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살림’에 흉물로 덩그러니…광주 신양파크호텔 혈세낭비 논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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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폐업 이후 사실상 방치…설익은 정책으로 장기화, 애물단지되나
'무등산 공유화사업' 3년 넘게 답보…호텔 매입비 369억·이자만 연 18억
광주시, 신양파크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건립 선언에 미술계 의구심↑
22일 오후 3시 30분쯤 국립공원 무등산 자락 옛 신양파크호텔은 녹색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시민들 출입을 막은 문틈에는 상수도 요금통지서 등 각종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22일 오후 3시 30분쯤 국립공원 무등산 자락 옛 신양파크호텔은 녹색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시민들 출입을 막은 문틈에는 상수도 요금통지서 등 각종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22일 오후 3시 30분쯤 광주 동구 국립공원 무등산 자락 옛 신양파크호텔은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시민들 출입을 막은 문틈에는 상수도 요금통지서 등 각종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문 너머로 보이는 6층 규모 건물은 색이 바래있었다. 가끔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가끔 지산 유원지에서 오고가는 행인들도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올라가는 언덕배기 바닥에는 빈 페트병 등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 을씨년스러웠다. 한때 광주의 대표 호텔이었던 옛 신양파크호텔(이하 신양파크호텔)의 현재 모습이다. 

 

광주 호텔 대명사였던 ‘신양파크호텔’

광주 호텔의 대명사였던 신양파크호텔이 어떻게 된 것일까. 1981년 문을 연 신양파크호텔은 2000년대 초반까지 무등산 자락의 입지적 여건으로 ‘숲속의 호텔’로 불리면서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애용했다. 특히 굵직한 정치·경제·스포츠·문화 행사가 열렸고, 유명정치인들의 강연 장소와 유력 인사들의 사교 장소로 활용됐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원년(1982년)과 거의 때를 같이해 문을 연 신양파크호텔은 기아타이거즈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주요 행사장과 프로야구 원정팀 숙소로 쓰여 프로 야구 팬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전남도청이 이전하는 등 구도심이 점차 활기를 잃어가고 상무지구에 호텔과 유흥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신양파크호텔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2019년 사실상 폐업한 뒤 지금은 폐호텔로 방치돼 애물단지가 됐다. 광주시는 신양파크호텔 부지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호텔을 사들인 이후 그 활용방안에 대해 오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생태호텔이나 아트플라자 개발 계획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백지화된 상태이다.

광주시는 민선 7기 때인 2021년 1월, 무등산 내 신양파크호텔이 폐업한 자리에 민간 건설업자가 호화 빌라단지 건립을 추진하자, 무등산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 등 부지 2만5000㎡를 369억원에 매입했다. 

그러나 호텔 활용 계획이 3년 넘게 겉도는 사이 옛 신양파크는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호텔 매입비용에 따른 이자 등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실제 최근 시중금리 기준으로 369억원에 대한 연간 이자만 18억 6700여만원(월 1억 5000여만원)에 이른다. 

광주 신양파크호텔 전경 ⓒ연합뉴스
광주 신양파크호텔 전경 ⓒ연합뉴스

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불투명한데···김칫국부터 마신 광주시

문제는 현재까지도 호텔 부지 활용 계획을 좀처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시는 매입 이후 ‘무등산 난개발 방지를 위한 민·관·정협의회’를 구성해 16차례 협의를 했다. 협의회는 2021년 11월 호텔과 부지를 친환경적으로 활용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기존 시설을 재활용해 호텔 기능을 살려 유스호스텔 등의 기능이 포함된 생태호텔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선 8기에 접어들면서 그동안의 논의는 백지화 됐다. 강기정 시장이 재정 부담 등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새로운 방향으로 검토되면서 현재까지 방치된 상태로 놓여있게 됐다. 

광주시는 고민 끝에 옛 신양호텔 부지에 국립 현대미술관 광주 디지털아트관(분관) 유치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국립 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서면,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광주의 문화 품격이 업그레이드되고 관리·운영비용 최소화는 물론 무등산 자락 난개발 등을 막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오는 2027년까지 옛 신양파크호텔 자리에 총사업비 800여억원을 들여 세계적 수준의 ‘현대미술관 광주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호남권 미술의 수장고 기능과 함께 미디어 아트·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융·복합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복안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여러 내부 논의와 검토를 거쳐 옛 신양파크호텔 부지에 현대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는 게 최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광주 옛 신용파크호텔 모습 ⓒ시사저널
광주 옛 신용파크호텔 모습 ⓒ시사저널

‘묻지마 행정’이 혼란 부추겨…광주시, 일방적 발표

문제는 무등산 공유화위원회정부와 협의가 ‘필수적’이지만 정책 발표에 앞서 사전조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신양파크호텔을 활용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건립은 광주시의 일방 발표였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광주시 무등산 난개발 방지 지원 조례’를 보면 무등산 주변지역 개발을 위해선 무등산 공유화위원회의 심의·자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등산 공유화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강 시장이 참석한 전체 회의를 끝으로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무등산 공유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미정 광주시의원은 “광주시가 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사업 계획은 바뀔 수 있지만 조례에 근거한 위원회와 한마디 상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의회와 시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광주시의 장밋빛 계획도 터덕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광주시 요청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안에 ‘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을 위한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비 5억원 가운데 2억원이 의결됐지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최종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아직 현대미술관 유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억원을 들여 사업 타당성 조사 용역부터 실시하겠다며 광주시가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다. 

광주시가 국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점에서 내년 2025년 예산안으로 국회 심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광주시 관계자는 “신양파크호텔의 미술관 활용안이 좌초된 것은 아니고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지역에서 여론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 옛 신양파크호텔 표지석 ⓒ시사저널
광주 옛 신양파크호텔 표지석 ⓒ시사저널

미술관 위치 적지 논란도…변수 많아 장기 방치 우려도

과연 신양파크호텔이 미술관 위치로 최적지인지도 논란거리다. 지역 미술계 일각에서는 신양파크호텔이 미술관 입지로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다. 주위에 문화 환경이 전무하고 호텔로 들어서는 길도 편도 1차선 도로인 지호로밖에 없다. 기존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인 과천, 청주, 대전관 역시 도심 인근에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접근성이 떨어져 무등산 자락에 광주 분관 건립 당위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무엇보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계획 자체가 순항할지도 미지수다. 다른 지자체도 분관 유치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또한 사실상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유치 계획이 불투명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강 시장이 지난 6월 광주비엔날레와 지난 10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참관한 김건희 여사를 만나 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당위성도 알리고 있지만, 경남 진주시 등도 사활을 걸고 있는 사안이다. 광주의 경우 2008년부터 분관 유치를 추진해왔으나 매번 실패했다. 

일각에선 흉물로 장기 방치 우려도 나온다. 설령 분관 유치가 성공하더라도 해당 부지가 신양파크호텔이 될 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광주시가 준비하고 있는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은 신양파크호텔 등 특정 지역이 아닌 광주 전역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인 만큼 결과에 따라 언제든 후보지가 바뀔 수 있다. 신양파크호텔 부지의 방치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지역 미술계 인사는 “광주시가 마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가 확정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으나 사업 타당성 조사 기본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은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 ‘김칫국’을 마시기 전에 ‘떡 줄 사람’을 먼저 설득했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행정의 설익은 정책으로 신양파크호텔의 방치 기간만 더 길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계획은 사업성이 불분명하고 예산을 실제 가져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비엔날레전시관 등 도심에 문화인프라가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옛 신양파크호텔 부지가 미술관 최적의 장소인지는 위원회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고 대안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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