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빈자리, 이정후·김하성·고우석·배지환이 대신한다
  •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2 14: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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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보다 볼거리 풍성해진 메이저리그 ‘코리안 파워’
타격왕 경쟁하는 이정후, 유격수 골든글러브 노리는 김하성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선수가 수적으로 가장 많이 활약한 해는 2016년이다. 12년 차 베테랑 추신수(텍사스)와 2년 차 강정호(피츠버그)에 박병호(미네소타), 김현수(볼티모어),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이대호(시애틀)가 가세했고, 신인 최지만(LA 에인절스)이 데뷔함으로써 7명이 함께 뛰었다. 하지만 한국 팬들에게 2016년은 낯선 해이기도 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 최고 스타였던 류현진이 2015년에 어깨 수술을 받아 2년째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그해 7월 단 한 경기에 등판했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AP 연합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AP 연합

빠른 공 가진 고우석, 정교한 제구 뒷받침돼야

올해 메이저리그는 2016년과 비슷하다.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면서 선발투수가 사라진 반면, 고우석(샌디에이고)이 2016년 오승환처럼 새롭게 마무리에 도전한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는 김현수처럼 3할 타율을 노리며, 김하성은 추신수를 따라 1억 달러 FA 계약을 꿈꾼다. 2년 차 배지환은 당시 2년 차 강정호와 소속팀(피츠버그)까지 같다. 보장 계약을 맺지 못한 최지만(뉴욕 메츠)과 박효준(오클랜드)까지 개막 로스터에 들면 수적으로는 2016년 부럽지 않은 6명이 된다.

이정후의 계약은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시카고 컵스에 남은 코디 벨린저가 3년 8000만 달러 계약에 그침으로써 이정후의 6년 1억1300만 달러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나온 최고의 외야수 계약이 됐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와 계약한 후 대형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의 스프링 트레이닝캠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샌디에이고 감독이었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긴 밥 멜빈 감독은 캠프를 시작하면서 아예 이정후를 “우리 팀의 1번 타자”라고 못 박았다. 묵직한 계약을 따낸 만큼 무거운 짐을 안고, 이정후는 시작한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NS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NS

올해 메이저리그는 한국 선수 간 최초의 가족 대결이 준비되어 있다. 처남 이정후와 매제 고우석의 투타 대결이다. 이정후는 고우석이 말하기 전까지 친구와 여동생의 교제 사실을 몰랐다. 둘의 상황은 다르다. 이정후가 확실한 입지를 가지고 시작한다면, 2년 450만 달러에 샌디에이고와 계약한 고우석은 그렇지 않다. 고우석은 이정후가 보장받은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첫 시즌에 없다.

고우석이 팀의 주전 마무리로 시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메이저리그는 몸값에 따라 보직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5년 4600만 달러의 로버트 수아레스(베네수엘라)와 5년 2800만 달러의 마쓰이 유키(일본)가 더 좋은 계약 조건을 가지고 있다. 마쓰이가 일본에서 올린 236세이브는 고우석의 KBO리그 기록인 138개보다 100개 가까이 많다.

그동안 적지 않은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 마무리투수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상훈(만 29세 데뷔), 구대성(만 35세 데뷔), 임창용(만 37세 데뷔)은 너무 늦게 도전했고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아쉬운 건 구대성이었다. 뉴욕 메츠의 최고령 신인이 된 구대성은 첫 18경기에서 ERA 3.38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했다. 그해 5월22일에 열린 지하철 시리즈 양키스전은 구대성의 메이저리그 경력에 분수령이 됐다. 랜디 존슨을 상대로 좌타석에 들어선 구대성은 2루타를 날려 경기장을 발칵 뒤집었다(뉴욕 메츠가 소속된 내셔널리그는 당시 지명타자제가 없어 투수도 타석에 들어섰다). 심지어 구대성은 양키스 수비진이 방심하는 사이에 후속 타자의 희생번트 때 3루를 찍고 홈으로 내달려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허슬 플레이의 대가는 컸다. 입고 있던 점퍼 안에 야구공이 있었던 구대성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야구공에 눌려 타박상을 입었다. 이후 투수 성적이 곤두박질한 구대성은 2006년 한화로 돌아왔고, 그해 한화에 입단한 신인 류현진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쳤다.

