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젤렌스키의 지루한 정치戰…탄약·전비 부족 속 전쟁 이어가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2 10: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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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과 드론 공격 중심으로 ‘지루한 전쟁’ 진행 중
러시아·우크라이나 모두 내년에 열리는 대선이 변수

지난해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하지만 지난여름 이후 계속 중인 교착 상태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지루한 소모전·정치전으로 흐르고 있다. 10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 중인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과 그에 따른 이스라엘의 보복공격 이후 서방의 관심과 지원이 중동에 쏠리고 있어 우크라이나는 자칫 국제정치적 소외 위기마저 맞고 있다.

11월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우크라이나 이사회 첫 회의는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나토-우크라이나 이사회는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동등한 자격으로 정치적인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논의하는 협의체다. 7월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창설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장기 지원과 가입 조건 충족, 그리고 기존 회원국과의 대화 증진이 목적이다. 이사회에는 정상, 외교·국방 장관, 대사, 그리고 군 사령관 등의 층위가 있는데 이번에 열린 건 장관급 대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2022년 10월20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동원된 러시아 예비군들을 격려하고 있다. ⓒAP 연합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월20일 덴마크 보옌스에 있는 스크리드스트루프 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를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

서방도 우크라이나 지원 계속하기 어려울 듯

이날 회의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은 나토에 더 많은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지지와 지원을 강조하면서도 ‘전쟁이 끝난 후 나토 가입’ 등 정치적 지원책을 앞세웠다. 무기와 탄약을 달라는 우크라이나와 ‘립서비스’만 선물한 나토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전차 등 서방의 무기 지원 아래 6월8일 시작해 12월초로 6개월을 맞는 반격작전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서방 측의 실망감과 피로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때 ‘여름 공세’로 불렸지만 이젠 ‘2023년 반격’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서방국가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대대적인 반격작전에 당초 큰 기대감을 보였다. 성공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선거 등 자국 정치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격 성공은 러시아의 입지를 약화시키면서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할 명분을 확보하는 가장 유용한 방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작전 초기엔 전세를 역전시킬 ‘제2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선전됐다.

하지만 결과는 미미하다. AP·로이터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남부의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러시아 합병지인 크림반도, 동부의 도네츠크주 등에서 벌어진 반격에서 우크라이나군은 14개 마을을 탈환했을 뿐이다. 주요 도시나 전술적 거점을 점령하기는커녕 탈환 지역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철수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양측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다만 러시아에선 동원 기간인 1년이 이미 지난 병사들을 여전히 전선에 두고 있다고 어머니회 등이 항의하는 걸로 봐서 병력이 상당히 부족한 걸로 보인다. 전선에 체첸 용병을 대대적으로 투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미국 전쟁연구소(ISW) 등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참호전을 기본으로 포격과 드론 공격 중심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무기와 탄약 부족으로 이란산 드론과 미사일, 북한산 탄약·미사일·포병 무기체계 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서방도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와 탄약을 지원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지지부진하면서 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예산은 물론 서방이 지원할 수 있는 무기와 탄약 재고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고를 중심으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네덜란드 등에선 극우정치가 힘을 얻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내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에서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대선일을 3월 마지막 일요일로 규정한 법률에 따라 내년 3월31일에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이후 계엄령이 선포돼 있는데, 계엄령하에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이에 따라 계엄령을 일시 해제하고 대선을 치를지, 아니면 선거를 연기하거나 일정을 새로 잡을지가 관건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대상으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언제든 할 수 있는 전쟁 상황에서 과연 선거를 치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안전과 인프라 문제로 선거를 제때 치르지 못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5분의 1 정도가 러시아에 점령돼 있으며, 수백만 명의 국민이 해외로 피신 중인 것도 대선이 열리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다. 투표소와 개표장으로 이용될 건물이 상당수 파손된 것도 문제다. 러시아가 하이브리드 전술에 입각한 사이버 공격과 프로파간다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대선에 개입·조작·방해를 시도할 우려도 상당하다.

 

젤렌스키·푸틴 모두 대통령직 계속 유지할 전망

다만 우크라이나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후임자가 취임 선서를 할 때 끝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이 전쟁으로 연기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5년간의 기존 임기를 마쳐도 합법적으로 재임할 수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11월6일 “지금은 선거를 치르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고 말해 대선 연기에 무게를 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11월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의 80%가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대선을 치르지 말자는 의견을 보였다고 BBC가 11월25일 보도했다.

러시아에선 선거법에 따라 내년 3월15~17일 대선 1차 투표가 예정돼 있다. 2024년 러시아 대선은 2020년 개헌 국민투표로 푸틴이 앞으로 두 차례 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린 후 처음 실시되는 선거다. 로이터통신은 11월6일 올해 71세인 푸틴이 이미 선거 준비에 들어갔으며, 조만간 출마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내년 대선에서 당선하면 푸틴은 5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푸틴은 현재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어 2024년과 2030년 대선에 잇따라 출마해 당선하는 것도 현재로선 어렵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 남성의 평균수명은 66.6세 정도지만 푸틴의 건강 상태는 현재까지는 결정적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푸틴이 6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 차례 더 지내면 84세가 된다.

2020년 6~7월 개헌 국민투표는 전체 유권자의 67.88% 투표에 77.92% 찬성, 21.27% 반대로 통과했다. 이 찬반 비율은 국민투표 당시 러시아에서 푸틴의 정치에 대한 지지와 반대 비율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년 러시아 대선 결과는 푸틴 지지율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애국주의 열풍이나, 반대로 물밑 반전 여론의 고조로 인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내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대선이 전쟁이 끝나는 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중동의 난민촌에서도, 동유럽의 대평원에서도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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