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강대강 대치에 ‘30조 국익’ 날아가나
  • 정용석 시사저널e. 기자 (yong@sisajournal-e.com)
  • 승인 2024.01.28 13:05
  • 호수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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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정쟁 탓에 정작 급한 수출입은행법안 우선순위 밀려
폴란드 수출 방산 업계 “다 잡은 물고기 놓칠 판” 발만 동동

최대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무기 2차 수출계약 전제조건인 한국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방산 업계는 오는 2월8일까지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수은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계약이 축소 혹은 무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야가 오는 4·10 총선을 앞두고 정쟁에 몰두하느라 수은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노력이 지지부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배경은 이렇다. 폴란드 정부는 2022년 항공우주산업(KAI)의 경전투기 FA-50,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자주포, 현대로템의 K2전차 등을 수입하는 기본 협정을 체결했다. 1차 수출 물량은 K2전차 180대, K9자주포 212문, FA-50 48대 등으로 총 17조원 규모였다.

현재 1차 사업은 본계약 체결 후 양산·납품이 진행되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해당 물량의 납품이 진행되면서 한국의 폴란드 무기 수출은 꾸준하게 증가 추세를 보였다. 방산 업계는 수출이 본격화된 2022~23년 2조원 이상(15억9000만 달러)의 대(對)폴란드 수출 실적을 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공방으로 국회에 발의된 수은법 개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무기 2차 수출계약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대한민국방위산업전 2022 모습. 오른쪽 작은 사진은 국회에서 답변하는 윤희성 수출입은행장 ⓒ연합뉴스

국회 계류 안건 3건…2월8일까지 처리해야

문제는 약 30조원대로 추정되는 2차 계약을 앞두고 수은의 신용공여 한도가 막히며 발생했다. 현행 수은법상 수은은 특정 대출자에게 자기자본의 40% 이상을 대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수은법 제4조는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15조원으로 제한한다. 이 때문에 수은의 자기자본은 법정자본금 15조원을 비롯해 18조400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출 한도는 18조4000억원의 40%인 7조3600억원 수준이다.

수은은 폴란드 무기 수출 1차 계약에서 6조원가량 대출을 제공하면서 한도를 대부분 소진한 것으로 추산된다. 남은 계약 한도는 1조3600억원에 불과하다. 1차 계약보다 규모가 2배가량 큰 2차 계약에 대해 대출해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대주단을 꾸려 폴란드 수출 지원에 나섰지만, 그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방산 업계의 주장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차 계약에 약 3조5000억원의 금융 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산 업계는 2차 계약의 전체 사업 규모를 고려하면 ‘임시방편’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대주단이 제공하는 대출은 수은보다 금리가 높아 폴란드 측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수은법 개정을 통해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늘리면 문제는 해결된다. 국회도 방산 업계의 위기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해 7월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같은 해 10월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5조원으로 늘리는 수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른 국가나 정부를 구매 당사자로 계약하는 경우 신용공여 한도를 예외로 하는 내용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수은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여야는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상향하는 내용의 수은법 개정안 논의에 착수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수은법 개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논의 당일 야당이 ‘김포 5호선 연장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법안을 단독으로 의결하면서 여야 간 공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골자로 한 ‘메가시티’ 특별법을 추진하면서 야당이 맞불 성격의 5호선 예타 면제를 강행 처리한 것이다.

수은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총선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여야의 쟁점 법안도 늘어나고 있다. 오는 임시국회에서도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간다면 수은법 개정안 등 굵직한 법안 개정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영석 의원실 관계자는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수은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여야 갈등이 심화하고 있어 올해 통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부 기재위 소속 의원들은 수은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겉으로는 여야가 모두 수은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모양새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면서 “‘방산 수출에 대한 정책금융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며 근본적 의구심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했다. 실무진 사이에선 “(수은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공이 여당 쪽으로 갈 수 있으니 협조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수출금융 지원하는 선진국과 비교돼

방산 업계는 국회가 총선 체제로 전환하기 전에 수은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연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여야가 합치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수은법 개정안이 정쟁에 밀려 다음 국회의 몫으로 넘어간다면 국민과 기업이 이뤄놓은 성과를 정부가 무너뜨리는 꼴이 된다”면서 “정부의 수출금융 지원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진다면 향후 열릴 루마니아, 중동 등 시장에서도 우리 기업이 경쟁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업계 전반에는 어렵게 잡은 시장 주도권을 미국, 독일 등 방산 선도 국가들에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방산 선진국은 무기 수출계약 시 정부 금융 지원을 실시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정부의 금융 지원이 부실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방산 업계 한 관계자는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 폴란드 무기 수출계약 무산은 물론이고 향후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게 된다”며 “2차 물량의 수출계약 마무리를 위해 국회가 적극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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