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지방간 특효약은 ‘햇빛·생선·영양제’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4 16:00
  • 호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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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국내 연구진 ‘비타민D, 비알코올성 지방간 억제 효과’ 증명
“건강한 사람은 영양제 필요 없이 하루 10분씩만 햇빛 쬐면 돼”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 대다수는 고령자다. 대한당뇨병학회 지방간연구회 2022년 팩트시트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의 40.4%가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간에 5% 이상 지방이 침착된 상태다. 지방간은 간경변과 간암뿐만 아니라 당뇨병이나 심뇌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한간학회에 의하면,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에게서 당뇨병 유병률이 2.2배, 심혈관질환은 1.6배 증가한다. 현재까지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공인한 치료제는 없다. 그래서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에게 권고하는 것은 근육량을 늘리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하라는 정도다. 이런 권고는 현실적으로 고령자에게 적용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노인성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령자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예방법을 물색하던 학자들은 비타민D를 후보 1순위로 꼽았다. 햇빛이나 음식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D 하면 흔히 뼈를 단단하게 만들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다양한 연구를 통해, 비타민D는 비알코올성 지방간과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렇지만 그 효과와 작용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그 난제를 풀었다. 한마디로 비타민D를 적당히 섭취하면 노화로 인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내분비·신장질환연구팀의 이번 연구 결과는 1월 세계적인 의과학술지(실험분자의과학) 온라인판을 통해 알려졌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이번 연구 결과는 비타민D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예방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비타민D에 의한 예방 효과와 그 조절 기전을 직접적으로 밝힌 데 의미가 있다. 고령층에서 적절한 비타민D 섭취가 노화로 인한 비알코올성 지방간 발생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부부 등 시민들이 햇빛을 받으며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 자료

노화 쥐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억제 효과 밝혀

국립보건연구원 연구진은 젊은 쥐(3개월)와 노화 쥐(18개월)에게 4개월간 비타민D를 투여하면서 놀라운 현상을 관찰했다. 노화 쥐에서 지방간 억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면밀히 살폈다. 그 결과 지방간의 미토콘드리아(에너지를 생성하는 세포 소기관)에 특정 단백질(Micos 60·미토콘드리아를 구성하는 여러 겹의 내막 구조 형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이 많이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간에 지방 축적이 많이 증가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힌 것이다. 

연구진은 또 이런 상태에서 비타민D를 보충하면 그 단백질량이 증가해 지방간 생성이 억제된다는 것도 증명했다. 비타민D를 보충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없는 간의 단백질량이 젊은 쥐와 같았던 것이다. 비타민D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예방하며 경증 지방간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임주현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 내분비·신장질환연구과장은 “체내 비타민D 농도가 충분한 젊은 쥐에게서는 (비타민D를 투여해도) 지방간 개선 효과가 없고 체내 비타민D 양이 불충분한 노화 쥐에게서만 지방간 억제 효과가 뚜렷했다. 비타민D가 간세포 Micos 60 유전자에 결합해 발현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지방간 생성이 억제됨을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비타민D가 사람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대규모 연구에 들어갔다. 그 결과가 나오면 새로운 비알코올성 지방간 예방법이 확립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비타민D 보충은 대사증후군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가령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합병증인 망막병증 위험이 커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비타민D 부족이다.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지속적인 고혈당으로 혈관이 손상되면서 눈 망막까지 손상되는 질환이다.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혈당을 잘 관리하더라도 10~20년이 지나면 망막병증이 생길 수 있고 30년이 지나면 90%에서 발생한다. 특히 요즘처럼 겨울철에는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활동량도 줄어들어 비타민D가 부족하기 쉽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혈당이 상승할 수 있어 망막병증 위험도 커진다. 

자료: 국립보건연구원
자료: 국립보건연구원 ⓒfreepik

햇볕 쬘수록 비타민D 합성 활발해져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단순히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 자체만으로는 유발되지 않는다. 간의 지방 대사에 이상이 생겨 많은 양의 중성지방이 쌓이면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된다. 간의 지방 대사에 이상을 초래하는 요인은 비만, 고지혈증, 당뇨병 같은 대사증후군이다. 즉 대사증후군이 있을 때 비알코올성 지방간 위험이 커진다. 대사증후군이 없는데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은 내장 지방 때문이다.

비타민D를 보충하는 방법은 세 가지(햇빛·음식·영양제)가 있다. 그중에서 비타민D 주요 공급원은 햇빛이다. 야외에서 피부를 통해 햇빛을 받으면 체내에서 비타민D가 합성된다. 그래서 비타민D는 ‘햇빛 비타민’으로 통한다.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이동훈 원장은 “한 번에 10~20분씩 일주일에 이틀만 햇볕을 쬐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비타민D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비타민D의 보조 공급원은 식품이다. 연어나 참치 같은 생선, 달걀, 우유, 버섯 등 식품을 섭취하면 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훈제 청어 60g만 먹어도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D를 보충할 수 있다. 

