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고 싶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5 16:05
  • 호수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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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감춘 대통령, 소통 약속은 단절의 현실로 뒤바뀌어
국민 전체의 대통령 되려는 모습 보여줘야

“모든 국정의 중심은 국민입니다. 검토만 하는 정부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될 것입니다.” 2024년 새해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의 화두는 ‘민생’이었다. 윤 대통령은 올해 무엇보다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민생 정책을 추진하겠다면서 민생을 9번이나 언급했다. 지난해만 해도 틈만 나면 ‘이념’을 말하던 윤 대통령이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이제는 ‘민생’ 우선을 말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우리 대통령이 달라졌어요’ 소리를 해도 되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을 때 그 원인이 윤 대통령에게 있음은 공통적으로 지적된 바 있다. 느닷없이 이념전쟁의 깃발을 드는가 하면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 인물들을 중용하고,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를 사면복권시켜 재출마의 길을 열어주는 모습에 민심은 등을 돌렸고 정권심판을 선택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켰던 민심이 순식간에 다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갑진년 새해 첫날인 1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오류와 반성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했어야

민심의 소재를 전혀 읽지 못했던 윤 대통령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여당이 ‘용산 출장소’란 소리를 듣게 만든 김기현 지도부도 한심했지만, 여당이 선거를 치르는 데 대통령이 최대의 악재가 된 현실은 윤 대통령의 성찰과 변화를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여권 세력에게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고 총선 참패도 불가피하다는 위기론이 확산됐다. 

사실 총선 결과에 누구보다 절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다. 만약 22대 총선도 야당의 승리로 끝난다면 윤석열 정부는 곧바로 레임덕에 들어가게 되고,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부로 연명할 뿐이다. 윤 대통령의 기에 눌려 참모들이 함부로 직언을 못 한다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용산 대통령실 안팎에서도 위기 상황에 대한 심각한 진단과 우려가 나왔을 법하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주장했던 윤 대통령이 보궐선거 이후로는 더 이상 ‘이념’을 입에 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중도 사퇴를 유도한 것도,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면서 절반을 여성으로 기용한 것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는 윤 대통령의 마음이 실린 일들이었다. 

정치적으로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국민의힘의 축이었던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를 퇴장시킴으로써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한 일이었다. 물론 김장연대의 퇴장은 당사자들의 자진 불출마 혹은 사퇴라는 모습을 취했지만, 그 과정에 집권여당의 변화를 원하는 ‘윤심’이 실렸다는 해석이 정설이다.

이념전쟁을 선포하던 모습에서 나타나듯이 자신의 판단이 서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윤 대통령이었다. 그런 윤 대통령이 이런 변화를 추구했으니 이 정도면 할 만큼 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해 보인다. 지금까지 진행된 변화의 노력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문제의 핵심으로 직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운영에 어떤 오류가 있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고쳐나갈 것인가를 자신의 말로 직접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했다. 그것이 국민 앞에서 성찰하는 모습을 통해 민심을 움직이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굳이 그런 모습을 보이기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핵심에서 벗어난 주변에서 우회로를 찾느라고 시간을 끌고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러니 변화의 속도와 강도가 만족스러울 수 없다.

 

‘자기 진영만의 대통령’ 되는 모습 또 반복

새해를 맞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달라져야 할 두 가지 과제를 환기해 보자. 첫째는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소통을 위해 ‘구중궁궐’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한다고 했던 윤 대통령이다. 소통을 하겠다며 출근길 ‘도어스테핑’까지 시도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러나 설화가 이어지자 윤 대통령은 자취를 감췄고 소통 약속은 단절의 현실로 뒤바뀌고 말았다. 이제까지 윤 대통령이 연 공개 기자회견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유일하다. 새해를 맞아 1월 중에 신년 기자회견을 개최할지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아직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국민이 묻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으니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 동안 만들려고 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어떤 것인지조차 아직까지 국민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만약 국민이나 언론들이 허심탄회하게 윤 대통령에게 물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이념전쟁의 깃발을 들고 편가르기를 하려는 것인지를 따져물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도 경청하며 숙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보궐선거 참패 같은 상황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소통은 모두를 함께 살리는 윈-윈의 길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상황들이야 있겠지만, 큰 리더십을 발휘해 쓴소리까지 다 끌어안으면 좋은 약이 된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은 민심과의 소통, 각계와의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집무실로 초청해 쓴소리도 경청하며 국정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려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이 답습했던 큰 오류는 자기 진영만의 대통령으로 위치하려는 모습이었다. 대선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편가르기 진영정치를 그렇게도 비판하며 정권교체를 호소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정권을 잡고 나자 이번에는 우파에 의한 진영정치를 한다. 왼쪽이 오른쪽으로 바뀌었을 뿐, 국민 전체가 아닌 자기 진영만의 대통령이 되는 모습은 매한가지였다.

윤석열 정부로부터 민심을 떠나가게 만든 많은 일은 바로 이 같은 진영논리에 갇힌 국정 운영의 결과였다. 탕평을 하지 못하고 자기편에서만 사람을 찾는 인사, 이념을 우선하는 편가르기 정치의 결과가 정권의 기반을 스스로 좁혀놓는 우를 범했다. 

이제 총선이 다가오니 여당에서는 그동안 날려버렸던 중도 확장성을 다시 만들려고 나서는 소모적인 광경이 반복된다. 오늘 같은 변화의 시대에 이념을 떠받들며 편을 가르는 국정 운영이 얼마나 단견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2024년 새해를 맞았다. 더구나 4월에는 총선이 있는 해다.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총선은 무엇보다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되곤 한다. 국민은 윤 대통령이 과연 달라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답해야 한다. 그래서 1월에는 오랜만에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고 싶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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