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몰래 녹음한 통화, 사생활 침해 크면 증거능력 없어”
  • 문경아 디지털팀 기자 (mka927@naver.com)
  • 승인 2024.01.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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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단정해선 안 돼”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연합뉴스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한 통화내용이 사생활을 심하게 침해한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14일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원 A씨 등 4명에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하며 이러한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원심이 전화통화 녹음파일 중 A씨와 그의 배우자 사이의 전화통화 부분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심의 판단에 위법수집증거,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3월 실시된 지역수협 조합장 선거에서 선거인들에 금품을 제공하거나 사건선거운동을 하는 등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검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통화녹음 파일을 입수하고 이를 증거로 제출했다.

다만 해당 통화녹음 파일들은 A씨의 아내가 A의 불륜을 의심해 휴대전화에 몰래 자동녹음기능을 활성화 해놓은 것이 녹음된 것이었다.

1심과 2심은 이들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보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검사와 피고인들 모두 불복해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열렸다.

상고심 쟁점은 휴대전화 통화내용 녹음 파일이 혐의 입증 증거로 쓰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의 경우 증거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A씨의 아내가 A씨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직접 통화한 내용이라 침해 정도가 크지 않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선거 범죄의 특성상 녹음 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필요성도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증거 수집 절차가 개인의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난 것이라면 단지 형사소추에 필요한 증거라는 사정만을 들어 곧바로 형사소송에서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통화 내용을 한 사람이 몰래 녹음해 상대방의 형사사건에 증거로 제출하는 일반적 사례에서도 녹음 경위와 내용 등에 비춰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이러한 판결에 대해 구체적 판단 기준을 밝히지 않아 어떠한 상황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지 여부 등은 향후 법원 판결이 누적돼야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인이 수집한 사생활 영역 관련 증거의 증거능력 판단 기준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재확인했다”며 “전화통화 일방당사자의 통화녹음파일 증거능력이 문제된 사건에서 증거능력이 부정되지는 않더라도 그 녹음 경위, 녹음 내용 등에 비추어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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