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의 실효성을 묻다
  • 이광수 광수네 복덕방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3 12:0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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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_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감에 일부 지역 부동산 벌써부터 ‘들썩’
재개발·재건축 사업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성

정부는 최근 재건축, 재개발 시행이 빨라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재건축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착수하도록 하고, 재개발은 노후도 요건을 완화해 신축 빌라가 있어도 사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요건을 대폭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재건축, 재개발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재건축, 재개발 사업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최근 재건축과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발표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여의도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규제 완화를 통해 사업기간 단축 전망

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서울 노원구와 도봉구 등 규제 완화 수혜가 예상되는 아파트 소유자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매도 호가를 올리고 있다. 심지어 이미 맺은 매매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도 일부에서는 나타나고 있다. 규제 완화가 현실화할 경우 재건축 사업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저변에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우리나라에 노후 주택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해 보도록 하자.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주택은 전국에 449만 호가 있다. 종류별로 보면 아파트 173만 호, 단독주택 209만 호, 다세대주택 37만 호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73만 호로 노후 주택이 가장 많다. 다음으로 경기 63만 호, 부산 36만 호, 경남 36만 호 등이다.

비율은 어떨까. 아파트는 2022년 기준으로 전국에 1227만 호가 있다. 준공 이후 30년 이상 지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14%다. 지역별로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비율을 보면 서울 20%, 부산 18%, 대구 16%, 인천 21%, 광주 16%, 대전 18%, 울산 17%다. 노후 아파트가 가장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역은 세종으로 2%에 불과하다.

단순하게 비교해 보면 다른 나라보다 한국 노후 주택 비율은 낮다. 미국의 경우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 비율이 65%를 넘는다. 낮은 노후 주택 비율에도 아파트를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과 구조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노후 주택에 대한 불편과 불만은 최근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주택에 사는 평균 거주기간도 짧다. 2022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10.9년이다.

특히 인구가 집중돼 있는 수도권의 경우 평균 거주기간이 6.6년에 불과하다. 한집에 오래 살지 않으니 노후 주택에 거주해도 집을 수리하거나 고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오래돼 불편해도 집을 수리하는 것보다 시설이나 설비가 더 양호한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시설이나 설비가 더 양호한 집으로 이사했다’는 답변 비율이 48.7%로 가장 높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노후 주택에 대한 재건축,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의 제도 개선안은 과연 사업 속도를 올릴 수 있을까. 재건축은 절차 사업이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때문에 절차가 간소화되거나 단축되면 사업이 빨리질 수 있다. 문제는 정도다. 재건축 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 평균 10년 정도 걸린다. 안전진단 및 조합 설립 등 절차가 단축되면 사업기간이 7년 이내로 감소할 수 있다. 반면, 재건축 사업에서 절차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사업성이다. 즉, 사업성에 따라 재건축 사업의 기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희소성 약화는 사업의 최대 변수

재건축 사업은 간단하게 헌 아파트를 부수고 새 아파트를 짓는 일이다. 헌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공사비를 지불해야 한다. 지불하는 공사비에 따라 사업 진행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새 집을 짓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면 재건축, 재개발 사업은 아무리 절차가 간소화되더라도 진행이 안 될 수 있다. 결국, 정비(재건축, 재개발) 사업 추진에는 절차도 중요하지만 사업성이 더욱더 중요하다. 기대만큼 정부 규제 완화로 인해 정비 사업 추진이 빨라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반면, 재건축과 재개발 규제 완화로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 재개발이 시작되면 해당 주택 가격은 상승했다. 개발 기대감이 커지면서 공급이 감소하고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사업이 진행되면 노후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소유자들은 매물을 줄인다. 반면에 사업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주택 가격이 상승했던 이유다.

그러나 향후 시장 변화는 과거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와 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이다. 희소성은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규제가 많고 진행이 잘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후 아파트 중 일부 단지가 안전진단을 통과하거나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가격이 급등했다. 그러나 규제 완화로 사업이 진행되는 재건축, 재개발 단지가 많아지면 오히려 희소성은 없어지게 된다.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만으로는 주택 가격 상승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최근에도 안전진단을 통과한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면서 재건축 사업이 추진돼도 주택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재건축 아파트가 많아지고 있다. 투자자들 역시 이런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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