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가왕》, 트로트 한류 일으킬까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3 14: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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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 PD의 새로운 야심작…현역 가수 경연·한일전 등 차별화 카드로 승부

한일 트로트 대결의 국가대표를 뽑는다는 설정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MBN의 트로트 오디션 《현역가왕》이 11월28일 드디어 시작됐다. 또다시 트로트 오디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1년 전 겨울엔 MBN 《불타는 트롯맨》과 TV조선 《미스터트롯2》의 격돌이 장안의 화제였다.

ⓒMBN 제공

그때도 MBN의 프로그램이 먼저 시작하고 TV조선 프로그램이 그 뒤를 이었는데, 이번에도 MBN 《현역가왕》이 먼저 시작했다. 두 프로그램 사이의 시차는 더 벌어졌다. 《불타는 트롯맨》은 《미스터트롯2》보다 이틀 먼저 시작했었는데, 이번 《현역가왕》은 《미스트롯3》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시작했다. 《미스트롯3》는 12월21일 방영될 예정이다.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은 남성 오디션이었는데 이번 《현역가왕》과 《미스트롯3》는 여성 오디션이다.

지난해엔 두 트로트 오디션의 첫방 시점이 모두 12월이었다. 《미스트롯3》가 여전히 12월을 고수하는 것에서 이 프로그램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미스트롯2》와 《미스터트롯2》가 모두 12월에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제작진 입장에선 굳이 방영날짜를 바꿀 이유도 없을 것이다. 반면에 MBN의 《불타는 트롯맨》은 최고 16.6% 시청률로 성공작이긴 했지만, 24%의 《미스터트롯2》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한 달 정도 먼저 시작해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 참가자들 ⓒMBN 제공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 참가자들 ⓒMBN 제공

다시 돌아온 트로트 오디션의 계절

이번에도 《미스·미스터 트롯》 시리즈의 제작진이 MBN에서 프로그램을 맡아, 자신들이 배출한 TV조선 프로그램과 대결을 펼친다. 바로 TV조선에서 독립한 서혜진 대표의 크레아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은 것이다. 《미스·미스터 트롯》 시리즈의 작가인 노윤 작가도 《현역가왕》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서로 성향의 차이는 있지만, 예능에서 ‘무조건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만은 통한다고 한다. 재미를 뽑아내는 이들의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는 《미스·미스터 트롯》으로 이미 증명됐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들이 너무 크게 성공했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수준의 성공을 거두면서 그 프로그램들엔 엄청난 브랜드 효과가 생겼고, 그 효과는 결국 자체적인 동력이 됐다. 제작진이 누구건 프로그램 자체의 동력으로 실력파 도전자들을 빨아들이고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힘이 발생한 것이다. 이 브랜드 파워에 인력으로 대적한다는 게 쉽지 않다. 서혜진 대표와 노윤 작가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절대 강자와 싸우게 된 셈이다.

1차전, 즉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의 충돌 때는 정면대결이 펼쳐졌다. 거의 비슷한 포맷의 일반적인 오디션 구조로 격돌한 것이다. 이번 2차전은 양상이 달라졌다. 서혜진 대표 측에서 자신들 프로그램의 포맷을 달리해 《미스트롯3》의 영역을 조금 비켜갔다.

그런 차별화 전략이 제목에 그대로 드러난다. 바로 《현역가왕》이다. 현역 가수들이 경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미스·미스터 트롯》 시리즈는 신인들이 격돌하는 일반 오디션이다. 현역 가수도 나오긴 하지만 ‘현역부’라는 한 조에 묶여 제한적으로만 참가한다. 《현역가왕》은 바로 그 ‘현역부’를 전면화해 프로그램 전체를 현역 가수로만 채웠다.

《나는 가수다》가 떠오른다. 과거 《나는 가수다》는 현역 가수들의 경연으로 국민적 관심을 받았었다. 현역의 격돌은 신인들이 도전하는 일반적 포맷의 오디션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실력이 고르게 출중하기 때문에 쇼의 완성도도 더 올라간다.

최근 JTBC 《싱어게인》도 기존 가수들의 경연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역 가수로서 오디션에 도전한다는 것은, 뭔가 굴곡이 있거나 남다른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경우라서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그런 인간적 드라마도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요인이다. 《현역가왕》 제작진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윤 작가는 “현역들은 사실상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핵심인데 기존 오디션에서는 여러 부서 중 한 부서로만 다뤄졌다. 현역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그들끼리 붙여 놓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좀 더 치열하고 진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기존 오디션에 비해 서바이벌 요소를 훨씬 강화한 포맷으로 바꿨고, 극적인 장치도 여럿 깔아뒀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현역 경연이라는 설정으로 《미스트롯3》와는 영역이 상당히 달라졌다. 그리고 《미스트롯》 시리즈의 스타를 출연시킬 길도 열렸다. 모든 현역 가수가 대상이니 어느 오디션 출신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타 오디션 스타들이 《현역가왕》에서 각축을 벌이면 이 프로그램이 궁극의 경연장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점도 제작진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작진은 회심의 카드를 내세웠다. 바로 한일전이다. 노 작가는 “축구든 야구든 한일전을 하면 우리 국민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보지 않나”라고 했다.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한일전을 트로트 오디션에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번 《현역가왕》은 본편이 아니다. 일종의 예선이고 내년에 본편, 즉 한일전이 시작된다.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의 한 장면 ⓒMBN 제공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의 한 장면 ⓒMBN 제공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의 한 장면 ⓒMBN 제공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의 한 장면 ⓒMBN 제공

