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재 반복에도 ‘난연 규제’ 부실한 한국…외국 봤더니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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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화재’ 사고로 인한 국내 연간 사망자 85명 달해
한국 매트리스에 ‘담뱃불’ 붙여 매트리스 실험, 미국은 ‘버너’로
성탄절 새벽에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고층 아파트에 화마의 흔적이 남아있다.ⓒ시사저널 정윤경
성탄절 새벽에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고층 아파트에 화마의 흔적이 남아있다.ⓒ시사저널 정윤경

서울 도봉구, 경기 군포시 등 아파트 화재 참사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주택 내부 특히 침실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인명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트리스 등 안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소방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주택에서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주방’이다. 그런데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낸 곳은 ‘침실’이다. 재작년에는 85명이 침실에서 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주방기기는 대부분 화재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침실은 수도시설도 없는 데다 침대나 침구 등 가연재가 많은 탓이다.

특히 침대 매트리스는 침실 화재의 주범으로 꼽힌다. 차지하는 면적도 넓고 푹신함 때문에 공기층이 많이 주입된다. 이 때문에 매트리스에 한 번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불길이 치솟는다. 이른바 ‘플래시오버(화재로 발생한 가연성 분해가스가 폭발적으로 확산하여 창문이나 방문으로부터 연기나 불꽃이 뿜어 나오는 상태)’다. 플래시오버가 발생하면 질식을 유발하고 시야가 차단된다. 특히 겨울철에는 매트리스 위에 전기장판 같은 온열기구를 올려놓는 경우가 많아 화재에 더 취약하다.

 

미국·캐나다 “버너로 매트리스 태워서 실험”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침대 매트리스에 대한 화재 안전 시험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을까. 또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사례는 어떨까.

먼저 한국은 실규모 매트리스 10분의1 크기의 시험체에 담뱃불로 불을 붙여 육안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화재 시험이 이뤄진다. 불붙은 담배를 매트리스 위에 올렸을 때, 10cm 이상 타지 않으면 ‘KS G 4300’이라는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담배 등으로부터 불꽃이 착화되는지에 대한 검증이다. 이런 방식은 화재 초기 반응만 관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침대의 연소 현상과 실내 화재 위험을 분석하기는 어렵다.

반면 미국은 난연 규정이 엄격하다. 실험은 시판용 제품과 동일한 사이즈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한국과 달리 버너로 불을 붙여 진행된다. 30분 동안 최대 열 방출률이 200㎾ 이하, 처음 10분간 15MJ을 넘기지 않아야 통과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돼야 시중에 판매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이 북미 시장에 침대 매트리스를 수출할 때는 지정된 외국 시험 기관에서 시험을 하기도 했다.

캐나다, 영국도 미국 난연 규정을 본떠 침대 매트리스의 정량적 측정 시험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12월17일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17일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한국도 2017년 국가기술표준원에서 미국과 같은 ‘버너 시험법’을 기준으로 삼은 규정을 만들었지만, 강제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난연 기준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국이 온돌 문화에서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서양식 문화로 바뀌고 있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건 좋다”면서도 “당장 모든 업체에 엄격한 난연 기준을 지키라는 건 부작용이 클 수 있으니 호텔 등 대형 숙박시설에 한해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가연성이 강하다고 해서 매트리스에 엄격한 난연 기준을 적용하면 소파나 책상 등 다른 가구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면서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면 일반 매트리스보다 난연 소재가 값이 비싸더라도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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