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 택시타고 왔다” 혹한 뚫고 소아과로…일상 돼버린 ‘오픈런’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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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만에 대기자 100명 훌쩍…동네 소아과 폐원에 원정도
전문가들 “소아의료체계 도미노식 붕괴…제도적 대책이 답”
24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24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새벽부터 40분 택시타고 왔다.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별 수 있나”

24일 오전 9시 반경 서울 구로구의 한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병원. 체감기온 영하 17.4도의 강추위를 뚫고 병원을 찾은 박아무개(63·여)씨는 일곱 살 된 손자의 손을 잡고 30분째 진료를 대기하고 있었다. 박씨는 “새벽부터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대기 순번 12번”이라며 “그래도 보통 30~40분은 기다린다”고 말했다.

3년째 손자 두 명을 돌보고 있는 박씨는 “원래 애들이 아프면 집 근처 소아과에 찾아갔는데 작년 여름부터 그 병원이 문을 닫았다”며 “동네 소아과는 거기뿐인데 사라졌으니 이젠 차타고 꽤 나와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날 찾은 국내 유일의 소청과 전문병원 우리아이들병원은 개원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이른바 ‘오픈런’에 나선 보호자와 아이들로 가득했다. 진료실 앞에는 50여 명이 소파에 앉아 대기했다.

내원 전인 온라인 예약자까지 감안하면 1시간여 만에 접수 환자 수는 100명을 훌쩍 넘겼다. 널널했던 접수실은 개원 후 1시간 반 가량이 지나자 아픈 아이들과 보호자로 꽉 들어찼다.

10살 아들과 소파에 앉아 있던 김순화(43·여)씨는 “오늘은 그나마 평일이라 덜하지 주말엔 2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집 근처 소아과를 두고 전문병원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아이가 복통과 구토 증상이 있어서 2주째 약을 먹고 있는데도 낫지 않는다. 전문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려고 왔다”고 전했다.

소아과 오픈런도 문제지만 보호자들은 더 큰 걱정을 토로한다. 김씨는 “가장 큰 문제는 야간이나 응급진료하는 병원이 거의 없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6살 둘째 딸이 새벽에 너무 아파서 급히 대학병원을 찾아갔지만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아예 없었다”며 “15세 미만 아이는 진료를 안 봐준다는데, 긴급 상황에서 참 난감하다”고 호소했다.

24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 인근 약국에서 병원 진료를 보고 나온 환자와 보호자들이 처방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24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 인근 약국에서 병원 진료를 보고 나온 환자와 보호자들이 처방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아무리 경고해도…소아의료체계 붕괴 대책 요원”

소아과 현장이 진료 대란에 내몰린 건 해묵은 문제다. 전문가들은 수년째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 붕괴의 심각성을 경고하면서 “소아과 축소 현상은 저출산이 일으킨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프라 붕괴에 따른 위기”라고 지적했다.

최근 3년간 코로나19 사태와 초저출산 문제가 맞물리면서 소아과 환자수가 급감했다. 환자가 줄어들자 문을 닫는 소아과 의원이 늘어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간 폐업한 소아과 의원은 총 550곳으로 개업한 의원 519곳보다 많았다.

소아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들도 감소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2019~2023년 정부가 지정한 소아청소년 수련기관의 정원 대비 전공의 지원 비율은 급속도로 줄었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코로나19 사태 전 2019년 80%, 2020년 74%에 달했지만 코로나 이후 2021년 38%, 2022년 27.5%까지 줄어들다가 지난해 15.9%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소아과 의료체계의 도미노식 붕괴를 막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24일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소아과는 비급여 항목이 없어 거의 진찰료만으로 운영되는데 그 비용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는 진찰료 29만원, 미국 27만원, 우리나라와 GDP가 같아진 일본은 7만원”인 반면 “우리나라는 1만5000원에 그친다”고 했다.

소아과에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 회장은 “소아과 의료진에게 형사면책과 민사면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소아과 의료진들은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무기 없이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책 보완에 착수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의료 이용이 어려운 야간과 휴일 소아 진료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상하겠다”며 “심야에 만 6세 미만 병·의원급 진찰료와 약국 보상을 기존의 2배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또 야간과 휴일에도 운영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임기 말까지 48곳(지난해 9월 기준)에서 100곳(1곳 당 2억원 지원)까지 늘릴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달빛어린이병원을 2027년까지 100곳으로 확충하겠다고 했으나, 현재 추세면 더 빨리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소아 전문의 양성을 위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소아 전임의 수련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소아과 전공의와 소아분야 전임의에게 매월 100만원의 수련보조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장에서는 아동건강 관련 법 제정과 정부 산하 조직 신설 필요성도 제기된다. 소아 의료 체계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고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만큼 일관된 정책 추진과 지원을 위한 전담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정부가 의료소아청소년과(가칭)를 신설해 성인과 어린이 의료 정책을 분리하고 성인 중심의 의료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이어 ‘어린이건강기본법’을 제정해 소아청소년 건강권 보장을 ‘국가 의무’로 규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아동복지법, 교육법 등 여러 형태로 산재돼 있는 관련 법을 통할해 아동 건강권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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