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유쾌발랄 수녀님들의 공연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3 13: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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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주제의식에 재미까지 갖춘 뮤지컬 《시스터 액트》…2월11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

1992년 개봉한 영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음악영화다. 들로리스는 가수로 성공하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기회만 엿보고 있던 클럽 라운지 가수다. 어느날 갱스터 두목 내연남이 저지른 살인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추적을 피하고자 경찰의 보호 아래 강제로 수녀원에 기거하며 수녀 행세를 해야 했다. 들로리스는 가짜 수녀 클라렌스가 돼 신분을 속이고 지내다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성가대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후 매각을 앞둔 쇠락한 수녀원을 특별한 찬양 공연으로 구해 낸다는 활기찬 이야기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1992년 개봉해 히트한 영화의 ‘뮤지컬판’

이 작품은 전형적인 아이러니 상황과 이를 타개하는 주인공의 노력, 그 안에서 성장하는 대중적인 플롯을 가졌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킬링타임용’ 영화가 시대를 초월해 명작의 반열에 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980~90년대 유행했던 음악영화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그 당시 음악영화 신드롬을 몰고 왔던 《더티 댄싱》(1987)의 에밀 아돌리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노래에도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 우피 골드버그가 주인공 들로리스를 맡았다.

보수적인 복장으로 조용한 성가만 부르면서 합창단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극 중 수녀들이 마치 레크리에이션을 주도하듯 신자들 앞에서 격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가스펠 찬양 장면들은 노래에 진심인 들로리스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소울과 알앤비로 대표되는 흑인 대중음악과 몸을 크게 흔드는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의 투톱 중 하나인 원장 수녀 역의 매니 스미스와 극 중 가장 획기적인 변화 과정을 겪는 로버트 수녀 역의 웬디 매케나의 노래 실력도 영화의 흥행 요소 중 하나였다.

영화음악은 TV와 영화, 뮤지컬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한 마크 샤이먼이 맡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음악가였던 그는 이 작품 이후에는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작곡으로 토니상과 그래미상을 받았다. ‘My God(My Guy)’과 ‘I will follow him’ 같은 찬양 장면에서 나오는 합창은 영화의 대표 장면들이다.

이 작품은 영화 개봉 14년 후인 2006년 주연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뮤지컬로 만들어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이후 2009년 영국 웨스트엔드를 거쳐 2011년 미국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다. 마크 샤이먼의 음악은 저작권 문제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대신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푼젤》 등 디즈니 영화의 대표 작곡가 앨런 멘켄이 뮤지컬 작곡가로 참여했다. 영화보다 많은 곡이 뮤지컬에서 소개되며 솔로, 중창, 합창곡들로 이뤄진 훨씬 다양한 구성을 보여준다. 특히 뮤지컬에서는 퍼포먼스를 잘하는 프로 가수 들로리스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며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원장 수녀의 내면을 각각 솔로 장면으로 구성해 무대 뮤지컬만의 특징도 잘 살렸다.

영화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뮤지컬은 1970년대 디스코 시대 ‘퀸 오브 엔젤’ 성당을 무대로 설정해 좀 더 동시대에 가까워졌다. 또한 경찰관 에디가 뮤지컬에서는 들로리스의 학창 시절 옛 친구였고 그녀를 오랫동안 흠모했었다는 설정을 추가해 경찰로서 증인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개인적인 감정의 교류가 나타나도록 했다.

영화 후반부에 헬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추격 장면은 무대 언어에 맞게 배우들이 무대 장치를 활용한 빠른 등·퇴장으로 긴박감을 주면서 코믹하게 해결한다. 또한 영화에서 들로리스가 수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조용한 성가를 점차 대중음악 가창 스타일로 변형해 가는 방식을 택했다면, 뮤지컬에서는 들로리스가 오프닝 장면에서 흥겹게 불렀던 《Take Me To Heaven》을 활용해 성가와 대중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면으로 발전시켰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다국적 배우들 모여 인터내셔널 투어팀 결성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2018년 첫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고 이번이 두 번째 프로덕션이다. 기존의 투어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한국 제작사 EMK가 영어 버전 투어 공연권을 획득, 오디션을 포함한 전 프로덕션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해 라틴, 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배우들이 모인 인터내셔널 투어팀을 결성했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지난 공연 때부터 메리 로버트 수녀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소향을 포함해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총 9명의 한국인 배우가 크고 작은 역할로 참여 중이다.

2017년 투어 공연에 비해 이번 프로덕션은 새롭게 참여한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맡았다. 미국 뉴저지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 극장 예술감독 출신인 그는 브로드웨이 문법을 잘 아는 연출가이자 한국 제작사와 오랜 협업을 바탕으로 한국 관객이 원하는 뮤지컬을 만들어온 베테랑이기도 하다. 배경이 되는 디스코 시대의 과장된 웃음이 주는 재미를 살리면서도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유머 코드를 배치했다. 특히 위트 있는 자막에 폰트나 그래픽으로 변화를 주며 관객들이 언어의 장벽을 거의 느끼지 않고 코미디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미국 뉴저지 뉴어크 출신 배우 니콜 바네사 오티즈는 주인공 들로리스 역을 맡아 성공하고 싶은 가수의 꿈을 가진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클라렌스 수녀로 변신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동료 수녀들과 우정을 쌓고 혼신을 다해 ‘수녀 공연(Sister Act)’을 준비하는 진지한 모습을 드라마적으로도 잘 표현했다. 주인공의 감정선에 따라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배우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작품에서 배우가 중심을 잘 잡았다. 들로리스 서사의 반대편에 있는 원장 수녀 역을 맡은 메리 구치와 로버트 수녀 역에 김소향, 패트릭 역의 제나 로즈 허슬리, 라자러스 수녀 역에 섀넌 헤덕 등 주요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돋보였다.

종종 해외 투어 프로덕션에서 빈약한 무대 장치와 실력이 부족한 배우들이 무대에 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이번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그렇지 않다. 커튼콜에서 관객들이 기립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고 훈훈한 인간애와 공동체를 추구하는 올바른 주제의식과 그 안에서 재미를 갖춘 웰메이드 투어 공연으로 만들어져 연말 공연으로 어울린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부산을 거쳐 현재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내년 2월11일까지 공연한다. 앞으로 국내 15개 투어에 이어 해외 투어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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