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61번, 류현진의 99번…다저스 코리안 특급, 그다음 주인공은?
  •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6 11:05
  • 호수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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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고 인기 MLB 구단인 LA 다저스에서 ‘코리안 특급’ 계보 잇게 될 장현석 “4년 내 메이저 승격이 목표”

뉴욕 양키스는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팀으로 꼽힌다. 통산 2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2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1회)보다 16번이나 많다.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매긴 구단 가치에서도 양키스는 71억 달러로, 나머지 29개 팀 평균인 21억 달러를 압도한다(2023년 3월 발표).

뉴욕에 있는 양키스가 동부 최고의 인기 팀이라면, LA에 있는 다저스는 서부 최고의 인기 팀이다. 하지만 다저스의 우승 경력은 양키스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다저스는 우승이 7번인 반면 준우승은 14번으로 가장 많다. 월드시리즈에 10번 이상 진출한 팀 중 다저스(7승14패 0.333)보다 승률이 나쁜 팀은 ‘염소의 저주’에 108년 동안 시달렸던 시카고 컵스(3승8패 0.273)뿐이다. 그럼에도 다저스는 양키스 다음가는 명문 팀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 때문이다.

LA 다저스의 장현석 ⓒ시사저널 이종현
LA 다저스의 장현석 ⓒ시사저널 이종현

아시아 시장 가장 먼저 개척한 다저스

1947년 다저스는 처음으로 흑인 선수를 기용했다. 재키 로빈슨이다. 로빈슨의 데뷔는 미국 공립학교의 분리 교육 폐지보다 8년 빨랐다. 다저스가 인종의 벽을 무너뜨리자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같은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물밀 듯 밀려왔고, 리그의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중남미 시장을 처음 개척한 것도 다저스였다. 니카라과 지진 이재민을 돕다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큰 별이 된 푸에르토리코의 영웅 로베르토 클레멘테도 다저스가 발굴한 선수였다. 다저스는 멕시코에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찾아냈고, 발렌수엘라가 1981년 신인상과 사이영상을 수상하자 멕시코에서 야구 붐이 일었다. 양키스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미국 내 유망주를 쓸어담는 동안 다저스는 해외로 눈을 돌렸고 큰 성공을 거뒀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팀들과 도미니카공화국·푸에르토리코·베네수엘라 선수들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게 되자, 다저스는 시선을 과감하게 아시아로 돌렸다. 1994년 1월 다저스는 아시아 선수와 최초로 계약했다. 대한민국 박찬호였다. 박찬호의 입단은 최초의 일본 선수인 노모 히데오의 입단보다 1년 빨랐다. 노모가 입단한 팀도 역시 다저스였다(메이저리그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뛴 일본 선수는 1964년 무라카미 마사노리지만, 임대선수 신분이었던 무라카미가 2년 후 일본으로 돌아간 반면, 완전 이적은 박찬호가 대한민국 및 아시아 최초, 노모가 일본 최초였다).

박찬호와 노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박찬호는 한양대 재학 시절에 입단한 아마추어 선수인 반면, 노모는 이미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였다. 박찬호는 노모와 달리 마이너리그부터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당시 마이너리그는 소수 인종 중 소수 인종인 아시아 선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텃세를 부리는 선수들과 싸워가며 2년 만에 마이너리그를 돌파한 박찬호는 등번호 61번을 단 코리안 특급이 됐다. 박찬호 등판일의 다저스타디움은 LA 폭동의 충격에서 빠져나온 한인 교포들로 가득찼다. 박찬호는 동시대의 골프 박세리와 함께 외환위기를 맞닥뜨린 고국의 팬들에게도 큰 용기를 줬다.

2013년 다저스는 또 다른 모험을 했다.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한 KBO리그 출신 한국 선수를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류현진이었다. 류현진 이전 4명의 KBO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이상훈·진필중·임창용·최향남이었다. 이때 메이저리그 팀들이 제시한 이적료는 이상훈 60만 달러, 진필중 2만5000달러, 임창용 65만 달러, 최향남 101달러였다. 하지만 다저스가 류현진의 소속팀 한화 이글스에 제시한 돈은 2573만7737달러였다. 등번호 99번의 류현진은 코리안 몬스터가 됐고, 2019년에는 사이영 투표 2위라는 대업을 이뤘다. 2위는 일본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와 함께 아시아 투수가 따낸 가장 높은 순위다.

