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시작된 증권가…IPO가 ‘피바람’ 가를까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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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 상위 10개 증권사 중 6곳 CEO 교체
현장형 CEO 전면 내세워…IPO로 새바람 꾀해
남은 증권사 중 대신은 연임 확정, NH는 교체 ‘저울질’

‘피바람’일까 ‘새 바람’일까. 지난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실적 후폭풍과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내부 통제 실패 이슈를 겪은 증권가에서 세대교체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해부터 자기자본 기준 국내 10대 증권사 중 6곳의 대표이사(CEO)가 교체됐다. 실무 중심의 CEO를 전면에 내세워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는 모습이다. 

초점은 남은 증권사의 CEO 교체 여부로 쏠린다. NH투자증권과 대신증권이 각각 정영채와 오익근 체제 연임 여부를 이달까지 결정한다. 최근 증권가에선 전통 먹거리였던 기업공개(IPO) 시장 부흥을 노리고 있어, IPO 주관 실적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연말부터 국내 10대 증권사 중 6개사의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
지난해 연말부터 국내 10대 증권사 중 6개사의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

여의도에 매섭게 불어온 ‘칼바람’…6개사 CEO 교체

4일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국내 10대 증권사 중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등 6곳이 CEO 교체를 확정지었다. 키워드는 ‘세대교체’다. 전임 장수 CEO들이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성과를 입증한 ‘현장형’ CEO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평가다.

미래에셋증권은 김미섭‧허선호 부회장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출범시켰고, 한국투자증권은 김성환 사장이 대표 자리에 올랐다. 삼성증권은 박종문, KB증권은 이홍구, 메리츠증권은 장원재, 키움증권은 엄주성 사장을 새로 맞았다.

세대교체를 단행한 증권가는 IPO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기업가치가 수조원대로 평가 받는 HD현대마린솔루션과 케이뱅크 등의 기업들이 IPO를 재추진하는 가운데 증권가에선 수주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IPO 시장은 최근 ‘상장 후 따따블’이 관례로 자리 잡힐 만큼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증권사 입장에선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입증된 사업이란 평가를 받는다.

IPO 시장 판도도 변하고 있다. 기존 IPO 시장은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 강자들이 꽉 잡고 있었지만, 최근 중소형 증권사도 약진하고 있다. 하나증권이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 하나증권은 포스뱅크, 에이피알의 IPO를 진행해 459억5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상반기 상장을 앞둔 HD현대마린솔루션의 공동 주관사로도 들어가 있다.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는 임기가 올해 말까지라 CEO 교체 이슈를 피해 갔다.

불 밝힌 여의도 증권가 ⓒ 시사저널 박은숙
불 밝힌 여의도 증권가 ⓒ 시사저널 박은숙

IPO 시장 지각 변동…전통 강자에도 ‘실적 빨간불’ 켜지나

이달에도 일부 증권사에서 사장단 변화가 예고됐다. NH투자증권과 대신증권은 각각 정영채, 오익근 현 사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대신증권은 사실상 연임을 확정했다. 대신증권은 상대적으로 부동산 PF 리스크에서 비껴난 데다, IPO 시장에서도 양호한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오 대표의 연임안은 오는 21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반면 NH투자증권과 관련해선 설왕설래가 난무한다. 정영채 사장은 최대 90명까지 거론되는 롱리스트엔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정 사장은 IB(투자금융) 전문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라, 실적 면에선 마땅한 대체자가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NH투자증권 역시 경쟁사 대비 부동산 PF 노출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실적 우려가 덜한 상황이다.

여기에 NH투자증권은 IPO 시장의 전통 강자로 꼽힌다. 올해 HB인베스트먼트, 케이웨더, 케이엔알시스템 등 3건의 IPO를 성사시켰고, KB증권과 함께 케이뱅크의 공동 주관사로도 선정됐다.

다만 움직임이 큰 만큼 좌초되는 사례도 많다. NH투자증권이 대표 주관사를 맡은 나노시스템, 노르마, 피노바이오 등 IPO 예정기업 3개가 상장예비심사를 중도 철회했다. NH투자증권의 IPO 실적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정 사장은 ‘옵티머스 사태’에 연루돼있다. 정 사장은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현재는 집행정지를 신청해 효력이 멈춘 상태이지만, 법적 부담을 배제할 수 없다. 정 사장 측은 연임 여부와 관련해 “나에게 결정권이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장을 교체하는 것만큼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조치는 없다”면서 “부동산 PF부터 불완전 판매 리스크까지 겪고 있는 증권사에서 이미 세대교체가 본격화했고, 명확한 실적을 입증할 수 있지 않다면 연임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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