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버전’으로 재탄생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 김영대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0 14:05
  • 호수 17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산 바뀌었지만 공통된 감정의 결은 여전히 존재해
덮어놓고 아이들 나무랐던 어른들에 대한 경고 의미도

옛날 노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가사. K팝 4세대를 대표하는 걸그룹 에스파가 K팝의 ‘시조’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하면서 밝힌 소회는 그랬다. 아울러 이들은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라는 이 노래의 ‘거친’ 가사를 언급하면서 서태지의 창조적이며 천재적인 표현력에 소름이 돋았다고도 말한다.

신기하게도 필자를 비롯해 X세대들이 청소년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오리지널 버전을 처음 들으면서 느꼈던 그때의 감동과 소름의 포인트를 에스파도 비슷하게 느낀 것 같다. X세대와 Z세대, 얼터너티브 록과 K팝의 세대는 무려 30년 가까이 떨어져 있건만 분명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통된 감정의 결은 여전히 존재하는 듯하다. 아마도 그 같은 감정의 기저에 깔린 젊은이들의 ‘시대’에 대한 ‘유감’도 겉모양만 바뀌었을 뿐 그다지 달라지진 않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룹 에스파가 2023년 12월10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24 한국방문의 해 기념 K·Link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곡과는 사뭇 다른 매력 담은 리메이크

K팝으로 재탄생한 에스파의 《시대유감》은 원곡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갖고 있고, 그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요즘 가요계를 보면 명곡의 ‘재녹음’ 수준에 불과한 커버나 아무런 음악적 개성이 없는 드라마 OST 수준의 리메이크가 적지 않다. 올바른 리메이크라면 원곡을 좋아하던 팬들의 불평과 비판을 일정 부분 감수하더라도 새 버전이 내세우고자 하는 음악적 차이를 어필해야 한다.

에스파의 《시대유감》은 그런 면에서 리메이크의 기본을 다하고 있다. 일단 폭발적으로 휘몰아치던 원곡의 신나는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는 SM 특유의 하이브리드적인 K팝 사운드로 세련되게 재해석돼 있다. 폭발적인 드럼으로 시작해 밴드 플레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강조된 원곡에 비해 에스파의 버전은 힙합 리듬의 랩 벌스를 전면에 부각시켜 에스파 특유의 서늘한 금속성 느낌을 강조하고 있는데, 편곡에 대한 취향을 떠나 여기서부터 큰 차이가 만들어진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에스파의 《시대유감》 리메이크 버전 표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파 멤버들의 날 선 랩, 특히 윈터의 로킹한 고음이 주도해 뻗어나가는 후렴구의 호쾌함이 전체적으로 에스파 음악들이 평소 보여주던 분위기를 익숙하게 소환하고 있어 1995년 곡의 리메이크라는 느낌보다는 에스파가 새로 발표한 신곡 같은 인상을 남긴다. 일점일획 뭐 하나 손볼 곳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오리지널 버전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불만족스럽거나 낯설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지금의 K팝 팬이라면 에스파의 리메이크 버전 역시 K팝의 트렌디함을 만끽하면서도 서태지가 만든 원곡의 도발적인 매력이 뭔지 관심을 갖게 만들 만한 곡이라 말할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은 미성숙한 시대가 만들어낸 히트곡 아닌 히트곡이다. 1995년 4집 발매 당시에는 타이틀곡도 아니었고 활동곡도 아니었으나 1년 후 재발매됐을 때는 싱글이었음에도 100만 장 넘게 팔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지금도 음악팬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음악이자 대중음악사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회상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곡이 등장하고 역사가 되는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이 발매된 시점의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계 전반을 함께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최초의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의 시대를 맞아 대중음악계는 적어도 겉으로는 진일보한 표현의 자유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X세대를 중심으로 세태 비판과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과감하고 직설적인 가사들이 대중음악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물론 공일오비, 신해철, 현진영 등 신세대 뮤지션들이 힙합과 전자음악 사운드를 내세우며 1980년대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문학적·미학적 표현을 감행해 청소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던 그 시기였다.

