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정치 인물] 새 길 열겠다는 한동훈, ‘별의 순간’ 잡을까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5 09:0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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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처럼 민주당이 정치 체급 키워줘…‘공동운명체’인 尹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역설’도

2023년, 시사저널이 독자들과 함께 선정한 ‘올해의 정치 인물’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다. 선정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그는 12월21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전격 수락하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올해의 사회 인물’로 선정됐던 그가 올해 몸집을 더 키워 정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타 장관으로 팬덤을 일으킨 그는 임기 1년7개월 내내 파격적 행보와 발언으로 정치 뉴스를 뜨겁게 달군 끝에 마침내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탈바꿈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70년대생 X세대’ ‘스마트한 어법과 세련된 외모’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을 줄인 말로서 집안·성격·머리·외모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성). 한 전 장관의 이미지는 이런 단어들로 묘사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6월 그는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 4%의 지지율을 보이며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차기 운운은 지나치게 이르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한 전 장관을 잠룡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한 국민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1년 반 만에 여권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라

이후 한 전 장관의 정치 공력과 정무감각을 도드라지게 하며 그의 위상을 높여준 건 8할이 바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인사청문회와 국회 상임위에서 한 전 장관 딸의 논문 공저인 ‘이모(某)’ 교수를 친척 ‘이모’로 착각하거나 서울 청담동 술자리 사건 등 확인되지 않은 의제로 공격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논리적인 반박으로 항변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국민 머릿속에 여전히 반복 재생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지율 16%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19%)의 뒤를 오차범위 내로 쫓는 차기 대권주자로 거듭났다(한국갤럽 12월7일 여론조사).

검사로서 한동훈 전 장관의 삶은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남 8학군 출신에 서울대 법대와 아이비리그 학력을 가진 그의 스펙은 흠 잡을 데가 없다. 대학 졸업 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군법무관 출신으로 병역도 깨끗하다. 검사 조직에서도 소위 에이스들만 간다는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 ‘골든 트라이앵글’ 내에서 근무했다. 윤석열 사단의 ‘특수통’으로 명성을 얻었고, 특히 재계에서는 저승사자·독사 등으로 불릴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3대 재벌그룹 회장(최태원 SK 회장, 정몽구 당시 현대차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모두 구속시킨 전력으로도 유명하다. 특수수사마다 비판도 있었지만 외압에도 끄떡없는 원칙주의 강골 이미지는 ‘검사 한동훈’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검찰 내 헤게모니를 다투는 요직을 거치며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검사장을 달았던 그는 역대 두 번째로 젊은 법무부 장관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최연소 국무위원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21년 검사 생활을 마감했다.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에는 불필요한 의전을 없애는 등 주변인들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호감 이미지를 굳혔다. 법무부 직원이 장관의 관용차 문을 열어주는 의전을 없앴고, 공문서에서 장관’님’자를 뺄 것을 지시했다. 또한 미국 연방수사국 출장 시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던 관례를 깨고 급을 낮춰 비즈니스 클래스를 탄 일도 유명하다.

법무부 직원이 블라인드에 “한 장관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들 타라고 버튼을 눌러주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소속이랑 이름 물어보고 외워서 다음번에 먼저 인사해 준다. 우리 과 대부분이 한 장관의 팬”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기 동안 추진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 이민청 설립, 교정직 공무원 처우 개선 등은 국민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눈높이에 맞는 지시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그의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법무부 수장으로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중립성’ 요구가 거세지기도 했다.

가장 성공한 검사였던 한 전 장관이 정치인으로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를 두고 온갖 예측이 쏟아진다. ‘검사 선배’ 정치인인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시즌2’밖에 안 될 것 같다”며 “검사 출신이 바로 정치를 하게 될 경우의 폐해를 국민들이 꽤 느끼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검사는 잘못을 찾아내 벌을 주는 직업이다. 수사와 기소에 타협이란 없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은 다르다. 타협하는 자세는 기본으로 탑재돼 있어야 하고 정치문법은 일상의 언어와 달라 체득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긁지 않은 복권’ 한동훈, 기대와 우려 사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예측이 어렵다는 의미에서 한 전 장관을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표현했다. 한 전 장관이 여당의 기대처럼 임진왜란 때 남은 12척의 배로 승리를 이끈 이순신 장군이 될 수 있을까. 2020년 보수진영의 유력 차기 주자로 꼽히며 미래통합당을 이끌었으나, 21대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회복 불가한 타격을 입은 황교안 전 대표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역시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17년 대권 행보에 나섰다가 두 달도 안 돼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례도 언급된다.

등판 시점을 두고도 갑론을박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별의 순간은 아직… 등판이 너무 빠르다”는 평가를 내놨다. 황교안 전 대표 또한 “한동훈, 탁월하지만 때가 아니다. 비대위 해봐야 6개월… 그러고 나서 뭘 하나”라고 충고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한 전 장관은 “진짜 위기는 몸을 사리는 것”이라며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를 벗는 것도 그의 과제다. 윤 대통령과 정치공동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끊어내고 어떻게 차별화할지에 그의 정치생명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2인자’로 성장한 그가 수직적 당정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여론을 의식해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부부와 당내 주류를 향해 어느 정도 쓴소리를 할 순 있어도,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가 최근 ‘김건희 특별법’에 대해 “법 앞에 예외는 없다”면서도 “악법”이라고 지적한 것을 두고 비대위원장직을 위해 김건희 여사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시사저널 선정 ‘올해의 인물’ 1989년 창간 이후 35회째…‘대한민국의 역사’로 기록
손흥민, 스포츠 인물로는 역대 두 번째 ‘올해의 인물’로 선정…정치 한동훈·경제 정의선 등도 두각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인물은 손흥민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이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은 ‘영원한 캡틴’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쟁만 거듭하는 정치, 고물가·고금리에 시름하는 경제, 팬데믹과 인구절벽으로 우울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 폭풍 질주로 골네트를 시원하게 가르는 손흥민의 활약은 그나마 통쾌함을 선사하는 위안이었다. 

스포츠 인물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1997년 차범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차 감독은 대한민국을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끌면서 크게 각광받았다.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 이후 매년 12월 송년호에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해 오고 있다. 올해도 역시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의 투표와 정기독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올해의 인물을 비롯한 총 9개 분야에 걸쳐 한 해 동안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인물들을 선정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각 분야별로는 정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경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회 신준호 안산지청 차장, 국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문화 한강 작가, IT·의·과학 고규영 KAIST 특훈교수, 연예 임영웅 가수, 스포츠 페이커 등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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