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은 왜 지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말할까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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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 구호 아래 ’親개미’ 신년 행보 가속화
공매도 금지, 대주주 양도세 완화 이어 금투세 폐지 못 박아
“정부 간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유발” 지적도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2024년 1월2일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기업실적에 비해 뒤떨어진 정치‧경제 시스템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이다” (윤석열 대선 후보, 2022년 1월3일 증권‧파생시장 개장식)

윤석열 대통령이 정확히 2년 만에 다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꺼내들었다. 과도한 세금과 불공정한 거래 시스템이 한국 증시 저평가를 유발한다고 보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일환으로 이미 대주주 양도세 완화와 공매도 한시적 금지를 전격 추진했고, 이번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내세웠다. 다만 해당 제도들이 진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주된 원인인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뜨거운 감자’ 금투세…尹대통령 ‘예상대로’ 폐지 공식화

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전날 윤 대통령이 공식 언급한 금투세 폐지를 두고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구호 아래 관련 제도 개선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같은 실적을 내는 기업일지라도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가치가 유사한 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금투세도 한 때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행이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마련된 금투세는 당초 2022년부터 시행 예정이었으나 그해 여야 합의로 시행 시기를 2년 유예하기로 했다. 당시에도 무늬만 유예이지 결국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폐지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투세 폐지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였기 때문에 시장에선 어느 정도 폐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폐지를 공식화한 시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뿐이지, 올해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금투세를 가장 먼저 손볼 것이란 얘기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투자업계와 정치권 분위기까지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주식 시장에 관심이 많다는 평가다. 전날 윤 대통령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것도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이다. 앞서 정부가 추진한 대주주 양도세 완화나 공매도 한시적 금지 조치 등도 개별 부처보다는 대통령실의 의지로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공매도 거래나 과도한 양도소득세 기준 등이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이를 개선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코스피가 1% 넘게 하락한 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원인은…“정부 간섭도 한 몫”

그러나 일각에선 이 같은 제도 개선이 실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직접적 영향을 줄지 미지수란 반응도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으로 제도보다는 기업의 지배구조 등 내재적 요인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흡한 주주 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금투세 폐지나 양도세 완화 등과는 관련성이 떨어지는 요인이라는 해석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금투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부분적으로 법인세와 배당소득, 주식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는 한국 주식 저평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실효세율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과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 대기업, 고액자산가,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는 재정적자 폭과 국가부채의 증가로 이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기업 지배구조나 소유와 경영의 미분리,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시장 개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경제전문지인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8월 크리스천 데이비스 서울지국장 명의 칼럼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KT나 포스코 등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개입을 시도했다며, 정부 간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특히 금투세 폐지는 법안 개정 사안인데도 야당과의 물밑 협의 없이 발표됐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야권은 금투세 폐지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실제 법 개정은 요원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애초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추진이 결정된 제도를 대통령이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극소수의 주식 부자에게 혜택을 주는 결정으로,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정의에 크게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당장 정부로선 세수 확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금투세가 2025년부터 시행된다고 가정할 경우 3년 동안 4조원 규모의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현 정부 방침에 따라 금투세를 폐지하면 한 해 1조원 넘는 세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7월 발표할 세법개정안에서 금투세 폐지 방안을 구체화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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