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탁구 메달, 임종훈·신유빈 발전에 달렸다
  • 김경무 스포츠서울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2 13: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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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탁구, 더 이상 중국은 ‘넘사벽’ 아님을 보여준 게 성과
신유빈의 정체된 모습에 탁구인들 “훈련량 부족한 듯” 쓴소리도

“아~ 임종훈 아쉽죠. 두 매치 중 한 매치만 잡았어도 중국을 이길 수 있는 건데…”(유남규 한국거래소 탁구팀 감독), “신유빈 이번엔 반응 동작이 아주 둔하더라고요. 종전보다 살이 좀 쪄 보이던데, 훈련량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베테랑 ㄱ 감독).

2월16~25일 열흘 동안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센터 특설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던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끝났지만, 그 여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수 시절 ‘커트의 마술사’로 불렸던 주세혁 감독(44)이 이끄는 한국 탁구 남자대표팀(세계 랭킹 3위)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4강전에서 만리장성 중국(1위)을 거의 다 잡을 뻔했다가 뒷심과 특정 기술 부족으로 석패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삐약이’ 신유빈(19)이 부진한 가운데 오광헌 감독(54)이 이끄는 한국 여자대표팀(5위)이 중국(1위)에 막혀 8강에서 멈춰선 것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한국 탁구는 5개월도 채 안 남은 2024 파리올림픽(7월26일~8월11일)에 대비해야 한다. 출전 엔트리는 6월18일 확정되는 세계랭킹과 국가대표 선발전 성적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누가 태극마크를 달지 아직 알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린 이번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한국 남녀 대표팀에 성과도 안겼지만 시급한 숙제도 남겼다.

임종훈 탁구 남자 대표선수 ⓒ연합뉴스

임종훈, ‘포핸드 스트레스’ 날려야

특히 남자대표팀의 ‘왼손 에이스’ 임종훈(27)에게는 더욱 그랬다. 남자단식 세계랭킹 18위인 임종훈은 8강전까지는 백핸드 바나나플릭 등 자신의 장기를 충분히 발휘하며 14위 장우진(28), 27위 이상수(33), 34위 안재현(24)과 함께 한국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2월24일 중국과의 4강전 2번과 5번 단식에서 1위 판젠동(27)과 2위 왕추친(23)에게 각각 0대3(8-11, 6-11, 8-11), 0대3(5-11, 7-11, 6-11)으로 패했고, 이로써 한국 남자팀은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사상 첫 금메달 꿈을 접어야 했다.

1단식에서 장우진이 왕추친을 3대1(11-7, 2-11, 13-11, 11-6), 3단식에서 이상수가 3위 마롱(35)을 3대2(11-7, 4-11, 13-11, 6-11, 11-4)로 꺾으며, 한국 남자팀은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지만 임종훈의 부진이 끝내 아쉬웠다. 경기 후 임종훈은 “형들이 너무 잘해 주고, 홈팬들이 응원도 많이 해줘 힘이 났다. 아쉽기보다는 아까운 것 같다. 다음에는 좀 더 잘해서 후련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우진은 “2대3으로 지다니 아쉽다. 좋은 경기를 보여줘 좋다. 중국에는 안 된다는 팬들의 인식을 깨준 좋은 경기였다”고 했다.

이번에 한국 남자대표팀 훈련단장을 맡은 유남규 감독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 선수들도 한 방과 파워가 있어 공격적으로 하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 선수들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이나 1988년 서울올림픽 때처럼 한국에서 경기를 하면 위축되는 게 있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하라고 주문했는데 장우진이 잘했다.”

유 감독은 원래는 1단식에 임종훈이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고민 끝에 주세혁 감독이 장우진으로 바꿨다고 했다. 임종훈에 대해선 “백핸드는 세계적 수준인데, 포핸드는 나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약해 중국 선수들이 그의 몸쪽과 포핸드 쪽을 집중 공격했고,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임종훈에겐 포핸드 스트레스가 있다. 파리올림픽 남자단체전에서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려면, 임종훈이 한 박자 빠른 스피드로 포핸드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훈은 이번 대회 에이스 장우진이 부진한 가운데 덴마크와의 8강전까지 뛰어난 경기력으로 사실상 에이스라는 점을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랭킹이 훨씬 높은 세계 최강 판젠동·왕추친과의 경기에선 애초 변칙 전술을 구사해 돌파구를 찾겠다고 하고선 단순한 경기 운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탁구 전문가들은 왕추친처럼 자유자재로 포핸드 쪽으로 돌아서서 역습할 수 있는 풋워크(발놀림)도 강화하는 게 임종훈에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유빈 탁구 여자 대표선수 ⓒ연합뉴스

“신유빈 독하게 훈련시킬 지도자 필요”

한국 남자팀은 파리올림픽 남자단체전에서 메달권에 들기 위해선 이번 대회 중 떨어진 세계랭킹도 끌어올려야 한다. 4위 안에 들지 못하면 1~4번 시드를 배정받지 못해 올림픽 때 8강전에서 중국을 만날 확률이 25%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 남자의 경우, 중국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더는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 게 큰 소득이다. 한국 탁구의 레전드인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총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 중국에 무기력했는데, 준비하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한국 여자대표팀은 앞으로 신유빈의 성장과 발전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절감했다. 여자단식 세계랭킹 8위로 국내 여자선수 중 최고인 신유빈은 이번 대회에서 전혀 에이스 노릇을 하지 못해 팬들을 실망시켰다. 푸에르토리코와의 조별리그에선 자신보다 랭킹이 3계단 낮은 아리아나 디아스에게 완패를 당하는 등 정체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부진으로 오광헌 감독은 중국과의 8강전에서 신유빈을 1단식에 내보내지 않고 3단식에 출전시켰다. 하지만 신유빈은 3위 왕이디(27)에게 0대3(5-11, 3-11, 10-12)으로 무기력하게 지고 말았다.

당시 경기 상황을 지켜본 한국 대표팀 관계자는 “분명 재능은 있다. 그런데 탁구인들 대다수는 신유빈한테 거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왕이디와의 경기에서도 돌아서서 포핸드로 한번 제대로 치지 못하고 대주기만 하다가 졌다”고 꼬집었다. 과거 신유빈을 지도했던 한 감독은 “독하게 훈련시킬 지도자가 신유빈한테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유빈은 지난해 말까지 조언래 전담코치가 있었으나 계약을 해지했다.

신유빈은 실제 소속팀에서도 감독이 잘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국내 및 국제대회 출전을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대로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프로탁구리그에도 잘 출전하지 않는다. 대신 랭킹포인트를 쌓기 위해 WTT(월드테이블테니스) 시리즈 중 스타 컨텐더 같은 상위 등급대회보다는 낮은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한국 탁구의 레전드인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은 “우리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남자에 비해 득점원과 기술이 많이 떨어진다. 신유빈도 더 분발해야 한다. 더욱 노력해 중국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유빈의 더딘 성장 속에 베테랑 전지희(31)가 파워 넘치는 왼손 포핸드 공격을 새롭게 강화하며 다시 에이스 노릇을 하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라고 탁구인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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