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청년들은 왜 부자 세습의 20년 이상 장기집권을 받아들일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2 15: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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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냐, 독재냐’보다 ‘정권이 어떻게 성과를 내고 불만을 관리하는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

2월14일 필자는 두바이 공항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관문인 헤이다르 알리예프 공항으로 향했다. 현재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필자는 아제르바이잔의 현대사를 주제로 논문을 기획 중인데,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현지의 공기를 느껴보고자 아제르바이잔을 직접 방문한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어떤 곳일까? 이 나라는 조지아·아르메니아와 함께 튀르키예(터키)·러시아·이란이라는 세 강대국이 만나는 교차로인 코카서스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도 세 제국의 유산이 모두 담겨있다. 아제르바이잔어는 언어적으로 튀르키예와 사실상 같고, 종교적으로는 시아파 이슬람을 믿으며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과 공유하는 게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이후 소련의 통치를 받으며 근대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수도인 바쿠는 19세기 후반에 엄청난 규모의 유전이 개발되며 일찍부터 국제도시로 발돋움했다. 바쿠는 웅장한 러시아식 건물이 늘어선 중심가를 걸으며 사람들이 말하는 튀르키예어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필자는 2주간 아제르바이잔에 머무르며 현지인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정치와 외교에 관한 주제를 논할 때가 많았는데, 정부에 대한 지지가 상당히 높다는 점과 세대에 따른 정치적 견해차도 거의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 남성들이 열심히 케밥을 만들고 있는 식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국부로 예우받는 전직 대통령 헤이다르 알리예프와 그의 아들이자 20년 이상 집권하고 있는 현직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의 초상화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제르바이잔의 K팝 팬들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 ⓒ임명묵 제공
아제르바이잔의 K팝 팬들이 즐겨 찾는 레스토랑 ⓒ임명묵 제공

아제르바이잔과 인접한 튀르키예·이란·러시아에서는 전통 가치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정권을 지지하는 데 반해 인터넷을 활발히 하며 서구화된 생활양식을 따르고자 하는 청년층은 정권에 다소 냉소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아제르바이잔은 흥미로운 풍경이다. 부자(父子) 대통령의 30년 장기 집권이 이곳 청년층에게도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아제르바이잔이 꽤 개방적인 국가라는 데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소련 시절에 이루어진 강력한 세속화 정책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바쿠에서는 러시아 보드카를 즐기는 무슬림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고, 여성들도 얼굴을 가리는 히잡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련 시대처럼 종교를 억압하지도 않고, 오히려 민족문화의 원천으로서 ‘국가와 협력하는 이슬람’을 지원한다. 주로 튀르키예, 그리고 유럽 문화의 동향에 민감한 청년층에게 문화적 자유는 꽤 중요한 문제다. 물론 이슬람 교리를 따르며 살고자 하는 청년층도 상당히 존재하며 이 또한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로 이어지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자신들 삶의 양식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정부에 불만을 가질 동인이 생기지 않는 셈이다.

 

문화적 자유 보장하고 청년들 삶 간섭 안 해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2014년에 유가가 폭락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아제르바이잔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경제적 기회가 주로 수도 바쿠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청년층 대부분은 일자리를 위해 바쿠로 이주하지만, 바쿠의 높은 물가와 주거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다. 에너지 자원을 통제하며 부를 축적한 엘리트층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이나 인권단체들은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각종 억압적 수단을 동원해 시민의 불만을 억누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경제적 곤경으로 인해 시민, 특히 청년층이 정부에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막고자 정권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2019년에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과거 정권부터 충성해온 노년층 엘리트를 축출하고 정부 요직에서 세대교체를 진행한 것은 대표적인 친(親)청년 정책 사례다.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언론이나 집회의 자유는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같은 구소련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억압되지만, 인터넷을 통한 청년층의 불만 표출을 발 빠르게 파악해 대처하고자 하는 거버넌스 개선 노력도 동시에 진행된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이런 사전 대응은 청년층 사이에서도 정권에 대한 지지가 지속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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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바쿠 번화가의 커피숍에서 대화를 즐기는 청년들 ⓒ임명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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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대통령 사진을 걸어놓고 기도하는 청년 ⓒ임명묵 제공

아르메니아와의 분쟁 통한 국민 통합 효과

세 번째이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제르바이잔 정권의 대외 정책이 성공을 거둔 데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인접한 아르메니아와 독립 시기부터 30년 넘게 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영토 분쟁을 벌였다. 1994년에 아르메니아는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얻어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했다. 당시 미국과 프랑스의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이 서방에서 여론을 움직여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게 만든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마땅한 우호국을 찾기 어려웠다.

상황은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인 헤이다르 알리예프 때부터 달라졌다.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튀르키예·러시아·유럽연합을 오가며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자국이 보유한 천연자원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쳤고, 이는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 정권까지 이어졌다. 이를 통해 2020년 제2차 카라바흐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승리를 거두었고, 지난해에는 아르메니아의 괴뢰국을 멸망시키며 카라바흐 지역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은 러시아와 이란을 자극하고 있고, 아르메니아와의 추가적인 분쟁도 이어지고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아제르바이잔의 지정학적 환경은 국민에게 언제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알리예프 부자가 어쨌든 ‘민족의 숙원’인 카라바흐 수복을 달성했으니, ‘부족한 점이 있어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정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강하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의 청년 남성들은 대부분 군복무를 하고, 많은 수는 심지어 참전 경력도 갖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문화적 자유 보장, 거버넌스의 지속적인 개선, 민족주의를 통한 국민 통합과 대외 정책에서의 성과는 아제르바이잔 정권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지지를 얻게끔 만들었다. 부자 세습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권위주의, 경제적 난관과 불평등 속에서도 말이다. 정치적인 면만 보면, 아제르바이잔의 여론은 세대 차이 때문이 아니라 세대 차이의 부재로 인해 특수하다.

아제르바이잔 정권이 문화적 자유를 억압하거나,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갑자기 폭락하거나, 아르메니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면 청년층의 정권 지지는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그럴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이제 세계 다수 지역에서 ‘민주주의냐, 독재냐’보다도 ‘정권이 성과를 어떻게 내고 불만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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