한일 대결, 트로트 국제화

그것을 위해 한국 오디션 역사상 최초로 일본에 판권을 판매해 공동제작에 나선다. 이미 10월25일부터 《트롯걸 인 재팬(Trot girl in Japan)》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녹화가 시작됐다. 국내 《현역가왕》은 9월에 녹화를 시작해 11월28일부터 방영 중이고, 《트롯걸 인 재팬》은 일본 최대 방송사인 후지티비의 자회사 넥스텝과 nCH재팬이 제작 중인데 12월8일부터 후지티비, 일본 최대 위성방송인 와우와우, 일본 대형 플랫폼 아베마 등 총 3개 채널을 통해 동시 방송될 예정이다. 일본 방송이 시작되면 국내 《현역가왕》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톱7을 뽑아 2024년에 한일전을 펼친다는 기획이다. 국가대항전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현역가왕》 1회에선 도전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

처음 이런 기획을 했을 때 우리 측은 일본 업계가 호응하지 않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 적극적으로 참여 의지를 보였다. 일본에서 보기 드문 대형 오디션이고, 여성 가수들만의 대형 기획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스트롯》이 처음 시작됐을 때 많은 이가 충격을 받았었는데 일본 업계에서도 그런 반응이 있었고, 또 한국 트로트 오디션 스타들이 아이돌 수준의 인기로 시장을 강타한 점에도 놀랐다고 한다. 경기 침체를 오래 겪은 일본 입장에선 시장을 움직일 만한 계기가 된다면 무엇이든 수용할 것이다.

일본에선 참가자들이 몰려 모집기간을 당초 예정됐던 3개월에서 2주 정도를 더 연장해야 했다고 제작진은 설명한다. 《트롯걸 인 재팬》에는 한류 스타인 대성과 허영지, 그리고 트로트 스타 신유가 한국인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현지에선 J팝 히트곡들을 만들어온 후나야마 모토키, 일본의 시티팝 인기에 다시 불을 붙였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인 DJ 나이트 템포, 일본의 원조 아이돌 미나미노 요코 등이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실력과 매력이 뛰어난 가수들을 선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상당한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역가왕》의 제작을 맡은 크레아 스튜디오의 서혜진 대표 ⓒ스포츠조선 제공
《현역가왕》의 제작을 맡은 크레아 스튜디오의 서혜진 대표 ⓒ스포츠조선 제공

《현역가왕》 1회, 전 채널 동시간대 1위

마침내 시작된 《현역가왕》 1회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최고 시청률 7.6%, 전국 시청률 6.8%를 기록하며 지상파-종편-케이블 통합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 그렇게 대대적으로 홍보가 이루어지진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선방했다. 1회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출연자들이 모두 현역이란 점은 양날의 칼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이목을 집중시킬 수도 있지만, 신선함이 결여돼 기존 쇼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현역 가수 경연이 성공하려면 최고의 실력자들이 진검승부를 펼친다는 느낌이 살아나야 하고, 또 현역이지만 무명인 사람의 깜짝 등장이 이어져야 한다. 임영웅도 현역이지만 모르는 이가 많아 신선한 충격을 줬었다.

《현역가왕》 1회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 박혜신이 등장해 호응을 받았다. 그 밖에도 여러 실력자가 등장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지방 중소 행사장을 전전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의 애환이 전해지면서 스튜디오가 울음바다가 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다만 1회의 경우에 가수가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가수들끼리 서로 대화하면서 노래하는 설정이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긴장감이 지금보다는 더 올라가야 고수들의 진검승부라는 느낌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또, 가수들이 가수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제작진은 그것이 자극적이고 재미있을 거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그건 출연자를 비호감으로 만들 우려가 있는 위험한 설정이다. 노래를 잘한 동료에게 합격 버튼을 눌러주지 않은 출연자가 안티에게 시달릴 수도 있다. 이렇게 출연자가 악마화될 수 있는 설정은 앞으로 제작진이 조심해야 한다.

오디션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출연자에게 달렸다. 뛰어나고 매력적인 출연자들이 등장해야 시청자들이 빠져들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명 가수들이 새바람을 일으켜야 하고, 기존 유명 가수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전유진 등이 앞으로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또 무명 가수들과 아직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도전자는 어떤 놀라움을 안겨줄지, 그리고 장차 트로트 한류 열풍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이런 대목들이 관전 포인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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