지는 페미니즘 진영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대학가에서도 페미니즘을 둘러싼 학내 갈등이 끊이지 않던 열전의 시기였다. 그러나 모든 급진적 이념은 격렬하게 타올랐다가 이념 자체에 지친 사람이 많아지며 잠잠해지는 순환 주기를 갖고 있다.

온라인 페미니즘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이대남’을 정치적으로 동원했던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전과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다. 더욱이 2021년에 주로 이준석 전 대표를 중심으로 폭발하고 급진화되었던 청년 남성의 정체성 정치도 대선이 끝나고 정부와 여당이 선을 그으면서 한풀 꺾이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아마 다음 선거에서는 여당도 야당도 2030 젠더 정치에 입각한 정치적 동원을 구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게임 홍보 영상 속 ‘집게손’ 모양 ⓒ온라인 커뮤니티

집단 정체성 투쟁문법과 행동양식 발전

하지만 젠더 갈등의 기세가 꺾였다는 것이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 두 집단이 화해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여전히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는 각자의 세계를 구성하며 서로 다른 서사와 정서를 쌓아올리고 있었다. 갈등이 타오르지는 않고 있지만 불씨를 간직한 채 계속 지속되고 있었기에, 적절한 계기가 새롭게 마련될 때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점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반한 집단 정체성 투쟁문법과 행동양식이 너무나 효율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번 넥슨 사태에서도 사태 전개의 속도만큼은 번개처럼 빨라졌다. 수많은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며 문제가 되는 제스처를 찾아내며 공유했다.

따라서 이번 넥슨 사태와 이후의 전개 과정은 대중문화 영역을 중심으로 젠더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게 해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급진적 정체성 갈등에 완전히 피로감을 느끼게 된 이들이 늘어나며, 젠더 갈등이 이전처럼 격렬하게 자주 타오르는 일 없이 산발적으로만 나타나는 소강상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소강상태에서도 계속 깊어지는 감정의 골로 인해, 다른 언어와 세계관이 등장하며 갈등이 다시 격화된다는 전망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갈등이 앞으로 더 악화되지 않게 하려면 젠더 갈등이 잠시 잠잠해졌다고 해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혼인율과 출산율은 여전히 최저 수준고, 청년 남녀의 세계관 차는 전혀 좁혀질 기미가 없다. 어쩌면 두 집단 싸우지도 않으며 얘기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 젠더 갈등의 역사도 10년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넥슨 사태는 10년의 과거를 어떻게 돌아볼지에 관한 숙제를 제공하고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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