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K기업 몰리는 베트남, ‘사회공헌’ 경쟁도 시작됐다
  • 베트남 하노이·푸토성=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6 12: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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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여 개 기업, 베트남 현지인 사로잡으려 노력
‘장학생 해외봉사’ 추진한 DB김준기문화재단 동행취재

1월2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삼성전자 갤럭시 Z플립5 광고가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삼성은 베트남에서 연매출 100조원가량(2022년 기준)을 올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의 50% 이상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베트남 경제에도 삼성은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베트남 전체 수출의 18%를 차지하고 현지인 10만 명 이상을 고용 중이다. 삼성의 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약 25조원에 이른다. 

베트남엔 삼성을 필두로 한국 기업 9000여 곳이 진출해 있다. 이들 기업은 현지에서 70만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해 수출 증진과 국내총생산(GDP) 향상에 이바지해 왔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사업을 확대하면서 베트남은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3대 교역국’(1위 중국, 2위 미국)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액은 794억3000만 달러였다. 한국과 베트남은 2030년까지 양국의 교역 규모를 1500억 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베트남 투자를 늘리거나 신규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DB김준기문화재단이 선정한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9일 베트남 푸토성의 부더랑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에코백을 만든 후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베트남 사회에 녹아들어라” 특명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러시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는 여전히 어려운 행정부와의 소통 문제를 비롯해 들쑥날쑥한 전력 공급, 전문인력 구인난 등 작지 않은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23일(현지시간) 베트남 순방 중에 현지 진출 기업인들로부터 여러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그동안 전달받은 기업인들의 요청 사항을 정상회담에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전달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가 배후에서 돕는다고 해도 현지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장 가도에 진입하는 일은 9할이 기업들 몫이다. 특히 베트남 사회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다면 애써 받은 인허가도, 어렵게 세운 공장과 지점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인은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의 경제 수준이나 K컬처 붐 등을 앞세워 마치 은혜를 베푸는 듯 고자세를 취하면 현지 파트너나 고객들로부터 외면받는다”며 “더군다나 유망한 투자처인 베트남에 외국 자본이 몰리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협력 상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인건비를 피해 베트남으로 생산거점을 옮겼다가 또 다른 인력 문제에 봉착하는 기업도 많다. 베트남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 모두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까워 쓸 만한 인력을 채용하기 쉽지 않아서다. 막상 뽑아놓은 인재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옮기기 일쑤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사업의 영속성을 도모하고자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들어 부쩍 활발해진 현지 사회공헌 활동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사회에 ‘진심’과 ‘가치’를 전하기 위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본업 못지않게 치열히 전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10일 베트남 정부 및 공공기관, NGO(비정부기구), 대학, 언론사 관계자들을 초청해 ‘제1회 삼성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날’을 개최했다. 2022년 하노이에 만든 대규모 R&D(연구개발) 센터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삼성은 청년들을 위한 글로벌 IT교육 프로그램, 숙련 기능 인력 양성 지원 사업, 기부와 물품 기증 등 자체 사회공헌 활동들을 소개했다. LG전자도 연습 공간과 장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현지 국가대표 야구팀을 위해 연습경기장과 유니폼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전자 외 자동차, 화학·섬유, 항공기 부품, 반도체, 희토류, 유통, 식품·문화, 건설, 법률,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베트남 진출 기업들 역시 저마다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시사저널은 올해 들어 두드러지는 베트남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DB의 현지 일정에 동행해 봤다. 해당 활동은 지난 1월28~31일 베트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뤄졌다. 