한국 또는 일본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가 된 선수는 오승환이었다. 패전조로 시작해 석 달 만에 주전 마무리가 된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에서 2년 동안 39세이브를 올렸다. 한국 400세이브, 일본 80세이브, 메이저리그 42세이브로 개인 통산 522세이브를 기록한 오승환은 올 시즌 삼성과 2년 계약을 맺고 42세 시즌까지 뛴다.

고우석은 33세 진출이었던 오승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리다. 공도 더 빠르다. 하지만 오승환이 국제대회와 일본리그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진출했다면 고우석에게는 국제대회 부진이라는 꼬리표가 있다. 지난해 LG 트윈스는 2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고우석의 활약은 뛰어나지 않았다. 또 예전 오승환은 명포수인 야디에르 몰리나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지만, 샌디에이고에는 그런 포수가 없다. 고우석은 한국에서 월등한 구속을 자랑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평균보다 시속 1km 빠를 뿐이다. 때문에 고우석은 좀 더 정교한 제구가 필요하다.

샌디에이고는 김하성 덕분에 생긴 한국 선수에 대한 믿음이 고우석 영입으로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가 막대한 연봉을 이정후에게 준 것도 김하성의 성장세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100이 리그 평균이라고 했을 때, 첫해 73에 그쳤던 김하성의 공격력은 2년 차의 105를 거쳐 지난해 110이 됐다.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김하성은 잰더 보가츠의 입단으로 유격수 자리를 내놔야 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샌디에이고는 보가츠에게 유격수 포기를 요구했다. 연봉이 곧 법인 메이저리그에서 몸값이 2억8000만 달러인 선수가 자기 자리에서 밀려나는 일은 거의 없다. 샌디에이고에 입단하면서 “유격수는 내 자존심”이라고까지 했던 보가츠지만 결국 “김하성이라면 인정한다”며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고우석(샌디에이고 파드리스) ⓒAP 연합
배지환(피츠버그 파이리츠) ⓒAP 연합

도루왕 도전하는 배지환…최지만·박효준도 있어

현지에서는 김하성의 공격력이 더 성장하고 뛰어난 유격수 수비를 또 한 번 증명하면, 댄스비 스완슨(시카고 컵스)이 따낸 7년 1억7700만 달러 계약을 기대해도 좋다는 분위기다. 그렇게 되면 김하성은 추신수가 텍사스와 맺은 7년 1억3000만 달러를 넘어 한국 선수 최고 계약이 된다.

배지환에게는 특히 올해가 중요한 해다. 최희섭·추신수·최지만에 이어 아마추어 신분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뛴 한국인 야수 네 번째인 배지환은 지난해 111경기에서 23개 도루를 기록함으로써 역대 한국 선수 중 최고의 스피드를 선보였다. 배지환은 지난해 2루수·중견수·유격수로 출전하며 전천후 능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올해 피츠버그의 주전 중견수는 지난해 26개 홈런을 친 잭 스윈스키이고, 주전 유격수는 키 201cm에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를 자랑하는 오닐 크루스다. 반면 2루는 배지환을 포함해 5명이 경합하고 있다.

13명의 투수와 13명의 야수를 쓰는 메이저리그는 벤치에 네 명을 둔다. 후보 포수를 제외하면 교체 요원은 세 명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야와 외야 수비를 모두 볼 수 있는 슈퍼 유틸리티가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배지환(24)은 붙박이로 뛸 수 있는 자리에 도전해야 한다.

타격왕 경쟁을 하는 이정후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고우석,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노리는 김하성과 도루왕에 도전하는 배지환, 대타 능력이 출중한 최지만과 메이저리그 안착을 꿈꾸는 박효준까지. 류현진은 없지만, 올해 메이저리그에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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