음식 섭취가 어려운 사람이나 의사가 절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람은 비타민D 영양제를 먹으면 된다. 또 실외 활동이 극히 적은 노인도 필요에 따라 비타민D 영양제를 복용할 수 있다. 임주현 과장은 “체내 비타민D는 피부에 존재하는 특정 효소(7-디하이드로콜레스테롤)에 의해 생성되고, 간과 신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활성 상태의 비타민D로 전환된다. 그런데 노화가 진행될수록 그 효소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혈중 비타민D 농도도 떨어진다. 햇빛·음식·영양제 등으로 비타민D를 보충해 주면 그 효소가 늘어나면서 비타민D 활성화도 증가하는 선순환이 된다”고 말했다.

ⓒfreepik

젊은 성인은 비타민D 영양제 불필요

그렇다면 비타민D를 하루에 얼마나 보충해야 좋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인종·성별·연령·만성질환 유무 등에 따라 사람마다 필요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햇빛을 받는 정도나 비타민D가 풍부한 음식을 먹는 양도 개인마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비타민D를 얼마나 먹어야 한다는 권장섭취량은 개인에게 의미가 없다. 대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충분 섭취량(인구집단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양)은 있다. 한국영양학회가 ‘2020 영양소 섭취기준’에서 제시한 비타민D 충분 섭취량은 하루 10μg(마이크로그램·400IU)이고 노인은 조금 더 많은 15μg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성인 15μg, 71세 이상은 20μg을 충분 섭취량으로 본다. 

이 정도는 일반인이 햇빛과 음식으로 흡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식품별 100g당 비타민D는 연어에 33μg, 달걀에 20μg, 꽁치에 13μg 들어있다. 별도로 비타민D 영양제를 먹을 필요가 없다. 국립보건연구원의 이번 연구 결과처럼, 젊은 쥐가 비타민D를 보충해도 비알코올성 지방간 억제 효과는 없었다. 기존 관련 논문 40여 편을 종합 분석한 연구에서도 일반 성인이 비타민D 영양제를 먹는다고 해서 사망률, 골절, 당뇨, 심혈관질환 등을 예방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건강검진을 받은 후 결과서를 받으면 혈중 비타민D 수치를 볼 수 있다. 정상 범위는 25∼80ng(나노그램)/ml(밀리리터)이다. 자신의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다소 낮아도 당장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안감에 비타민D 영양제를 먹기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비타민D를 너무 많이 보충하면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골절·고칼슘증·석회화 등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의료기관인 미국 메이요클리닉은 비타민D 과잉 섭취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으로 메스꺼움, 구토, 잦은 배뇨, 신경쇠약, 뼈 통증, 신장 통증 등을 꼽는다. 

이와 같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는 비타민D 상한 섭취량을 정해 뒀는데, 성인과 노인은 100μg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30~100μg이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대학원장은 “미국 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USPSTF)는 2021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 비타민D 검사는 의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비타민D 검사도 필요 없다는 의미다. 건강한 사람은 비타민D 검사와 영양제 복용이 필요하지 않다. 하루 10분씩만 햇볕을 쬐면 몇 주치 비타민D가 몸에서 만들어진다. 또 비타민D가 풍부한 등푸른생선이나 버섯류 섭취를 늘리면 된다”고 강조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원인 질환 치료부터

적당량의 비타민D 섭취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예방하고 경증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정상으로 돌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알코올성 지방간 진단을 받은 사람이 치료보다 비타민D만 찾으면 곤란하다. 알코올성 지방간의 원인은 술이므로 술을 끊는 것이 최우선 치료법인 것처럼,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는 지방간 자체보다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같은 대사증후군 치료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도비만인 사람에게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잘 생기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비만 치료가 우선이다.

대사증후군이나 비만이 없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체중 감량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보통 자기 체중의 10%를 줄이면 지방간이 개선된다. 체중을 줄일 때 유의할 점이 있다. 금식 등을 통한 급격한 체중 감소는 금물이다. 급성 지방간염, 간 부전, 담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 속도는 일주일에 0.5~1kg 정도가 적당하다. 

​체중 감량은 식습관과 운동을 병행해야 효과가 좋다. 권장하는 식이요법은 섭취하는 총열량을 낮추고 지방질 섭취를 전체 열량의 30%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다. 운동은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 같은 유산소운동이 바람직하다.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 30분씩 실천하는 것이 권장된다. 근감소증이 생기는 중년 이상에서는 체내 에너지 소비가 감소해 지방간 위험이 2~4배 증가하기 때문에 평소 근력운동을 병행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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