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연기는 그냥 나의 삶, 거창하지 않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2 11: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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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에서 존재감 과시한 최민식 “제대로 된 멜로 해보고 싶다”

배우 최민식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열정도 많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데뷔 연도를 세거나 자신의 과거 히트작을 운운하는 일이 싫다고 했다.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짧은 말은 강렬했다. 그의 연기관이 그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 좋게 웃었다. 유머러스했고, 소탈했다. 매니저 없이 활동하는 것도 “뭐 그럴 수도 있죠. 나름의 재미가 있어요”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에게 연기 외의 환경들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일상을 살 듯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어떤 배우보다 뜨거웠고, 여전히 깊게 고민 중이었다. 1시간가량의 인터뷰였지만 그가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뿐하게 납득했다.

그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파묘》는 개봉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에서 견고한 세계관을 완성하며 관객들을 사로잡은 장재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데뷔 이후 첫 오컬트 장르에 도전한 최민식은 극 중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 역을 맡았다.

장재현 감독은 “최민식 배우의 얼굴로 담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되는 묘한 마법이 있다”고 전했을 만큼 데뷔 35년 차 연기 베테랑 최민식은 40년 경력의 풍수사 그 자체로 녹아든다. 누울 자리를 봐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일단 단가부터 계산하지만, 자연과 땅에 대한 철학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의 서사를 완성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 최민식을 만나 《파묘》 비하인드와 연기관에 대해 들었다.

ⓒ쇼박스 제공

데뷔 이후 첫 오컬트 작품이다.

“대본을 보고 친근함을 느꼈다. 무섭다, 안 무섭다를 떠나서 우리 풍속에 관한 이야기이지 않나.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실제로 저는 어릴 때 건강이 별로 안 좋았는데, 어머니가 절에서 기도를 열심히 드렸다. 의사들도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희한하게 다 나았다. 신보다도 엄마의 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가 살면서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이사 갈 때 손 없는 날을 선호하고, 집 안 인테리어 풍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신이라고 부정하거나 경직돼 ‘이건 가짜야, 진짜야’ 하는 논쟁보다는 재미있게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정서 속에서 살아와서인지 영화 속 풍수나 굿 등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풍수사 ‘상덕’ 캐릭터는 어떻게 파고들었나.

“대본을 읽으면서 한번 표현해 봐야겠다고 느꼈던 포인트가 있다. 이 사람은 평생을 자연을 보며 살았다. 흙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 사람이다.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깊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 태도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 말하고 보니 거창한데, 거창하게 한 건 없다(웃음).”

극 중 비현실적인 상황도 현실적인 연기 덕분에 공감이 갔다. 최민식만의 연기 노하우가 궁금하다.

“그건 영업비밀이다. 하하. 농담이고, 그게 배우의 일 아닌가. 허구의 삶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것 말이다. 그래서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골백번 고민한 후에 결국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인물이 돼있어야 한다. 결국 배우가 해내야 한다. 안 그러면 돈값을 못 하는 배우가 된다. 그 과정이 어쩌면 배우가 가장 외로운 순간이다. 절벽 끝에 서있는 절박함이랄까. 끊임없이 상상하고 내가 만든 무형의 인물에 내가 다가가서 밀착돼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

배우가 외로운 순간에 대해 언급했는데, 부연 설명을 듣고 싶다.

“이 인물을 예로 들어보면, 상덕은 풍수가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누군가가 저게 무슨 풍수사냐 배 나온 아저씨지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스타트가 되면 더 이상 좌우를 보지 않는다. 흔들림 없이 끝까지 간다. 그러지 않으면 캐릭터가 망가진다. 그때부터는 몰입감을 즐긴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인물과 내가 더욱 견고하게 붙어버리는 거다.”

장재현 감독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는데, 장 감독과의 호흡도 궁금하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제 상업영화를 3번째 하는 감독인데도 그렇게 촘촘할 수가 없다. 빌드업시키는 과정이 보통이 아니더라. 영화 작업이라는 게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과학기술은 어디 액세서리냐, 왜 그리 고생을 해?’라고 해도 기어코 자신이 원하는 걸 수작업으로라도 다 만들어 내더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대충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모습을 볼 때 흐뭇하기도 하고, 믿음도 갔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스태프들과 자주 만나며 시간을 길게 가진다고 들었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 현장에서 잠깐 보면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해 알겠나. 술도 마시고 얘기도 해봐야 어느 정도 안다. 그 사람의 일대기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어떤 의도로 만드는지 알 수는 있다. 장 감독도 마찬가지다. 촬영 전에 시간을 보내면서 적어도 땅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촬영하면서도 마흔 넘은 사람이 자기 할머니 생각난다고 펑펑 우는 모습을 보고 따스함이 느껴지더라. 또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다.”

유독 이번 작품은 대사를 하는 장면만큼이나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는 장면이 많았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눈이 참 인상적이었다.

“자연을 봐온 사람이라면 시선이 깊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무속인들도 그렇지만 어떤 영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순간 돌변할 때가 있다. 풍수사도 어떻게 보면 반무당 아닌가. 자연과 영적인 교감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것과 마주했을 때 세포들이 달라진다. 그걸 깊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간 굵직한 영화에 출연하며 명실상부 톱배우로서 견고하게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어떤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 신구 선생님이 출연 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는데, 대단하시더라. 선생님도 그렇게 작품을 하시는데, 내가 내 연기 경력을 되돌아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데뷔 연도나 내 지나온 작품 수를 세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 말은, 뒤로 주저앉으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난 아직 할 게 많다. 욕심도 많고 의욕도 넘친다. 뒷방 늙은이 흉내 내고 싶지 않다. ‘내가 왕년에 이랬지’ 하는 것은 창작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니다. 어느 분야든 거장은 늘 청년이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는데, 부연 설명을 듣고 싶다.

“결국 허구의 스토리고 허구의 인물이다. 내가 아직 만져보지 못한 세상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작품에 출연했다고 해서 이 세상을 다 알겠나? 한정돼 있다. 내 인생도 내 작품도 한정돼 있다. 내가 겪어봐야 할 영화적 세상, 지금까지 내가 한 작품은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 못 해보고 죽는 게 아쉽다. 일단 멜로도 못 했지 않았나. 하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파이란》을 언급하는 분들도 있는데, (상대 배우와 극 중에서) 얼굴도 못 본 멜로가 무슨 멜로냐. 얼굴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는 게 멜로다. 하하. 제대로 된 멜로를 하고 싶다.”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많다고 했는데, 그 호기심의 원천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다. 수백만 갈래의 인간 감정을 어떻게 다 표현하겠나. 멜로라고 치면, ‘과연 사랑이 뭐냐’ ‘이게 진짜 사랑이냐’부터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 보고 싶다. 꼭 선남선녀의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가 사랑이다. 사랑의 형태는 사람마다 교감하는 냄새와 모양새가 다 다를 거다.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얼마 전에 토크 예능 《유퀴즈》에 출연해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작업할 때는 그렇다. 한데 제 삶은 하자투성이다.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한다. 다만 작업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다행히 연극했던 선후배님들, 현장의 동료 등 제게 좋은 영향을 준 분이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들 덕분에 엇나가지 않고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이 작업은 혼자 글 쓰다가 찢어버리는 작업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골치 아프고 괴롭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난 연기를 하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또 누군가는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투자한 분들이 손해 나서도 안 된다. 그럼 선순환이 안 된다. 그렇다고 또 투자자들에게 무조건 맞춰서도 안 된다. 내 것을 잃지 않으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협업 속에서 삶을 배운다. 인생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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