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폭탄과 대출 담합 제재 앞두고 시중은행 ‘초긴장’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9 15:0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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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제재 넘어 CEO 징계로 확대될지 여부에 촉각
시중은행들 “절차대로 ELS 판매한 만큼 문제 없어”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밝힌 ELS 판매잔액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9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80% 수준인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도래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올해에만 수조원 규모의 투자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당국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1월10일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ELS를 판매한 12개 은행(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과 증권사(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증권)에 대한 순차 현장검사를 벌이고 있다. 증권사의 ELS 판매 규모가 3조4000억원으로 은행권(15조9000억원) 대비 크지 않은 만큼, 금감원의 실질적인 타깃은 시중은행이 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수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ELS 투자 손실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판매사인 은행권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금감원·공정위 쌍끌이 조사에 ‘전전긍긍’

물론 시중은행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맞춰 ELS를 판매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은행권은 주장한다. ELS 판매 비중이 높은 고령 투자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정인 알림 서비스를 통해 가족이나 지인 등 제3자 지정인에게 상품 가입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상세하게 안내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금감원은 지난해 11~12월 주요 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을 일부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ELS 판매 관리체계의 문제다. 고위험 상품의 판매율을 인사고과(KPI)에 반영해 피해를 키운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에 따라 기관 제재뿐 아니라 CEO 징계로 파장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4~6년 전에 발생한 라임·옵티머스 사태나 채용 관련 후유증도 아직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시민연대는 지난해 11월 라임 사태 등으로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고액의 고문 계약을 체결한 우리금융지주를 금융 당국에 고발했다. 이 때문에 손 전 회장과 함께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도 최근 우리은행 고문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채용 관련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최근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CEO 리스크를 면했다고 해도 문제는 있다. ELS 투자자들은 현재 은행이 손실 금액을 전액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은행이 고위험 상품임을 알면서도 손실 가능성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아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금감원 조사에서 불완전판매 사례가 확인될 경우 배상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불확실성을 너무 오래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늦어도 3월 안에는 최종 결론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경우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2019년 터진 DLF 사태다. 당시 금감원은 손해액의 40~80%를 금융사가 지급하는 배상기준안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ELS 투자 손실 배상안 역시 마련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2023년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이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이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적 예년 같지 않아 은행권도 고민

이 경우 은행권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시중은행의 실적 전망치가 예년 같지 않다.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사상 최고 실적을 찍었다. 하지만 은행이 고금리를 통해 ‘이자 장사’를 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당국의 압박이 계속되자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은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안을 발표했다. 4분기 실적에 상생금융 비용이 반영되는 만큼 은행권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건설사들의 PF 우발채무도 은행권에는 악재다. 국내 시공능력평가 16위인 태영건설이 최근 480억원 규모의 PF 우발채무를 견디지 못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부동산 시장의 한파가 건설 업계 전체로 옮겨붙는 모양세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넥스트 태영(Next TAEYOUNG)’이 누가 될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회사의 PF 우발채무는 언제든 주채권은행으로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정위는 최근 4대 시중은행의 대출 담합 정황을 포착한 상태다. 담보대출 과정에서 거래 조건과 관련한 담합 행위가 수년간 지속됐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심의를 거쳐 제재가 확정되면 4대 은행에는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담 정도에 따라 추징 금액이 다르겠지만 금융권이 추정하는 과징금은 최소 수천억원대로 예상된다. 여러모로 시중은행들에는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하나투자증권은 지난해 4분기 주요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이 평균 0.04%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을 포함한 KRX 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683.24에서 669.85(16일)로 1.96% 하락했다. 지난해 1월 기록한 연중 고점(737.07)과 비교하면 하락률이 10%에 육박한 만큼, 은행권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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