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는 사업 기회” 지방에 깃발 꽂는 ‘新콜럼버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5 14:0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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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가들, 대전·영주에서 인구 유입 가능성 발견
학계와 지자체도 합세해 로컬 생태계 만들기 날갯짓
충남 공주시의 한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시가지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 양양군을 서핑의 성지로 만든 박준규 라온서피비치리조트 대표는 최근 뜨는 단어인 ‘로컬 크리에이터(지역가치 창업가)’의 대표주자 격이다. 2015년 서피비치 탄생 전에 양양은 인구가 2만8000여 명에 불과한 한적한 지방 소도시일 뿐이었다. 박 대표는 양양의 핵심 자산을 활용한 콘텐츠를 치열하게 기획해 서피비치를 만들었다. 1km 구간의 서핑 전용 해변을 서핑뿐 아니라 롱보드, 스노클링, 요가 등 다양한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리뉴얼했다. 밤에는 고퀄리티의 해변 파티도 열었다.

해외에 가지 않고도 이국적인 해변을 즐길 수 있다는 소문이 SNS에 퍼지면서 어느덧 서피비치는 연간 MZ세대 수십만 명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양양의 생활인구(주민등록상 정주인구뿐 아니라 지역에 체류하며 실질적인 활력을 높이는 인구) 증대와 경제 활성화 등에도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제2, 제3의 양양 그리고 박준규를 꿈꾸는 수많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존재한다. 12월9일 ‘노잼’(재미없는) 도시로 유명한 대전을 ‘유잼’(재미있는) 도시로 바꾸기 위해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글로벌 쉐이퍼스 커뮤니티(Global Shapers Community·GSC) 대전 허브는 이날 대전 유성구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루센트블록 내에서 ‘대전 꿈돌이 파티’ 포럼을 개최했다. 어떻게 하면 청년 인구를 수도권에 빼앗기지 않고 대전에 모을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휴일임에도 청년과 기업인, 연구인, 지자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포럼에 참석해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과학’과 ‘청년’이란 대전의 핵심 자산 연결해야” 

2030 리더들로 구성된 GSC는 세계경제포럼(WEF) 산하 국제협의체다. 젊은 시각으로 세계가 직면한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고 개선하는 게 활동 목적이다. 이번 포럼은 GSC 대전 허브가 지난 7월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 연 행사다. 출사표와 같은 첫 행사의 주제를 청년 인구 유출로 정한 건 그만큼 대전에서 해당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순이동한 대전 청년 수는 2010년부터 5년 동안 2700명이었고, 이후 5년 동안 3700명으로 늘더니 2020년부터 2년 동안에만 4900명을 기록했다. 

행사를 기획한 GSC 대전 허브의 정원식 쉐이퍼(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투자심사역)는 “대전은 과학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수도권 다음으로 청년 인구 비중도 높은데, ‘과학’과 ‘청년’ 두 핵심 자산이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서 청년 인구 유출, 산업 생태계 약화 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GSC 대전 허브는 과학과 청년의 교집합에서 ‘로컬(지역)’ ‘기술’ ‘창업’ ‘커뮤니티’란 키워드를 뽑아내 포럼 주제를 짰다.

12월9일 대전 유성구 루센트블록에서 대전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대전 꿈돌이 파티’가 열렸다. ⓒGSC 대전 허브·시사저널 오종탁
12월9일 대전 유성구 루센트블록에서 대전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대전 꿈돌이 파티’가 열렸다. ⓒGSC 대전 허브·시사저널 오종탁
12월9일 대전 유성구 루센트블록에서 대전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대전 꿈돌이 파티’가 열렸다. ⓒGSC 대전 허브·시사저널 오종탁
12월9일 대전 유성구 루센트블록에서 대전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대전 꿈돌이 파티’가 열렸다. ⓒGSC 대전 허브·시사저널 오종탁
12월9일 대전 유성구 루센트블록에서 대전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대전 꿈돌이 파티’가 열렸다. ⓒGSC 대전 허브·시사저널 오종탁

원격 협업 기술이 지방의 인구 유출 막아낼까 

우선 GSC 대전 허브는 윙윙, 인큐버스 등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스타트업들과 로컬 영역의 성공 사례를 공유했다. 윙윙은 유성구 어은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역관리 회사다. 지역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오피스 기반의 직주락(職住樂·주거, 일자리, 문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유성구 도룡동에 있는 인큐버스도 다양한 지역 공간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왔다. 

이태호 윙윙 대표는 “대전 유성구 어은동의 카이스트와 궁동의 충남대 사이, 일명 ‘어궁동’이라 불리는 지역을 동네 캠퍼스이자 연구실, 실험실로 가꿔나가는 방안을 계획 중”이라면서 “동떨어진 섬 같은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지역사회와 연결하고 동네 안에서 분야 간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통해 ‘인프라’ 중심의 과학도시 대전을 ‘혁신’과 ‘문화’까지 아우르는 좀 더 멋진 곳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인재 육성도, 지방 인구 유출 같은 사회문제 대응도 효율성이라는 산업화 시대 구호 아래서 전체 사회 시스템을 대상으로 무겁게 진행되다 보니 해결이 요원하기만 하다”며 “발상을 전환해 자원 배분의 끝단에 있는 동네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작은 조직과 다양성에 기반한 지역 혁신 모델을 만드는 게 로컬의 본질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원식 쉐이퍼는 “단순 접목은 힘들겠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 지역 핵심 자산을 청년과 잘 연결해 인구 유입과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이뤄낸 대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유니콘 기업 직방의 원격 협업 툴 자회사인 소마를 이끄는 김재은 대표는 포럼 강연을 화상으로 진행했다. 미국에 체류 중이라 현장 참석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김 대표는 모든 회사 업무도 가상오피스 소마를 이용해 원격으로 하고 있다. 그는 김두영 GSC 대전 허브 쉐이퍼(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생)와 함께 소마 근무 실황을 시연했다. 