한국에서는 류현진·강정호·김하성, 일본 역시 스즈키 이치로를 시작으로 자국 리그에서 먼저 스타가 되고 진출한 선수들이 성공하게 되면서, 서재응·김선우·최희섭처럼 아마추어 신분으로 도전하는 선수들은 사라졌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자국 리그에서 실력을 키운 후 도전하는 것이 금전적으로도 훨씬 이득이었다. 닛폰햄이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가려던 오타니를 설득한 비결도 투타 겸업 제안이 아니라 한국 아마추어 선수들의 실패 사례를 보여준 것이었다.

지난해 다저스는 또 한 번 모험을 시도했다. 마산용마고 투수인 장현석(19)에게 1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다저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유망주 두 명을 주고 장현석에게 줄 국제계약 보너스 100만 달러를 받아왔다. 다저스는 부자 구단이지만 돈을 허투루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장현석이 입단하고 나서 다저스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다저스는 내셔널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100승을 올리고도 가을야구에서 3연패로 탈락했다. 다저스를 꺾은 선수 중에는 정규시즌 맞대결에서 통산 16경기 11패 5.49를 기록한 메릴 켈리(애리조나)도 있었다. 다저스는 켈리에게 6.1이닝 3피안타 무실점 승리를 헌납했다. 

LA 다저스의 박찬호 ⓒ뉴스뱅크이미지
LA 다저스의 박찬호 ⓒ뉴스뱅크이미지
LA 다저스의 박찬호 ⓒ뉴스뱅크이미지
LA 다저스의 류현진 ⓒAP 연합

이정후와 꿈의 ‘투타 맞대결’ 

2년 연속 가을야구 조기 탈락으로 독이 오를대로 오른 다저스는 슈퍼 팀이 되기로 했다. 오타니 쇼헤이(29)와 야마모토 요시노부(25)를 영입하는 데 마이애미 말린스의 구단 가치(10억 달러)보다 많은 10억7500만 달러를 썼다. 다저스가 이런 투자를 할 수 있는 건 11년 연속 관중 동원 1위를 하고 있는 최고의 인기 팀이면서도 그동안 지출을 꼼꼼하게 해온 덕분에 곳간에 돈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하성의 샌디에이고는 지역 케이블TV로부터 연간 6000만 달러를 받는 반면, 다저스는 무려 3억3400만 달러를 받는다. 오타니의 입단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다저스는 3월20일 서울 개막전에서 그 모습을 선보인다.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있었던 장현석 입단식에서 다저스의 존 디블 환태평양 스카우팅 디렉터는 장현석에게 등번호 18번의 유니폼을 입혀줬다. 보스턴 시절 마쓰자카를 입단시킨 경험 때문이었다. 마쓰자카가 보스턴에서 달았던 18번은 일본에서는 에이스의 번호로 통한다. 하지만 다저스의 18번은 3억2500만 달러의 파격적인 계약으로 입단한 야마모토가 달게 됐다.

다저스가 슈퍼 팀이 된 건 장현석에게 좋은 뉴스는 아니다. 에이스급 투수 세 명(오타니·야마모토·글래스나우)을 한꺼번에 영입하면서 메이저리그를 향한 문이 더 좁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다저스는 야마모토와 계약하면서 야마모토의 일본인 개인 코치를 정식으로 채용했다. 그리고 야마모토가 해온 훈련과 관리법을 면밀히 분석하기로 했다. 다저스가 일본 야구를 동등한 위치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건 같은 아시아 투수인 장현석에게도 나쁠 게 없다. 

다저스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박찬호를 통해 메이저리그를 접하고, 류현진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 한국 팬들에게,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팀이다. 팬들은 우리나라 선수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장현석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4년 내 빅리그 승격 목표를 밝혔다. 목표를 이루게 되면 장현석은 슈퍼 팀 다저스에서 오타니·야마모토와 함께 뛰게 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이정후와 대결해야 한다. 제2의 박찬호에 도전하는 한국인 투수와 KBO리그를 평정한 한국인 타자가 메이저리그 최고 라이벌 관계 내에 자리를 잡는, 짜릿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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