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건물 1층 흡연실에서 군사기밀 건네받아”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9 10:0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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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1·2심 판결문 단독 공개
3년간 ‘군사Ⅲ급 비밀’ 8회 이상 탈취
해군 관계자 자리 비울 때 휴대폰 카메라로 몰래 촬영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관련 군사기밀을 탈취하고 내부망에 공유한 혐의(군사기밀 탐지·수집 및 누설로 인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지난해 11월말 유죄를 최종 확정받았다. 9명 모두 징역 1~2년-집행유예 2~3년에 처해졌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과징금 부과 등 ‘부정당 제재’를 검토해 왔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 직원이 ‘판결문 제3자 열람금지’를 신청하면서 방사청의 제재는 지연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엄동환 방사청장은 1심 판결이 2022년 11월에 나왔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 “판결문 확보가 어려워 구체적인 제재 심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캡쳐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캡쳐

방사청 “2월에 입찰참가자격 제한 심의”

방사청은 최근 판결문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근거로 방사청은 2023년 12월20일 HD현대중공업에 대한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었으나, 제재 결정을 다음 심의로 미뤘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방사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사청은 오는 2월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재 수위는 어떻게 될까. ‘방위사업법 시행규칙(입찰참가자격 제한의 세부기준)’에 따르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Ⅱ급 또는 Ⅲ급으로 지정된 비밀의 제공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이 있는 경우 5년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2012년 10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3년여 동안 군사Ⅲ급 비밀을 8회 이상 빼냈다.

방위사업 입찰 시 업체는 ‘청렴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KDDX 사업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도 청렴서약서를 냈다. 청렴서약을 위반하면 방산업체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다만, 방위사업법은 청렴서약서 제출 대상을 ‘대표 및 임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임원급이 아닌 직원이 군사기밀을 탈취했을 경우 회사는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된 HD현대중공업 직원 중 청렴서약서를 쓴 임원은 없다.

그러나 방사청은 계약심의위원회를 연기하면서 군사기밀 탈취에 HD현대중공업 윗선의 ‘조직적 지시’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판결문을 보면, HD현대중공업이 군사기밀을 조직적·체계적으로 비밀리에 관리한 정황이 나온다.

방사청은 올해 KDDX 사업과 관련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를 추진한다. 2030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국산화하는 KDDX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되는데,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통상적으로 기본설계를 따낸 기업이 자연스럽게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맡곤 한다.

그러나 오는 2월 방사청의 계약심의위원회에서 제재가 결정되면, HD현대중공업은 사실상 수주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사청은 2022년 11월 1심 유죄 판결이 나온 이후 HD현대중공업에 감점(–1.8점)을 주고 있다. 방사청은 기동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보안 관련 법위반 행위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엄중한 사항이니만큼 앞으로도 현재와 같이 강화된 보안 감점을 지속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엄동환 방사청장, 왕정홍 전 방사청장 ⓒ
(왼쪽)엄동환 방사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HD현대중공업에 대한 판결문 확보가 어려워 제재 심의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른쪽)문재인 정부의 왕정홍 전 방사청장은 ‘KDDX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에 특혜를 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판결문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 초래”

시사저널은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1·2심 판결문을 모두 입수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경쟁업체보다 우위를 차지하거나 특수선 개발에 활용할 목적으로 각종 군사기밀을 수집한 후 이를 내부에 설치된 자체 서버에 업로드(upload)해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재판부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빼낸 군사기밀에 대해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계룡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함정기술처장실·설계실, 서울 방사청 장보고-Ⅲ 사무실, 부산 국방기술품질원 등에서 군사기밀을 빼냈다. 판결문에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어떤 식으로 군사기밀을 빼냈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

●2012년 10월22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M 연구원(당시 L사 근무)을 통해 이메일로 군사Ⅲ급 비밀인 ‘특수전지원함/특수침투정 개념설계 기술지원 용역 최종 보고서’ 파일을 입수했다. 이 파일에는 특수전지원함의 작전요구성능(ROC), 적 대함유도탄 주요 성능, 특수성능 등이 기재돼 있다.

