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가(家) ‘모녀 대 형제’ 골육상쟁, 끝은 어디일까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4.01.30 11:05
  • 호수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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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원대 상속세 마련 위해 OCI와 통합 과정에서 충돌
송영숙 회장 vs 임종윤 사장 “표 대결도 불사”

한미약품그룹에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부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모녀와 이에 반대하는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형제의 대결 구도다. 양측의 갈등은 현재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한 상황이다. 임종윤 사장은 재판을 통해 OCI그룹과의 통합이 저지되지 않을 경우 주주총회 표 대결도 고려하겠다며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1월12일 한미약품그룹이 OCI그룹과의 현물출자 및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한 그룹 간 통합계약 체결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가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3%(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 8.4%)를 7703억원에 매수하고,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이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한다는 내용이다.

한미약품가(家)에서 모녀와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시사저널 이종현
한미약품가(家)에서 모녀와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시사저널 이종현

OCI와 통합 결정, 법적 분쟁 비화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OCI홀딩스가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을 모두 지배하는 형태다. 그러나 경영은 기존대로 임주현 사장과 이우현 OCI 회장이 한미약품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과 OCI그룹의 첨단소재·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각각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OCI홀딩스는 이사회를 두 그룹이 동수로 선임한 이사들로 구성하고 이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한미약품그룹은 OCI그룹과의 통합을 ‘한국 산업계에서 볼 수 없었던 상생의 기업 모델’이라고 자평했다. 사업 영업이 겹치지 않아 두 그룹의 이해가 충돌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도 이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상호 우호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약품그룹의 발표 직후 임종윤 사장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OCI그룹과의 통합과 관련해 한미사이언스나 가족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고지나 정보를 전달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사이언스는 OCI그룹과의 통합 결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미사이언스 주식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주주총회 결의가 불필요하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이유에서다. 또 OCI홀딩스 등에 대한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지분 양도 및 현물출자도 대주주 개인의 거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임종윤 사장은 1월17일 동생 임종훈 사장과 공동으로 수원지방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실상 두 그룹의 통합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이 재판의 최대 쟁점은 경영권 분쟁이 있었는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임종윤 사장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정은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 회장 측은 한미사이언스가 OCI그룹에 대한 유상증자를 결정한 1월12일은 경영권 분쟁 상황이 아니었다고 맞설 전망이다. 한미사이언스는 법률적으로 경영권 분쟁이 성립하려면 회계장부 열람 및 주주명부 공개 소송이나 각종 주주제안 등 상대방의 경영권 확보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행위가 수반돼야 하지만 임종윤 사장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향후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 작업에는 제동이 걸리게 된다. 반대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임종윤 사장은 주주총회 표 대결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송 회장(11.66%)·임주현 사장(10.20%) 모녀와 임종윤 사장(9.91%)·임종훈 사장(10.56%) 형제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각각 21.86%와 20.47%로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표 대결 시 한미사이언스 지분 11.52%를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이 캐스팅보트가 될 전망이다.

임종윤 사장은 주총 표 대결에 대비해 신 회장과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만일 표 대결에서 신 회장이 임종윤 사장에게 힘을 보태면 그는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 모녀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이 경우 송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가현문화재단(4.9%)이나 임성기재단(3%) 등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활용하는 한편 기타 특수관계자(6.1)와 국민연금공단(7.38%), 소액주주 등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OCI그룹과의 통합 발표를 계기로 모자간 분쟁이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갈등의 전조는 이전부터 감지됐다. 임종윤 사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미약품그룹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다. 2009년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한미홀딩스(현 한미사이언스)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분위기는 2020년 부친인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별세한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임 회장의 자리를 넘겨받은 송 회장은 2020년 9월부터 임종윤 사장과 각자대표 체제로 한미사이언스를 경영했다. 그러나 임종윤 사장은 2022년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이후 임 사장은 한미약품 사장직은 유지했지만, 주권 거래가 정지됐던 바이오 기업 디엑스앤브이엑스(Dx&Vx)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개인회사인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 코리그룹을 운영하는 등 외부 활동에 역량을 쏟았다. 그사이 송 회장은 지난해 7월 장녀인 임주현 사장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으로 선임하는 등 사실상 후계구도 재편 작업을 벌였다.

ⓒ한미약품·뉴스1·시사저널 사진자료

이전부터 갈등의 전조 감지돼

임종윤 사장은 이런 분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2020년부터 한미약품그룹에서 송 회장을 중심으로 밀실경영이 이뤄지면서 지금의 경영권 분쟁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현금을 마련하는 등 그룹 경영권 확보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을 벌여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송 회장이 OCI그룹과의 통합 결정을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재계에서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임 회장이 작고한 이후 송 회장과 임종윤·임주현·임종훈 삼남매는 고인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9%를 상속받았다. 이 과정에서 송 회장 일가에는 상속세 약 5400억원이 부과됐다. 송 회장과 자녀들은 이후 3년간 세금을 납부해 왔지만 아직까지 2000억원 이상이 남은 상태로 추정된다.

그동안 송 회장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약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한 배경도 상속세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계약은 불발에 그쳤다. 거래에 참여할 예정이던 새마을금고가 부실 논란으로 뱅크런을 겪으며 투자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이후 송 회장은 지난해 11월 전후로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권을 지키면서 상속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임종윤 사장은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에게 디엑스앤브이엑스와 코리그룹 등을 활용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세금 재원 마련을 위해 OCI그룹과 지분 매매계약을 체결한 제약사는 한미약품이 처음이 아니다. 중견 제약사인 부광약품 오너 일가도 2022년 3월 OCI그룹에 지분 11%를 1461억원에 매각한 바 있다. 김동연 부광약품 회장이 보유 중이던 부광약품 지분을 증여받은 세 자녀가 세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이를 통해 OCI홀딩스는 단숨에 부광약품 최대주주에 올랐다. 양사는 당시 주주 간 협약을 통해 신제품 개발과 투자 의사결정, 대규모 차입 등 중요한 경영상 판단에 대해 상호 협의하는 공동경영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OCI그룹의 지분 취득 직후 김 회장의 퇴진과 동시에 이우현 회장이 부광약품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됐다. 그리고 기존에 경영을 맡고 있던 전문경영인 유희원 부광약품 대표와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현재 이 회장은 부광약품 단독대표에 올라있는 상태다. 지난해 유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OCI그룹 측은 한미약품그룹과의 통합과 관련해 “그룹 간 인수합병(M&A)이 아닌 협력해 가는 모델”이라고 밝혔다. 한미그룹 측은 “법률 검토 결과 임종윤 사장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양 그룹사가 합의한 동반과 상생의 공동경영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원활한 통합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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