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 리스크’ 키운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2 11: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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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피의자’로 전환, 끝내 국가대표 선발 잠정 배제 
무죄 추정 원칙만 강조하던 클린스만 감독과 협회의 늦장 대응도 논란

지난 일주일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이슈의 중심에는 공격수 황의조(31·노리치시티)가 있었다. 보통 대표팀 공격수가 멋진 활약이나 부진한 모습으로 화제가 되지만 황의조는 성행위 영상 불법촬영 혐의로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놨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중국 원정에서 완승을 거둔 대표팀의 환희는 이틀을 채 가지 못했다.

현재 황의조는 성관계를 가진 상대방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황의조의 전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 A씨의 폭로가 발단이 됐다. A씨는 당시 황의조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사진·영상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당시 황의조는 자신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국내 에이전시를 통한 입장문에서 지난해 11월 그리스에서 뛰던 당시 휴대전화를 도난당했고, 올해 5월부터 사진과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A씨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6월22일 A씨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그런데 구속 후 신분을 확인한 결과 황의조의 친형수로 밝혀져 큰 파장을 낳았다. A씨는 지난 6월 입장문을 발표한 에이전시를 남편인 황의조의 친형과 함께 운영해 왔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해킹에 의한 유포를 주장하며 협의를 전면 부인 중이다. 경찰은 유포자의 고유 인터넷 IP(접속 주소) 동선 등을 근거로 해킹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황의조는 “결백을 믿는다”면서 형수에 대한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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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안우진, 배구의 이재영·이다영 등 타 종목 대응과 비교돼

반면 영상 속 여성 피해자인 B씨가 황의조와 A씨를 고소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는 11월23일 기자회견을 열어 B씨와 황의조가 나눈 메시지와 통화 녹취록을 통해 “촬영 전 동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당초 함께 A씨를 고소하자며 연락해 왔던 황의조가 유포 혐의자가 친형수임이 밝혀지자 처벌 불원서를 함께 제출해 달라며 입장을 바꾸자 B씨는 두 사람을 고소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유포된 영상 분석 과정에서 나온 불법촬영 정황이다. 경찰은 B씨의 고소와 함께 불법촬영 정황이 있다고 판단해 11월18일 황의조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반면 황의조는 “연인 사이에 합의된 영상”이라며 혐의를 부인 중이다. 황의조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대환과 B씨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는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며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황의조 측이 B씨의 신분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입장문에서 언급해 2차 가해 논란도 일었다.

이런 와중에 피의자 신분인 황의조가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자 불붙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9월과 10월, 11월 위르겐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은 황의조는 그 기간에 A매치 6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특히 피의자 전환이 확인된 후인 11월21일 중국과의 원정 경기 출전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경기 후 클린스만 감독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오히려 “40년 넘게 축구계에 몸담으며 많은 추측성 사건을 겪었다. 혐의 확정 전까지 황의조는 우리 선수다. 아시안컵도 함께할 거라 믿는다”며 옹호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만에 대한축구협회는 입장을 바꿔 황의조를 당분간 대표팀 선발에서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11월28일 오후 이윤남 윤리위원장,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정해성 대회위원장, 최영일 부회장 등이 참석한 회의 결과였다. 황의조에 대한 수사기관의 명확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그를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기로 한 것.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징계 심의는 할 수 없지만, 대표팀 선발 자체는 일단 제동을 걸었다. 황의조가 다시 국가대표로 뽑히기 위해서는 사법 당국의 불기소 처분 등의 결정으로 혐의를 벗어야 한다.

축구협회는 축구팬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을 지적하자 그제야 움직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축구협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해명했다. 황의조는 11월16일 싱가포르와의 월드컵 2차 예선 1차전을 마치고 선수단 휴식일이었던 18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19일 중국 원정길에 오를 때까지도 황의조는 이 사실을 축구협회에 숨겼다. 20일에 보도를 통해 피의자 전환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때는 이미 21일 열리는 중국전 경기 준비에 돌입한 상태여서 선수의 출전 여부를 놓고 클린스만 감독과 조율하기는 어려웠다는 것. “중국 원정이 2차 예선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경기다 보니 선수단이 분위기를 다잡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이슈를 꺼내긴 부담스러웠다”는 게 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다른 종목의 사례를 봐도 무죄 추정만을 외친 축구협회의 늦장 대응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야구의 안우진, 배구의 이재영·이다영 등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만으로 사법기관의 판결 이전에 국가대표 자격을 내려놔야 했다. 2021년 교제하던 여성에게 데이트 폭력, 불법촬영, 재물손괴 등을 가한 혐의로 고소당했던 정지석도 관련 폭로가 이어지자 소속팀 결정으로 즉시 훈련에서 배제돼 팀을 떠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 국가대표도 1년간 자격 정지 처분이 빠르게 내려졌다. 축구계조차도 2018년 국가대표 수비수 장현수가 병역특례 봉사활동 실적을 허위 제출한 의혹이 일자 빠르게 논의해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했다.

11월21일 중국과의 경기에서 대표팀 황의조가 중국 주천제 파울에 넘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황의조를 아시안컵에 데려가겠다”던 클린스만, 부메랑 맞아

선수 선발 권한을 가진 클린스만 감독은 11월28일 논의에 앞서 축구협회로부터 제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충분히 이해하며 협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결과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은 일주일 만에 리스크를 안게 됐다. 본인이 자초한 상황이다. 중국전 당시 클린스만 감독은 팀이 2대0으로 앞서며 승기를 잡았던 후반 27분 황의조를 투입했다. 같은 포지션의 오현규나 측면 공격 자원인 문선민 등 다른 옵션도 있었지만 굳이 황의조를 선택했다.

중국전을 끝으로 클린스만호는 2023년 일정을 마무리했다. 내년 1월12일 개막하는 아시안컵 전까지는 실전을 통해 황의조를 대체할 자원을 테스트할 기회가 없다. 황의조는 A매치 통산 62경기에서 19골을 기록 중이고,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도 2골을 넣었다. 최근에는 조규성이 주전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황의조를 꾸준히 교체 투입했다. 내년 1월 이전까지 수사기관에서 불기소 처분을 하지 않는 한 황의조의 아시안컵 출전 불발이 기정사실화되며 백업 공격수가 날아간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대표팀을 좁은 범위에서 구성했다. 9월, 10월, 11월의 소집명단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특히 공격진은 조규성·황의조·오현규 3명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9월과 10월의 경우 친선경기 일정이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소집할 수 있었음에도 마치 공격진은 그 3명으로 고정했다는 인상을 줬다. 결국 스스로가 좁게 가져간 선수풀은 황의조가 불미스러운 혐의를 받아 이탈하며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K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며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테스트해볼 만한 자원으로 언급되던 주민규를 긴급하게 부르거나, 혹은 연령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자원 등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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