예술가에 대한 군부의 탄압이 훨씬 더 극심했던 1980년대보다도 1990년대의 대중음악이 과감하고 도발적인 표현들을 음악에 더 적극적으로 녹여낸 것은 아이러니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민주화가 왔다고 해서, 먹고살 만해졌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X세대의 젊은 예술가들은 더 높은 단계의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원했고, 그들은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모든 종류의 불의와 악습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시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은 물질주의와 권위주의를 공히 저격하며 선한 메시지를 통해 젊은이들을 묶어내던 시대정신이었다.

2008년 8월1일 코엑스 앞 광장에서 열린 ‘서태지 게릴라 콘서트’에서 서태지가 열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성세대들에 대한 분노 담은 《시대유감》

1994년 10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한창 출근과 등교를 서두르던 오전 8시 무렵에 성수대교가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그 참사의 충격이 가져온 국민적 트라우마가 채 치유되기도 전인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또다시 무너졌다. 서태지를 비롯한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이것은 단순히 ‘사고’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인들과 기성세대의 무책임의 증거였고, ‘가식’과 ‘거만’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더 이상 정직한(혹은 순진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뒤집어지길 원하는 세상의 징조였던 것이다. 어른들보다 더 오래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그리고 아직 세상을 바꿀 큰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어른들은 상상하지 못할 큰 좌절감과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서태지는 이 좌절과 분노를 노래로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4집의 수록곡 《시대유감》이었다.

물론 사회를 향한 혹은 사회에 관한 ‘아웃사이더’이자 ‘혁명가’로서 서태지가 의식 있는 목소리를 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집과 3집에서는 각각 《죽음의 늪》과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곡을 통해 젊은 세대에 침투하기 시작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은유적으로 경고했고, 1980년대 민중가요가 들려준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남북 화해 메시지인 《발해를 꿈꾸며》, 학교 시스템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 시스템 자체를 부정해 버리며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일갈하는 《교실이데아》는 어쩌면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었다. 4집에 이르러서도 전복을 향한 그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의 갱스터랩 사운드를 빌려오면서도 폭력적인 메시지 대신 일깨움과 권고의 메시지를 담은 《Come Back Home》은 사회(혹은 기성세대)의 문제를 개인(혹은 청년)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 서태지의 태도를 잘 드러내 보이며 이것은 많은 청춘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제작인 《시대유감》이 있었다. 

《시대유감》이 이렇게 가요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이 될 운명을 처음부터 타고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이 곡이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에 의한 검열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서태지가 이에 반발해 연주만 담긴 MR 버전을 싣기로 하는 결정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며, 이 곡이 《컴백홈》이나 《필승》에 이은 또 하나의 히트곡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팬과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거대한 촉매제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해 이 곡을 가사가 없는 연주곡 버전으로만 접했던 수많은 젊은 팬은 이 상황을 의아해했고, 서태지가 직접 언급한 이 사태의 뒷이야기와 가사들이 언론을 통해 차츰 알려지면서 예술가들의 문제였던 ‘사전심의’는 정작 중요한 일들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한심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자유를 향한 탄압의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을 발매하며 고군분투에 불을 지핀 가요 검열 철폐 운동은 《시대유감》이라는 핵폭탄을 만나 결국 그 결실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가요 역사에 길이 회자될 가장 극적인 한순간이라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 리마스터링 버전 표지 ⓒ서태지컴퍼니 제공

과거의 부당함 얼마나 바꿔냈는지 반성

가사가 빠진 《시대유감》이 발표된 지도 거의 30년이 돼간다. 그 시절 어른들의 세상이 하나부터 열까지 부당하다고 느꼈던 X세대들은 어느새 ‘요즘 애들’을 보며 한숨을 쉬는 ‘라떼’ 어른들이 됐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정작 우리는 그 옛날 우리가 느꼈던 부당함들을 얼마나 바꿔냈는지 혹은 그러려고 노력했는지 이 곡을 들으며 새삼 반성해 보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그때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뭔가를 바꿔내기를 두려워하거나 짐짓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젊은이들이 바꾸고 있는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기보다 막연하게 불안해하고 우리의 입맛과 편의대로 훈계하고 막아서려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마스터 버전과 에스파의 리메이크로 다시 돌아온 《시대유감》은 먹고살 만해지니까 불만을 토로한다고 우리를 나무랐던 어른들의 전철을 밟지 말자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 정직한 사람의 시대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나이브하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 들어찬 어른들의 가식을 정당화하는 어른들이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을 기다리는 이들의 분노와 좌절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