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이토록 불친절하고 게으른 ‘-30%’ 정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4 08: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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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가 관중에게 주는 가장 극적이고 흥미로운 즐거움은 어쩌면 반전의 재미일 것이다.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경기 흐름을 바꾸며 역전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드라마틱하게 다가든다. 반전은 전략이나 전술에 의해 달성되기도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교체 투입되는 선수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축구에서는 공격진을 바꿔 경기 운영에 변화를 주고, 야구에서는 때에 맞춰 투수를 교체하거나 대타를 기용해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줄곧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팀이 환골탈태해 새로운 강자로 올라서는 모습도 묘미를 더한다. 이런 언더독들의 반란이 판도를 일거에 바꾸면서 스포츠 경기의 매력 또한 한층 커지게 된다.

정치도 선거를 통해 승부를 가린다는 점에서 보면 스포츠 경기와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유권자의 표심을 정확히 읽어내는 전략·전술이 있어야 하고 적재적소에 후보자를 배치하는 용병술도 필요하다. 그 전략·전술과 용병술이 어떠냐에 따라 정치의 성적, 즉 선거의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 빤한 전략과 전술, 용병술로는 결코 바라던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용병술이다. 경기에 새바람을 일으킬 신인 선수를 비롯해 출중한 다크호스들의 활약이 때론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기량에 발전이 없으면서 인지도만 높은 선수들을 내보내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늘 보던 선수만 나오는 경기는 관중에게도 흥미를 주지 못한다. 그 선수들보다는 그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신인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줄 때 관중은 더 환호하기 마련이다.

정치도 그렇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뤄지는 선수 교체 없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늘 보아오던 선수들이 뛰는 정치는 관중에게 즐거움을 주기는커녕 배척당하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새롭게 떠오르는 정당도 없이 거대 양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우리 정치 상황에서 정치의 새로움은 결국 참신한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는 요지부동이다. 저마다 혁신을 외치긴 하지만 선수 교체와 같은 실질적 혁신까지는 거리가 멀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할 뿐 새로운 정당이 진입할 틈을 내줄 생각도 거의 없어 보인다. 게다가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의 1인자 간 대결만 치열할 뿐, 내부의 주전 경쟁을 찾아보기 힘든 이 경기 구도는 정말 식상하고 볼품이 없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소속 의원들의 언행이 선거 정국에 영향을 미칠까 ‘긴장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소속 의원들의 언행이 선거 정국에 영향을 미칠까 ‘긴장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치의 고루함은 당장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거대 양당의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힌 채 큰 변동이 없고, 두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지지를 포기하는 무당층의 비율은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도 무당층의 비율은 정확하게 30%로 나타났다. 이 무당층의 비율은 거의 1년 내내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그만큼 양당이 외연을 확장해 지지층을 넓히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관중인 국민들은 선수 교체도, 언더독의 활약도 없이 지루하고 진부한 정치 경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지독한 관중 모독이자 국민 모독이다.

이제는 자기 당의 혁신에 앞서 한국 정치 전체의 혁신을 놓고 고민할 때다.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이 기회다. 길 잃은 30%를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토록 불친절하고 게으른 정치는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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