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팥팥》도 성공시킨 나영석의 ‘신묘한 힘’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7 13:0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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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요소 전무한 밭농사 내세워 또 대박…출연자들 매력에 진심까지 더해지니 몰입도 높아

나영석 PD가 또 해냈다. 이번엔 농사다. tvN은 최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김기방,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등 네 친구가 강원도에서 밭농사를 한다는 내용인데, 첫 방송 시청률 3.2%에서 2회 만에 4.1%로 상승했고, 마지막 회까지 4%대를 유지했다. 가구 시청률과 타깃(tvN의 타깃은 2049세대) 시청률이 케이블, 종편 포함해 8주 연속 동시간대 1위였다.

정말 신기하다. 비슷비슷한 관찰 예능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연예인들이 온갖 곳으로 여행을 갔고, 안 간 곳이 없다시피 해 이젠 생소한 오지를 찾아다니는 분위기다. 그런 작품들이 겹치면서 전체적으로 시청률이 하락하는 추세였다. 놀라운 기인의 풍모를 보여주는 기안84 출연작 말고는, 요즘엔 친구들이 어디론가 떠난다는 콘셉트의 예능이 큰 관심을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기안84 이상의 기인을 찾아 듣도 보도 못한 오지로 떠나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나영석 사단의 신작은 난데없이 농사였다. 어느 풍광 좋은 해외로 떠나 볼거리를 제공하며 이국적인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 그동안 TV 화면에 마르고 닳도록 나왔던 강원도의 어느 마을을 찾아 평범한 한국식 밭농사를 짓는다는 것이다.

tvN 예능 《콩콩팥팥》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제공

나영석의 실력 또다시 증명

이런 한국 농촌 풍경은 《1박2일》 《삼시세끼》 등 예능이나 《6시 내 고향》 같은 교양 프로그램에서 숱하게 봐왔다. 제목에서부터 뻔함이 드러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고 흔한 광경인데 그걸 누가 예능으로 본단 말인가. 그런데도 제작진은 《콩콩팥팥》이라는 ‘슴슴한’ 세계관을 내세웠다. 당연히 프로그램 방영 전에 회의론이 일었다. 하지만 나영석 사단은 또 해낸 것이다. 별 사건 없는 《삼시세끼》를 성공시켰던 것처럼, 별 볼 것 없어 보였던 《콩콩팥팥》을 또 성공시켰다.

나영석 PD는 성적과 평가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PD였다. 과거 《1박2일》로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를 평정했을 정도로 초대박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평가는 박했다. 아무런 창의성도 보이지 않는, 《무한도전》 짝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KBS다 보니 고령 시청자들이 관성적으로 채널을 고정해 시청률 수치가 높을 뿐이라는 조롱도 나왔다.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천재라는 찬사를 받을 때, 나영석 PD는 《무한도전》 아이템을 가져다 손쉽게 시청률만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나 PD가 KBS에서 독립한 후부터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윤식당》 《신서유기》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사람들이 나 PD의 비범한 능력을 알아차렸다. 예를 들어 《삼시세끼》는 《1박2일》의 생고생, 복불복 게임과 같은 자극적인 요소가 없었는데도 대성공을 거뒀다.

처음엔 《무한도전》 아이템을 가져다 쓴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1박2일》의 정겨운 분위기는 나 PD 진정성의 소산이었다. 그 후로도 나 PD는 유행과 상관없이 계속 따뜻한 내용의 프로그램들을 제작해 나갔다. 단지 따뜻하기만 하면 지루할 수 있을 텐데 나 PD는 그 차분한 설정 속에서 정말 기묘하게도 재미 요소들을 계속 뽑아냈다.

일단 캐스팅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차승원, 유해진, 이서진 등등 나 PD가 발탁하면 다 빵빵 터졌다. 호감과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출연자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리고 큰 사건이 없는 가운데서도 작은 흥미 요소를 담은 이야기들을 잘 뽑아낸다. 별일 없는데도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다.

관찰 예능에선 출연자들 간 케미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실제로 친한 사람들을 섭외하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친밀한 분위기가 시청자를 몰입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여행 가는 설정의 예능도 관심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콩콩팥팥》에선 이상하게 네 친구의 관계가 재밌었다. 친한 친구들을 섭외한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니라, 나영석 PD의 손이 닿아야 뭔가 재미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영석 사단이 《뿅뿅 지구오락실》을 시작했을 때 의구심이 있었다. 보기 드물게 여성들로만 출연진을 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성공시키며 나 PD 감각의 비범함을 다시금 알렸다. 이번에 너무나 심심할 것 같았던 《콩콩팥팥》까지 성공시키며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나 PD의 능력이 가히 신묘해 보인다.

tvN 예능 《콩콩팥팥》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예능 《콩콩팥팥》의 한 장면 ⓒtvN 제공

마치 ‘불멍’하듯 빠져들게 하는 화면

나 PD 작품에선 출연자들의 매력이 한껏 도드라지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랬다. 전체를 아우르는 사람 좋은 형 느낌의 김기방, 웃긴 이광수. 이광수는 《런닝맨》에서도 웃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때는 유재석의 그늘 안에 있었는데 《콩콩팥팥》에서 그가 독자적으로 예능을 이끌어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의외로 편안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김우빈, 야전 요리의 마스터이며 형 같은 막내인 도경수. 제작진이 (다른 예능에 비해 비교적) 관찰만 하는 가운데 이 네 친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시청자를 편안하게 했다. 마치 ‘불멍’하듯이 화면에 젖어들게 한 것이다.

나 PD는 방영 전에 “저희는 힘을 뺀 ‘슴슴한 맛’이라 인기 있는 드라마랑 붙으면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사람들이 밥은 먹지 않냐. 저희 예능이야말로 ‘밥친구’란 말이랑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켜놓으면 술술 시간이 지나가는 걸 느끼실 거다”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 밥 먹으면서 보면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가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이 자연에서 무언가를 하고, 밥을 지어먹고, 현지 식당에 가서 그 맛에 감탄하고, 동네 주민들과 정을 나누는 풍경은 매우 뻔한데도 질리지 않는 맛이 있다. 자연스럽게 잘만 구현되면 마치 안 물리는 밥처럼 꾸준히 찾게 되는 것이다. 《콩콩팥팥》에선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농촌 마을에 녹아들면서 따뜻함이 전해졌다.

출연자들이 정말로 농사에 몰입하면서 시청자도 함께 몰입했다. 촬영이 없을 때도 출연자들이 밭을 찾았다고 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처음에 일이 너무 힘들고 막막해 시즌2는 하지 말자던 김우빈이 마지막엔 시즌7까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럴 정도로 출연자들이 정말 빠져들었고 그 모습이 시청자도 빠져들게 한 것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내년 봄에 다음 시즌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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