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으로 구도의 길을 찾는 노작가의 도전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1 13:05
  • 호수 17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에 대한 성찰 담은 한승원의 구도 소설 《사람의 길》

글의 세계에서 한승원은 가장 넓은 인사이트를 보여준 작가다. 시, 소설, 산문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역사와 인물 이야기를 넘나들었다. 이제 팔순의 중간에 든 노작가가 자신의 인사이트를 아무런 장벽 없이 쓴 소설로 내놓았다. 한국전쟁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변하는 이 나라를 보면서 살았던 작가가 마지막으로 집착하는 것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사람의 길》은 그의 소설 《원효》처럼 긴 구도의 길을 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닭이나 돼지가 약점을 가진 이웃을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하듯 어린아이들은 심장판막증을 가진 친구를 괴롭히는 사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의 길│한승원 지음│문학동네 펴냄│332쪽│1만7000원
사람의 길│한승원 지음│문학동네 펴냄│332쪽│1만7000원

글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단어 선택이다. 다산, 초의, 추사 등의 고졸한 삶을 정리해 오던 작가답지 않은 강한 단어들이 튀어나와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습 자체가 너무 자연스럽다고 하며, 자신의 모습에 흥미를 부여한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미국인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술의 역사에서 모든 예술가의 말년의 작품은 파국이라고 했는데 나의 말년의 글쓰기는 어떤 모양새일까요.”

즉 스스로 파국적인 작품으로 가는 발걸음 딛기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을 표방했지만 내부에는 작가가 썼던 다양한 시와 실제로 경험한 일들, 이웃의 이야기, 선사들의 이야기 등을 넘나들면서 끝으로 향한다. 짧은 일화와 동화가 병렬되는가 하면, 시와 아포리즘이 끼어든다. 당연히 필요한 화자도 수없이 바뀐다. 저자이자 화자인 자신의 분신들을 소설 속에서 하나의 모습으로 가두지 않으려는 의도다. 대신에 작가는 자신이 올곧은 길을 걸어왔는지 반성하는 동시에 지난 삶을 통해 가까스로 깨달은 길이자 사람에게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길을 보여주려는 자신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모든 길은 현실적인 낮의 길보다는 비현실적인 깜깜한 밤길이고, 달밤의 길보다는 별밤의 길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마저도 버린 채 낚시질도 하고 천천히 모래밭과 해송 숲을, 저세상에 간 혼령을 부르기 위해 피운 만수향을 찾아가는 바람처럼 걸어다녀 보는 개멋을 부리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 길이 나를 편하게 하는 길이었다. 사실에 있어서는, 이승에서의 내 모든 길은 아마도 저승(또는 천국)의 문턱에 있는 업경대 앞까지 닿아있을 터이다.”

작가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사후에 대한 다양한 당부를 담아놓기도 했다. “아들딸에게 전할 유언을 생각했다. ‘나 죽으면 대비해라. 화장은 인간 최종의 화장(化粧)이고 화장(華藏)이고 환원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한승원의 세계는 화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딸인 작가 한강 등 자식들로 연결돼 더 무성한 숲을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