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다죽어”…중대재해 시행 D-2 소상공인 발 동동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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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만7000곳·800만 명 중처법 확대 적용 대상
소상공인 “중처법 잘 모르는 데다 아직 준비 안 돼있어”
25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모습 ⓒ시사저널 정윤경
25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모습 ⓒ시사저널 정윤경

“현장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국회에서 선포만 하면 다인가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전면 시행을 이틀 앞둔 25일 오전 11시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이곳에서 만난 이아무개(68)씨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처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30여 년간 이곳에서 인쇄기계 부품을 만들었다는 이씨는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이틀 뒤에 법이 시행된다는 걸 알았다”면서 “현장에 한 번이라도 내려와서 홍보를 하고, 지침을 내려줘야지 느닷없이 법이 시행될 거니까 무조건 따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이 통과되면 업주들이 범법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생각에 직원을 하나둘씩 줄일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문래동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철공소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만난 소상공인들은 이씨처럼 “당장 중처법에 대한 대비가 안 돼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중처법은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한 법안이다. 50인 이상 사업장에는 재작년 1월부터 적용돼왔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 유예 기간이 적용돼 27일부터 시행된다. 중소기업체는 시행을 2년 더 유예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법사위원회에 묶여 있는 상태다. 당장 오늘 여야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처법이 적용된다. 전체 사업장의 24%인 총 83만7000곳이 여기에 속한다. 종사자는 800만 명에 달한다.

철공소를 운영하는 업주들은 작업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까지 방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안전관리자를 두더라도 사실상 유명무실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5년간 산업용 로봇을 만들어왔다는 정명선(67) 사장은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대다수는 작업자가 깜빡 졸거나 딴생각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안전관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24시간 내내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호소했다.

외식업계도 법 시행을 앞두고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업계는 상시 근로자를 10여 명씩 두고 있던 자영업자들이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직원을 3~4명 수준으로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손무호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국장은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아무리 경영진이 주의를 주고 안전 교육을 해도 당사자나 손님 등의 부주의로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전부 경영진이 책임을 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어디서부터 사용자의 잘못이고, 어디까지 경영진의 책임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집행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가 유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가 유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처법 시행이 당장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소상공인 상당수는 법을 인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우린 그런 거 모른다”, “먹고살기 바쁜데 그런 걸 어떻게 아냐”, “아는 걸 물어봐라”며 손사레를 쳤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소규모 사업장 대다수는 아직 시행 준비가 안 돼있다”며 중처법 적용을 2년 유예해달라고 요구했다. 기간을 늦춰주면 2년간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심정으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고 국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시행을 2년만 늦춰주면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도 시행하고, 외부로부터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등 대비를 하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여야는 25일 본회의를 앞두고 중처법 전면 시행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과 윤석열 대통령은 2년간 유예해 달라고 촉구하는 반면, 야당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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