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경호 對 정략적 방해…尹 ‘사지 연행’ 논란 일파만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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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참석 카이스트 행사서 졸업생 끌려나가…“경호원칙 따른 것”
野 “참 비정한 ‘입틀막’ 대통령” 반발…美 경호 사례 회자도

“R&D 예산을 복원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참석한 카이스트(KAIST) 학위 수여식, 한 졸업생이 축사 중인 윤 대통령을 향해 이같이 외쳤다. 정확한 발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졸업생이 작은 피켓을 들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4~5명의 경호원이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은 탓이다. 경호원들은 졸업생을 바닥에 눕힌 후 팔과 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내보냈다. 여권에선 졸업생의 정치 행보를 거론하며 야권이 주도한 ‘정략적 방해 공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야권은 대통령실의 ‘과잉 경호’를 지적하는 모습이다.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R&D 항의’에 아수라장된 카이스트 졸업식

윤 대통령은 이날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학위 수여식에 참석해 졸업 축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졸업생들을 향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며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 손을 굳게 잡겠다”고 격려했다. 이어 “과학강국으로의 퀀텀점프를 위해 R&D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R&D 예산 확대를 언급하던 중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입은 한 남성이 정부의 “R&D 예산 복원하십시오. 생색내지 말고”라고 외치며 항의했다. 이에 대통령실 경호요원이 즉시 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제지했다. 카이스트 졸업복을 입고 학생들 사이에 잠복해 있던 경호원들이 졸업생을 제압해 남성의 팔다리를 든 채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대통령실은 이날 퇴장 조치에 대해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에서 소란이 있었다”며 “대통령경호처는 경호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알려드린다”고도 말했다. 졸업생 사이 잠복 논란과 관련해선 “군중이 많은 곳에서는 위장 근무를 한다. 예전부터 해오던 경호기법”이라며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었다”고 강조했다.

여권에선 진보 진영의 ‘계획된 방해 공작’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소란을 일으킨 졸업생이 녹색정의당 대전시당의 대변인인 것으로 파악되면서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도 “대통령은 특별히 과학기술계를 독려하고 축하하기 위해 학위 수여식에 간 것”이라며 “순수한 행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해명에도 야권은 ‘과잉 경호’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달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한 뒤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항의하다 경호처에 의해 퇴장 조치된 사례도 회자된다. 서용주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연구예산 복원 요구하는 카이스트 졸업생까지 끌어낸 윤석열 대통령은 ‘입틀막’ 대통령인가”라며 “근접거리도 아닌 멀리서 대통령을 향한 의사표시의 외침조차 한시도 참을 수 없었나”라고 반문했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지난 18일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해 끌려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지난 18일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해 끌려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美는 어땠나…오바마는 오히려 경호원 제지

대통령의 경호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매우 강력하게, 보수적으로 이뤄진다. 대통령에게 접근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순간 경호원들이 물리적 제지를 가하는 게 ‘정해진 매뉴얼’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현직 의원이나 학생처럼 신분이 확실한 청중의 목소리조차 경호원들이 틀어막는 건 과도하는 지적이 나온다. 그 근거로 미국 대통령의 사례가 거론된다.

실제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은 시민을 제압하려 경호원을 오히려 제지하기도 했다. 2013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이민 개혁법 통과 촉구 연설을 하던 도중, 당시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 다니던 한국인 홍주영씨가 “매일 수많은 이민자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고 외쳤다. 이에 다른 청중들도 “추방을 중단하라”고 환호하며 분위기가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연설이 중단되자 대통령 경호원들은 홍씨를 포함해 고성을 지른 이들을 퇴장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은 경호원에게 자제하란 제스처를 취하며 “그는 여기에 있어도 된다. 젊은이들의 열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는 훌륭한 민주적 절차가 있다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정의와 진실이 이기게 돼 있다. 미국은 항상 그래왔다”고 말했고 대통령의 열변을 숨죽인 채 지켜보던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올해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언론인 등과 자주 말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경호실이 물리력을 행사하진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1월 백악관에서 CNN방송의 짐 아코스타 기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이티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거지소굴(shithole)’이라 부른 발언의 진의를 질문했다. 설전 끝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자에게 “나가(out)”라고 쏘아붙였으나, 경호원은 아코스타 기자를 강압적으로 내쫓지 않았다. 대신 보좌관 몇이 기자와 대화를 나눈 뒤 그를 루즈벨트 룸으로 ‘에스코트’하며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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