DB의 사회공헌 기관인 DB김준기문화재단은 국내 대학 3학년생들로 구성된 DB 드림리더 장학생 해외봉사단 19명과 1월28일 베트남 푸토성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았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베트남 청소년들과 교류하고 그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부더랑고에는 1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DB 드림리더 장학생들과 처음 대면한 부더랑고 학생 20명은 쑥스러워하며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부더랑고 학생들 쪽으로 몸을 밀착해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자 조금씩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응웬 으옥…히에우” “원…윤…우” 상대방의 이름을 발음하기조차 힘든 장벽도 선의(善意)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에게 쉴 새 없이 손가락 하트를 보낼 정도로 친해졌다.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드림리더 장학생들이 1월28~31일 베트남의 부더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교직원 등과 교류하는 모습 ⓒDB김준기문화재단·시사저널 오종탁

DB 장학생, 베트남 고교에 ‘진심’ 전해 

다음 날부터 팀별 활동이 이어졌다. 드림리더 장학생들과 부더랑고 학생들은 서로 섞여 4개 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교내 곳곳에서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거나 환경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함께 꾸민 에코백에는 ‘사랑’과 ‘우정’이란 한글 단어가 베트남어와 병기됐다. 한 팀은 베트남어로 잡지를 만들어 부더랑고 30개 반 전체에 배치하기도 했다. 

DB 드림리더 장학생 안채영씨(가톨릭대 아동학과 3학년)는 “처음엔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 두렵게 느껴졌는데, 막상 베트남에 와서 현지 고등학생들과 잡지를 만드는 등 협력해 보니 정말 즐겁고 진심만 통하면 얼마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안씨와 한 팀을 이룬 부더랑고 2학년 레 하이 아잉은 “그동안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던 차에 이렇게 교류할 기회가 생겨 행복하다. 언젠가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면서 활짝 웃었다. 부더랑고 교직원들과 학부모들, 푸토성 공무원들도 활동을 내내 유심히 지켜봤다. 부 반 비엣 부더랑고 교장은 “한국 봉사단이 우리 학교에 찾아온 건 처음이다. 공들여 활동을 준비해 와줘 고맙다”며 “이번 활동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우호 관계뿐 아니라 우리 푸토성을 비롯한 베트남의 정서와 문화를 (한국 기업 등에) 알리는 데도 기여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DB김준기문화재단은 드림리더 장학생 해외봉사 등 베트남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을 유지·확대해갈 방침이다. 재단 관계자는 “애초 사회공헌 활동을 기획할 때부터 일방적인 시혜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앞으로도 베트남 현지인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사회공헌 활동 방식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DB는 2015년 PTI손해보험, 지난해 VNI손해보험과 BSH 손해보험 등 베트남 현지 손보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베트남 공략에 고삐를 죄고 있다. DB 측은 베트남 보험시장 진출에 관해 “베트남의 높은 성장성, 젊은 인구구조, 대외 개방도 등을 고려했을 때 향후 동남아에서 최우선시해야 할 시장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 105년 된 섬유업체 경방, 인건비 문제로 2013년 베트남 이전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목적이 신(新)성장동력 발굴에만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업체가 인건비 부담에 떠밀려 베트남행을 택하고 있다. 그중에는 105년 된 국내 대표 섬유업체 경방도 있다. 경방은 동아일보를 창간한 고(故)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일제강점기인 1919년 도산 위기에 있던 경성직뉴를 인수해 재설립한 경성방직주식회사가 기원이다. 

경방은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자리에 1923년 공장을 설립한 후 직원을 100% 조선인으로 채우고 방직제품 생산을 개시했다. 이어 용인(1974년)·반월(1984년)·광주(1987년)에도 공장을 짓고 사세 확장과 경영 다변화를 통해 1987년 매출 1000억원 돌파, 수출 1억 달러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섬유업 전체가 인건비 증가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공장을 돌릴수록 손실이 났다. 결국 경방은 2013년부터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019년 용인과 광주공장, 2020년에는 반월공장 생산을 중단했다. 각 공장에서 뜯어낸 자재와 장비는 베트남 공장으로 옮겼다. 생산직 직원들은 회사의 감원 결정에 사직하거나 베트남으로 이주해야 했다. 

최근 중국의 인건비도 급상승하면서 경방처럼 베트남에 거점을 두는 중견·중소기업이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높은 인건비 외에도 각종 규제,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 등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을 장려만 할 게 아니라 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민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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