직방은 2021년 2월 오프라인 사무실을 없애고 전면 원격 근무를 도입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자체 개발한 가상오피스 메타폴리스로 본사를 이전했다. 소마는 메타폴리스를 업그레이드한 브랜드다. 소마에서 김 대표를 비롯한 직방 구성원들은 아바타로 존재한다. 카메라를 활용해 자신의 실제 얼굴을 실시간으로 등장시킬 수 있고, 대화나 회의는 언제든 마이크를 켜고 육성으로 나누면 된다. 김 대표는 “직방에서 소마를 도입한 후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는 양질의 인재를 채용하는 게 가능해졌고, 수도권에 살던 일부 직원이 고향인 지방으로 돌아가는 현상도 생겨났다”고 전했다. 김두영 쉐이퍼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원격 협업 기술의 발달로 어디서든 뉴욕이나 서울 수준의 일자리, 문화, 교육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면 대전 같은 지방 도시도 청년 인구 유입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 영역의 강연을 맡은 맹필재 바이오헬스케어협회장은 대전 바이오클러스터 형성 과정과 그간의 성과, 잠재력 등에 대해 설명하며 “대전 바이오클러스터가 성공한 것은 후발주자가 선발주자에게 편히 도움을 요청하고, 선발주자들은 흔쾌히 후발주자를 돕는 실리콘밸리의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누군가 자신에게 뭔가를 베풀었을 때 그 시혜자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새롭게 무엇을 하는 것)’ 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맹필재 회장은 “바이오클러스터가 성장하려면 먼저 앵커(anchor), 즉 대기업이 들어와야 한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면서 “벤처 창업 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튜터(tutor) 기업들이 후발주자들을 잘 케어해 산업 생태계가 탄탄해지면 되레 대기업이 파이프라인을 찾아 클러스터로 들어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34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의 허세영 대표도 “대전에서 창업한 후 5년간 많은 튜터를 소개받아 조언을 들었다”며 “대전이란 커뮤니티에 기반해 계속해서 회사와 지역 상권 발전을 동시에 이뤄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우은지 박사과정생과 액셀러레이터(AC)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전 본사에 근무하는 안휘재 팀장은 각각 대전에서 대학과 함께 창업 관련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어낸 경험을 풀어냈다. 이들은 지역 청년들을 연결해 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부여했더니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타났다고 입을 모았다. 우은지 박사과정생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만날 일이 전혀 없는 KAIST와 충남대 학생들을 한 데 모아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업는 작은 의자) 만들기 경진대회를 여는 등 작은 움직임 만으로도 다양한 층위의 관계가 형성되고 추가 연결에 대한 니즈가 폭발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면서 커뮤니티 빌딩을 확대해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대전에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는 사이, 영주에선 이미 AC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스타트업, 한국관광공사, 영주시청 등이 힘을 합쳐 지역 살리기에 돌입했다. 영주의 인구는 1975년 17만3887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감소해 2022년 말 기준 10만749명으로 내려앉았다. 매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700명가량 많고 순전입 인구가 늘어날 여지는 극히 적어 사실상 10만 인구 붕괴 초읽기에 들어갔다. 기댈 곳은 관광 활성화를 통한 생활인구 증가뿐인데, 여행지로서 영주의 매력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 이마저 캄캄한 상황이었다.

11월15일 서울 강남구 드리움에서 ‘베터리(Better里)’ 프로젝트 발표회가 개최됐다. 8개 스타트업이 두 달간 경북 영주의 비즈니스 기회와 생활인구 유입 가능성을 찾아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영주에 ‘생활인구’ 끌어들이기 시작한 스타트업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한국관광공사는 사람들이 영주를 찾지 않는 게 숙소와 내부 교통, 관광자원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지난 9월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베터리(Better里)’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숙소 부문에서 블랭크, 리브애니웨어, 스페이스웨이비, 클리, 내부 교통 부문에서 로이쿠, 관광 자원 부문에서 리플레이스, 백패커스플래닛, 알앤원 등 8개 스타트업을 선정해 영주의 비즈니스 기회와 생활인구 유입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아직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성과를 논하기는 어려우나, 스타트업들이 변화를 만들어내면서 영주 지역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블랭크가 2년간 방치되어 있던 빈집을 수리·개조해 ‘영주 일주일 살기’ 콘셉트를 입힌 숙소는 순식간에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차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한국관광공사는 영주의 성과를 계속 관찰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해나갈 계획이다. 

11월15일 서울 강남구 드리움에서 열린 베터리 프로젝트 발표회에 연사로 나선 이미영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창업혁신팀 팀리더는 “정부 지원 확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구 감소 지역에 돈과 기회가 생겨나고 있고, 많은 사람이 떠난 지역 내에는 언제든 쉽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휴 자원이 널려있다”면서 “시장이 크지 않기에 신속히 테스트해 반응을 보며 비즈니스를 펼쳐 나가기도 좋다. 한마디로 지방은 스타트업들이 진출하기 굉장히 좋은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인구학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도 "청년 생활인구를 지방으로 이끌 아이디어가 차고 넘치는 스타트업들이 일단 접근하기 쉬운 관광 분야에서부터 좋은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내면 다른 후발 스타트업들이 유입되고, 이런 선순환이 서비스와 일자리 등 다른 분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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