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앞 이탄희, 그는 왜 ‘용인 정’을 떠났나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1 17: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1대 총선에서 53.46%로 당선…최근까지도 재선 의지 확고
李 “‘양당 카르텔법’ 막아야 제2의 尹 막고 당도 이재명도 승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거쳤다. 29세에는 판사가 됐고, 39세에는 판사들이 선망하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됐다. 이른바 출세가 보장된 ‘꽃길’이었다. 그러나 2017년 ‘사법 농단 사태’의 첫 내부 저항자가 되며 ‘가시밭길’을 자처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던지며 또 다른 ‘가시밭길’에 발을 들였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얘기다.

서초동의 개혁을 외쳤던 이 의원은 이번에는 여의도의 개혁을 외치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초선이 총선을 5개월 앞두고 4년을 공들인 지역구를 바꾸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의원이 직을 걸고 절벽 앞에 선 이유는 ‘연동형 비례제 사수’를 위해서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탄희 “병립형 회귀, 尹 거부권 행사 보장하는 것”

이 의원의 지역구인 ‘용인시 정’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된다. 이 의원이 21대 총선에서 53.46%로 당선되기 직전에는 표창원 전 민주당 의원이 해당 지역구를 지켰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용인정 당협위원장을 지냈던 김범수 ㈔세이브엔케이 대표가 당협위원장 직을 던지고 용인갑으로 출마 지역을 옮긴 터라, 이 의원이 재선을 노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그랬던 이 의원이 돌연 지역구를 던졌다. 야권 일각에선 ‘지역구를 버렸다’ ‘당 지도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비판 섞인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이 의원의 이 같은 행보를 부른 건 ‘기성 정치’ 탓이라는 게 이 의원 본인과, 그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진단이다. ‘정치 개혁’을 외면하고 총선 때만 되면 ‘정쟁’과 ‘승리의 공식’에만 목을 매는 여야의 구태가 반복되다 보니, 극단적인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는 그동안 우리 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동형 비례제를 사수해야 한다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저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 다음 총선에서 저의 용인정 지역구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당의 결단을 위해서라면 그곳이 어디이든 당이 가라하는 곳으로 가겠다. 우리 당이 고전하는 험지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의 뿌리’를 강조했다. 이 의원은 “우리 당의 본질을 지키자. 당장의 이익보다 대의와 가치를 선택하는 김대중·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자”며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고 전통이다. 저부터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당 일각에선 이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이 ‘현실’을 외면한 ‘이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총선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의원이 추구하는 정치 개혁은 더 멀어질 것이란 진단에서다. 실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민주당이 연동형을 택하면 16.45석을 잃지만 국민의힘은 9.55석, 이준석 신당은 4석, 정의당은 2.3석, 조국 신당은 0.65석을 각각 얻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의원은 양당 카르텔을 막아야 ‘당도, 이재명도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 의원은 11월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식하는 선거제(병립형)로의 퇴행이 아닌 민주당이 당초 국민 앞에 약속한 ‘연합정치’가 가능한 선거제(준연동형)로 2024년 총선을 치러야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도 모두 궁극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으로 비례대표 19석을 얻었다. 만약 이번에 또 만들면, 국민이 과연 그만큼을 다시 몰아줄까? 전 절반도 못 얻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 민주당은 지역구 의석만 150석을 넘게 갖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심판’이라는 하나의 뚜렷한 전선만 잘 갖고 가면 지금 민주당이 보유한 의석 대부분을 지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럼 위성정당 없이도 넉넉하게 제1당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 일각에서 ‘병립형으로 지난 총선처럼 확실하게 180석을 목표로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대해선 되레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게 유리한 총선 지형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수와 관계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20대 총선까지 시행됐다.

이 의원은 “거대 양당이 병립형으로 선거를 치르면, 어느 한 당이 최대로 가져갈 수 있는 의석수는 180석 정도”라며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다른 거대 정당은 아무리 못해도 110석은 보장받는다는 뜻이다. 지금의 반사이익 정치구조가 유지된다는 뜻이고, 지금처럼 대통령이 계속해서 ‘묻지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병립형은 상대 당의 110석을 보장하는 제도다.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선도 자연히 ‘증오 대선’이 될 것”이라며 “그렇게 누군가는 또 반사이익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제2, 제3의 윤석열의 탄생도 가능해진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추진을 촉구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민정, 김두관, 윤준병, 이탄희, 이학영, 김상희, 이용빈, 민형배, 김한규. ⓒ연합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추진을 촉구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민정, 김두관, 윤준병, 이탄희, 이학영, 김상희, 이용빈, 민형배, 김한규. ⓒ연합스

이탄희의 ‘절규’에도 응답 없는 野지도부

이 의원이 ‘직’을 걸고 선거제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묵묵부답이다. 되레 이재명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자 당내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 주장을 멋있게 하면 무슨 소용있겠냐”며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우리도 상식과 보편적 국민 정서를 고려해 타협과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을 두고 민주당 내 이견이 표출되고 있는 가운데, 원내외 인사들이 이탄희 이원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이재명 대표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다당제에 도움이 되는 선거제를 가져오는 게 맞다”며 “위성정당 포기를 전제로 하는 준연동형제 유지가 시대 요구에 더 맞다”고 주장했다. 또 김동연 경기지사도 “정치개혁 결의문에 전 당원 94%의 지지로 채택한 바 있다”며 “바른 길, 제대로 된 길을 민주당이 먼저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