●2013년 4월22일: 계룡시에 있는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함정기술처장실에서 O 대령으로부터 ‘KDDX 개념설계 1차 설계 검토자료’를 제공받아 열람하던 중 O 대령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미리 준비한 디지털카메라로 문건 중 KDDX의 운영개념(전·평시) 및 ROC 등이 포함된 부분을 사진 촬영했다. 위 내용은 군사Ⅲ급 비밀인 ‘제259차 합동참모회의 결과’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향후 우리 해군에서 도입할 예정인 차기 구축함의 작전운용능력·다기능능동위상배열레이더·무장통제체계 등이 기재돼 있다.

●2013년 5월3일: 부산 수영구에 있는 국방기술품질원 부산센터에 방문해 군사Ⅲ급 비밀인 ‘2013~27 국방과학기술진흥 실행계획 수정본’을 제공받아 열람하던 중, Q 사무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차기잠수함 성능목표’ ‘차기잠수함(B2, B3) 포함 연구개발 방안 및 연구개발 로드맵’ ‘잠수함용 대용량 추진전동기 개발’ 등 잠수함 관련 부분을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했다. 위 문건은 향후 우리 해군에서 도입할 예정인 차기 잠수함의 주요 성능, 연구개발 시기 등이 기재돼 있다.

●2014년 1월21일: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5층 회의실에서 열린 ‘장보고-Ⅲ Batch-Ⅱ 선행연구 사업관리회의 및 개념설계 관리회의’에서 S 중령(당시 해군 함정기술처 근무)이 특정 문서를 보면서 “이것이 해군참모총장님의 지시사항이다. 참모총장님께서는 잠수함의 속력 증가, 잠수함의 형상변경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라는 이야기를 하자, 해당 문서를 입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점심 먹으러 나가니까 저쪽(S 중령이 앉아있던 자리)에 있는 자료를 확보해라”라는 현대중공업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휴대전화로 책상 위에 놓여있던 군사Ⅲ급 비밀인 ‘장보고-Ⅲ Batch-Ⅱ 개념설계 중간 추진현황’을 몰래 촬영했다. 위 문건은 차기잠수함인 장보고-Ⅲ Batch-Ⅱ의 개념설계 결과, 주요 작전운용성능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계룡 해군본부(왼쪽 사진)의 전력분석시험평가단 함정기술처장실·설계실 ⓒ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계룡 해군본부의 전력분석시험평가단 함정기술처장실·설계실 등에서 군사기밀을 빼냈다. ⓒ연합뉴스

해군본부·방사청 사무실에서 기밀 빼내

●2014년 2월14일: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함정기술처 사무실 맞은편 공간(설계실)에서 S 중령으로부터 군사Ⅲ급 비밀인 ‘차기구축함 개념설계 보고서’를 제공받아 열람하던 중 S 중령이 밖으로 나가자 휴대전화로 문건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촬영했다. 위 문건은 향후 우리 해군에서 도입할 예정인 차기구축함의 전투관리체계, 다기능능동위상배열레이더, 적외선탐지 추적장비, 소나체계 구성 방안, 통합생존성검토, 대잠전 작전운용능력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

●2014년 3월24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방위사업청 장보고-Ⅲ 사무실에서 W 중령(당시 방위사업청 장보고-Ⅲ 사업팀 근무)으로부터 군사Ⅲ급 비밀인 ‘장보고-Ⅲ(Batch-Ⅰ) 사업추진기본전략 수정(안)’ ‘KSS-Ⅰ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추진 기본전략(안)’ ‘차기잠수함(KSS-Ⅲ) 신규 중기전력 소요제기 및 작전운용성능(안)’ ‘훈련함(ATX) 사업추진 기본전략 수정(안)’을 제공받아 열람하던 중 W 중령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휴대전화로 문건을 사진 촬영했다. 위 문건에는 우리 해군 수상함·수중함의 운용개념 및 획득목표, 요구 제원 및 성능, 전력화 계획, 작전운용성능, 소요량, 국가별 성능개량 현황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

●2014년 3월28일: Y대학교 국방M&S 연구센터 담당 연구원인 Z로부터 군사Ⅲ급 비밀인 ‘KSS-Ⅰ성능개량사업 선행연구 최종보고서’를 건네받았다. 위 문건에는 차기잠수함인 장보고-Ⅰ의 전력화 계획, 소요량, 작전운용성능, 전투체계 성능, 교전시뮬레이션, 운용개념 등이 기재돼 있다.

●2015년 11월19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해군 선배 장교인 AA 중령(당시 해군본부 근무)에게 연락해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건물 1층 매점 옆 흡연실에서 AA 중령을 만나 군사Ⅲ급 비밀인 ‘장보고-Ⅲ Batch-Ⅱ 사업추진 기본전략(안)’을 건네받았다. 위 문건에는 장보고-Ⅲ Batch-Ⅱ의 필요성, 운용개념, 획득성능, 획득목표, 연도별 사업예산, 사업추진 일정, 전력화 평가 방법, 사업추진 방침 등 사업의 전반적인 추진 전략이 기재돼 있다.

ⓒ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서울 방사청의 장보고-Ⅲ 사무실 등에서 군사기밀을 빼냈다. ⓒ연합뉴스

군사기밀 따로 보관...감사 나오면 네트워크 끊어

가장 민감한 내용은 군사기밀 탈취 과정보다 이를 보관·활용하는 부분에서 나온다. 다음은 판결문 일부다.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는 직원들 상호간 필요한 파일을 업로드하거나 열람, 다운로드(download)할 수 있는 내부 서버인 ○○○를 업무에 활용했고, 이를 사용하던 중 보안의 필요성 등의 문제가 대두돼 2013년 11월 중순경부터 ○○○를 폴더별로 나눠 접근권한을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CC 솔루션’을 도입했다. 이후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는 저장소(Storage)를 A, B, C로 나누고 저장소 A(Storage A)에는 중앙보안감사 시 공개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료를, 저장소 B·C에는 공개할 수 없는 자료를 업로드하되, 군사기밀 등 비밀성 자료는 주로 저장소 C에 보관하고 보안감사 시 네트워크를 단절하는 방법으로 감사를 피해 왔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군사기밀 탐지·수집 및 누설에) HD현대중공업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 임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 없이 수년에 걸친 군사기밀 탐지·수집 및 누설 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특히, 불법으로 취득한 군사기밀을 관리하기 위해 ‘솔루션 프로그램’까지 도입했다. 또한 감사에 대비해 네트워크를 끊는 ‘대응 매뉴얼’까지 만들었다. 이는 범죄행위를 숨기기 위한 ‘회사 차원의 대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KDDX 사업을 둘러싼 HD현대중공업 관련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말 왕정홍 전 방사청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방사청장을 지낸 왕씨는 2020년 현대중공업이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방사청 내부 규정을 바꿔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HD현대중공업은 KDDX 개념설계도를 빼돌려 보관해 오다 안보지원사령부(현 방첩사령부)의 불시 보안감사에 걸려 직원 10여 명이 수사를 받던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8명은 지난해 4월 유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감점을 받아야 했지만, 2019년 9월 ‘제안서 평가 업무지침’이 수정되면서 감정 규정이 완화됐다. 방산기술 유출과 관련해 안보지원사령부의 처분 통보를 받으면 0.5~1.5점을 깎도록 돼있던 규정이 삭제된 것이다. 결국 HD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0.056점 차로 제치고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은 “KDDX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가 지난해 8월17일 방사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면서 “아직 입건된 방사청 직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방사청 내 감사·감찰은 별도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방산 비리 근절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이상협 민주당 국방전문위원은 “HD현대중공업 사례를 토대로, 청렴서약서 대상 확대 및 구체화(미등기임원 포함) 등 더욱 엄격한 규제를 만들어 방산 업체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직원들의 군사기밀 탐지·수집 및 누설로 인한 유죄 확정 판결과 관련해 “(방사청의) 규정에 따라 현재 감점(–1.8점) 적용을 받고 있으며,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교육을 강화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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